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박준모 기자]지난해 12월 계엄 사태 이후 정치·통상·외교 리더십 공백이 길어지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으로 인해 6월 대선이 확정된 상황이지만 지난해 12월 이후 5개월 넘게 자리는 비어있다. 한덕수 전 국무총리가 권한대행 자격으로 국정 운영에 나섰지만 현재는 대선을 앞두고 사퇴했으며, 최상목 전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권한대행도 물러났다.
현재는 이주호 교육부 장관 권한대행이 국정 운영을 맡고 있으나 외고 경험이 없다는 점에서 국제 관계에서 신뢰성 확보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이처럼 정치·통상·외교 리더십 공백 장기화로 인해 산업계 내에서도 어려움을 토로하고 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와 글로벌 경기침체 등으로 인해 경영 환경이 불확실한 상황에서 컨트롤타워 역할을 해줄 정부의 리더십 공백이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지적이다.
|
 |
|
▲ 이주호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2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임시 국무회의를 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제공 |
◆미국의 관세 압박…민간외교로 버텨
국내 경제 상황은 계엄 사태 이후 불확실성이 이어지고 있다. 원·달러 환율은 지난달 1400원 중반대를 보였다. 최근 하락하기는 했지만 원·달러 환율은 1400원 대를 오르락내리락하면서 여전히 높은 수준에 있다. 내수 침체도 장기화되면서 우리나라의 올해 경제성장률이 1%를 넘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이같은 경제 불확실성은 미국의 관세 영향이 컸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1월에 취임한 이후 미국이 무역적자를 보고 있다며 관세 부과의 필요성을 꾸준히 제기해왔다. 실제로 3월부터 미국으로 수입되는 모든 철강·알루미늄 제품에 대해 25%의 관세를 부과하고 있다.
또 지난달 3일부터는 외국산 자동차에 대해 25% 관세도 시행했다. 이달 3일부터는 자동차 부품에도 25% 관세를 부과했다. 다만 미국 내 반발로 인해 내년 4월 30일까지 미국에서 조립한 자동차 가격의 15%에 해당하는 부품에 대해서는 관세를 1년간 면제한 상태다.
상호관세 불씨도 남아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나라에 대해 25%의 상호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혔다. 현재는 유예 상황이지만 언제든 상호관세 부과에 나설 수 있다. 여기에 반도체와 바이오 등에도 관세 부과가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미국 관세로 인한 산업계 피해도 현실화됐다. 미국의 철강 관세는 3월 12일부터 부과됐는데 그동안 무관세로 수출해왔던 우리나라 철강업계도 곧바로 영향을 받았다. 지난해 3월 27만8000톤이었던 대미 철강 수출량은 올해 3월 23만9000톤으로 14% 감소했다.
지난달부터 미국의 관세가 부과된 자동차 역시 감소했다. 지난달 1일부터 25일까지 자동차 대미 수출액은 25억1000만 달러로 전년 동월 대비 16.6% 감소했다.
이처럼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부과로 인한 영향이 본격화되면서 정치·외교 리더십이 중요해졌다. 세계 각국에서도 관세 부담을 줄이기 위해 정상외교에 돌입하면서 분주해진 모습이다. 우리나라 역시 정상외교가 필요한 시점이지만 리더십 공백으로 협상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결국 경제계에서 민간외교 사절단을 꾸리면서 리더십 공백을 메우기 위해 나섰다. 최태원 SK그룹 회장 겸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은 지난 2월 미국의 관세 우려가 커지자 직접 사절단을 이끌고 미국을 찾았다. 최 회장은 우리나라 기업들이 미국에 대규모 투자를 하고 있다고 소개했으며, 미국과의 사업 확대를 제안하기도 했다.
윤진식 한국무역협회 회장도 미국을 찾아 하원의원과 주지사, 경제개발청장 등을 만나며 협조와 지원을 요청했다.
재계 관계자는 “사찰단을 꾸리고 미국을 방문한 데 이어 트럼프 주니어의 방한 역시 정용진 신세계 회장이 나서는 등 정부의 공백을 재계가 민간외교를 통해 메우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
 |
|
▲ 부산항에 컨테이너가 쌓여있다./사진=미디어펜 김상문 기자 |
◆체코 원전 계약도 흔들…“대통령이 협상 나서야”
하지만 재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정치·외교 리더십 공백을 채우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의견이 나온다. 대통령이 움직여야 트럼프 대통령과 직접 회담할 수 있고, 협상에서도 우리나라가 원하는 결과를 이끌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민간외교 사절단도 방미 당시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을 힘들게 만났으며, 조태열 외교부 장관도 미국과의 협상에서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을 잠시 만나는 데 그쳤다.
재계 내에서는 리더십 공백으로 인해 골든타임을 놓치고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특히 한미 통상협의 대응을 주도해왔던 최상목 전 부총리가 사퇴하면서 통상 전략의 협상력 약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최 전 부총리를 탄핵을 추진하면서 스스로 사표를 던지도록 했다는 점에서 정치권 싸움이 재계로까지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도 나온다.
체코 원전 계약이 미뤄지고 있는 것도 리더십 공백으로 인한 것이라는 비판도 제기됐다. 한국수력원자력은 체코 신규 원전 2기 건설 프로젝트에서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되면서 7일에 본계약을 체결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체코 지방법원에서 한수원과 경쟁했던 프랑스 전력공사(EDF)가 제기한 ‘계약 절차 중단’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이면서 최종 계약에도 제동이 걸렸다.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도 체코로 향하던 중 관련 소식을 전해 들었다. 정치·외교 리더십 공백이 장기화되는 상황에서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못한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결국 재계는 기업이 미국의 관세에 대응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고 보고 있다. 이에 대선 이후 새 정부가 빠르게 정국을 안정시키고 정치·외교 리더십 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한 노력이 이뤄져야 한다는 주장이다.
또 다른 재계 관계자는 “대선이 이뤄지는 다음달 초까지는 국정 공백이 불가피해 미국과의 관세 협상의 골든타임을 아깝게 보내고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라며 “새 정부에서는 정치적 갈등이 산업계에 부담을 주는 상황이 또 나와선 안 된다. 새 정부가 우리나라 산업계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면서 협상을 잘 이끌어 주길 바란다”라고 말했다.
[미디어펜=박준모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