청와대 직속 국가 비밀자금 관리 기관 직원으로 속이며 수십억 원대 사기를 친 일당이 경찰에 검거됐다.

이들의 범행에는 자신이 상상한 허구의 상황을 진실로 믿는 인격장애인 '리플리증후군'(Ripley Syndrome) 증세가 있는 여성이 가담해 재무전문가 행세를 하기도 했다.

서울 강남 일대를 무대로 펼쳐진 황당한 사기극에 대기업 임원과 회계사, 세무사, 대학교수 등 전문직 종사자들이 속았고 심지어 외국인도 당했다.

서울 송파경찰서는 29일 청와대의 비밀자금 관리조직 '창'의 요원 행세를 하면서 37억 원대의 사기를 친 혐의(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로 김모(59)씨와 또 다른 김모(65)씨, 안모(43·여)씨를 구속하고 이모(40)씨 등 11명을 불구속 입건했다고 밝혔다.

이들은 "'창'은 '창고'의 약자로, 일제 때 일본인들이 국내에 두고 간 자금과 역대 정권의 비자금 등을 비밀리에 관리하고 있다"고 속인 것으로 드러났다.

주범인 김씨는 2012년 4월 사업가 A(56)씨에게 자신을 '창' 관리인이라고 소개하며 접근해 "금괴 60개를 대신 매입해주겠다"고 속여 32억6천만 원을 가로챈 혐의 등을 받고 있다.

또 다른 김씨는 일본인 B(37)씨에게 '투자금을 4배로 불려주겠다'고 속여 1천700만엔(한화 약 1억6천만원)을 가로챈 혐의 등을 받고 있다.

사기 등 전과 37범인 김씨는 자신을 전직 대통령의 숨겨진 아들이라고 말하고 다니기도 했다. B씨는 풍채가 좋고 중후한 외모를 지닌 김씨의 말을 믿고 일본에서 직접 돈을 들고 와 건넨 것으로 알려졌다.

이씨는 2013년 9월 세무사 C(59)씨에게 조선 황실과 마르코스 전 필리핀 대통령의 비자금을 관리하고 있다고 속여 투자금 명목으로 2억9천여 만원을 뜯어냈다.

안씨는 이씨로부터 소개받은 피해자들에게 '창'의 일원 행세를 하면서 작년 12월부터 올해 3월까지 회계사와 대학교수, 대기업 임원 등 3명으로부터 2억여 원을 뜯어냈다.

안씨는 모델 등 미모의 여성 사진을 프로필로 내걸고 인터넷 채팅으로 피해자들에게 접근해 재무·자산관리 전문가 행세를 하며 '러시아 석유 수입을 도와준다'는 등의 말로 현혹했다.

피해자들은 안씨를 실제로 만난 적이 없는데도 사기에 넘어가 돈을 건넸다. 안씨는 6년 전 같은 범행을 저질러 2년6개월간 수감됐다 출소 3개월 만에 다시 범행에 나섰다.

그의 정체는 지방의 대학교를 졸업하고 작은 보습학원에서 중고생을 상대로 수학을 가르치는 일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안씨는 저장강박증도 갖고 있었다. 검거 당시 안씨의 집은 각종 쓰레기로 가득 차 있었고 안씨는 8개월 간 씻지 않아 고약한 냄새를 풍긴 것으로 전해졌다. 자신의 소변을 담아둔 페트병을 보관하기도 했다.

그는 경찰 조사를 받을 때도 자신이 마치 미모의 재무전문가인 것처럼 행동했다.

경찰 프로파일러는 안씨에 대해 "불안과 열등감에 기초한 전형적인 리플리증후군 증세가 있다"고 분석했다. 미모의 재무 전문가 행세를 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 그런 사람이라고 여겼던 것.

안씨는 비교적 학벌과 외모가 뛰어나고 모두 결혼한 자신의 두 언니에게 열등감을 느끼던 중 수년 전 남성에게 배신당한 상처로 리플리증후군에 이른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이씨가 안씨에게 사기 대상자들을 소개해주면서 안씨를 이용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경찰은 올해 3월 안씨에 이어 9∼10월 두 김씨를 구속하는 등 차례로 일당을 붙잡았다. 경찰은 잠적한 이씨의 체포영장을 발부받는 등 달아난 일당의 뒤를 추적하고 있다. [미디어펜=이상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