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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연합뉴스TV 캡처 |
[미디어펜=이상일 기자]30일 오후 서울동부지법 형사합의11부(하현국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트렁크 살인사건' 첫 공판에서 김일곤(48)의 표정에서는 뉘우치는 기색을 찾아볼 수 없었다.
김일곤은 "내가 지은 죄는 인정한다"면서도 "하지만 내가 만든 '명단'에 있는 사람들부터 조사해야한다"고 말했다. 눈빛은 물론 말 한 마디 한 마디에는 분노만이 가득했다.
검사가 살인 등 죄명이 9개에 달하는 그의 혐의를 읊어 내려갈 때도 김씨는 고개를 꼿꼿이 들고 무표정하게 앉아있었다.
하 부장판사가 "공소장은 받아 봤느냐"고 묻자 김일곤은 "드릴 말씀이 없다. 검찰에 '명단'이 있다. 관련 조사를 받게 해달라고 했지만 지금껏 조사가 없었다"고 답했다. 명단은 김씨가 평소 원한을 품고 있던 28명을 적어놓은 이른바 '김일곤 살생부'를 뜻한다.
김씨는 지난달 9일 충남 아산의 한 대형마트 지하 주차장에서 주모(35·여)씨를 차량째 납치해 끌고 다니다 살해한 혐의(강도살해) 등으로 구속 기소됐다.
김씨는 지난 5월 A씨와 오토바이 접촉사고를 낸 뒤 시비가 붙어 벌금형을 선고받자 A씨에게 복수하는 데 이용하려고 주씨를 납치했지만 달아나려 하자 살해했다.
김씨는 A씨를 포함한 총 28명의 이름을 적은 살생부를 만들어 지니고 다녔다. 여기에는 A씨와의 사건 재판을 맡은 판사, 과거 자신을 검거했던 형사 등의 이름이 적혀 있다.
검사가 "이번 사건과 직접 관련이 없는 명단이어서 조사를 하지 않은 것"이라고 설명하자, 김씨는 "관련이 있다. 조사하지 않겠다면 나도 아무 말 못한다"고 반발했다.
김씨는 국선변호인 없이 재판을 받겠다고도 했다.
"변호인이 접견하면서 나를 담임선생으로부터 가정환경 조사를 받는 학생처럼 대했다"고 그는 억울한 듯 뱉어냈다. 그는 "피고인을 억울함 없이 대변해줘야 하는데 변호인은 사건과 무관한 내용만 물어봤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김씨에게 "명단에 있는 사람들로부터 피해를 받았다면 고소장이나 고발장을 작성하면 된다"고 알려줬다.
그러자 김씨는 "고소, 고발은 처벌 목적으로 하는 것 아니냐. 나는 처벌할 목적이 없다. 그들을 조사해 그 내용이 공개되길 원하는 것이다"라는 주장을 펼치기도 했다.
그는 "내가 지은 죄를 인정하고 처벌을 달게 받을 각오가 돼 있다"면서도 자신이 지목한 28명에 대한 조사가 선행돼야 한다고 공판 내내 주장했다.
김씨는 재판정을 나설 때 검사가 자신의 과거 강도상해 등 전과 기록을 읽은 것을 거론하며 따지기도 했다.
김씨는 검사를 향해 "아까 전과 기록 읽으면서 웃던데, 웃지 마라! 모두 짚세기처럼 엮이고 풍선처럼 불린 것이다"라고 외쳤다.
김씨에 대한 다음 공판은 내달 11일 오후 4시10분에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