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문상진 기자]대선을 코 앞에 둔 대한민국의 앞날이 암울하다. 보수에 대한 기대감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에 대한 혹시나도 역시나다. 한 쪽은 자중지란이고 한쪽은 말바꾸기다. 여당은 김문수와 한덕수의 단일화 문제로 극한 대치의 막장을 보이고 있다. 이재명의 민주당은 기업을 말하며 뒤로는 온갖 규제 법안을 줄대기 시키고 있다. 모두가 이율배반의 극치다.
예고된 시나리오대로 일까? 잘못 꿴 단추일까? 행정에 대한 전권, 무소위의 입법권, 사법에 대한 메스. 삼권 분립을 흐트러뜨린 이 상황은 어디서 왔을까? 더불어민주당의 위인설법부터 할 말은 많지만 이를 부추긴 건 국민의힘이다.
김문수 후보의 단일화는 정치적 수사에 불과했다.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 국정은 사실상 스톱이다. 베네수엘라의 어운 그림자를 예로 들어도 우리와는 동 떨어진 먼 대륙의 이야기로 '강 건너 불구경'으로 치부한다. 현실을 파고 드는 송곳 같은 현실속에도 먼나라의 얘기인양 자기 꿈에 도취되어 있다.
정치는 과학이 아니다. 정교한 정치는 과학이겠지만 어설픈 정치는 과학일 수가 없다. 시스템에 따라 움직이는 소신없는 무리당의 횡포가 언제든 모든 걸 삼킬 수 있다. 절대부족의 힘빠진 행정부가 가진 정치 현상의 한계다. 선거는 이 모든 걸 심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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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민의힘 김문수 대선후보와 무소속 한덕수 대선 예비후보가 8일 서울 국회 사랑재에 위치한 커피숍에서 회동을 마친 후 인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선거 당락의 핵심은 표심이다. 표는 때로는 진정성, 때로는 바람 따라 움직이는 포퓰리즘적 성향을 보인다. 해서 선거는 언제나 매표와 부패의 사이에서 시끄러운 여운을 남긴다. 정치적 이해 타산과 상상할 수 없는 이해를 문제 삼아 끊임없이 논쟁을 불러 일으킨다. 정치가 아니라 생활을 꿈꾸는 꾼들의 모임에는 꿈 결 같은 세상이다. 현실 부정에 대한 이들에겐 유토피아의 세계다. 지금 정치는 꾼들의 향연이다.
꾼들의 모임이 형성한 꼴같지 않은 정당의 모습은 낯설지 않다. 이념도 생각도 소신도 없다. 이해에 따라, 표에 따라 움직인다. 보상은 최소한의 권력 자산과 재산 증식으로 보장 된다. 입은 국민과 주민을 향하지만 결과는 제 주머니다. 이건 국회의원 대부분의 재산 과정을 따지면 명확해진다. 이들이 선거에서 내거는 유혹은 달콤한 사탕이자 사탄의 속삭임이다.
국회의원 비례대표제는 오늘 어제의 문제가 아니다. 직능이 직업이 되고 직업이 전문화 되면 그걸로 살아 갈 수 있는 세상이 되어야 한다. 문제는 그게 아니라는 것이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비례 대표는 이미 나눠먹기의 이해관계로 담합된 것임은 스스로 뒤집고, 바뀌고 하는 어설픈 과정에서 생생히 보여줬다 그리고 목도했다. 이건 국민을 볼모로 자기들끼리 수건돌리기 게임을 즐긴 거다.
국민들은 상처를 받는다. 단 하루를 국회의원으로 살아도 너무나 많은 특혜가 주어진다. 있는 자를 위한, 있는 자들만의 리그를 꿈꾸면 그들은 끊임없이 생존의 법칙을 만들어 낸다. 양심을 팔아 사는 그들에겐 과거는 기억하고 쉽지 않거나, 문제 삼지 않았으면 한다. 그걸 입법으로 가장해 묻어 버리고 다시 일으켜 세우기도 한다.
입법이라는 기능의 국회는 보신주의로 흐르고 누군가를 위한 방탄이 된다. 헌법이 있다. 그걸 대 놓고 휘젓는다. 법은 아직까지 지켜야 할 국민이 합의한 최소한의 규범이다. 이걸 넘어서면 문제다. 지금 민주당의 모습은 입법과 행정과 사법을 싸잡아 입맛대로 길들이려 한다. 오만을 넘어 독재의 악령이자 더 나아가 망국의 어두운 그림자다.
법 안에 국민이 있고 국민이 있어서 법이 있다. 법은 사회의 가장 기본 준칙이자 최소한의 사회를 구성해 나가는 기준이다. '위인설법'식의 법해석은 오만이자 독재이자 위헌이다. 괴변이다. 히틀러와 괴밸스 정도의 정신 착란이다. 대선 후보자는 그 법의 가장 철저한 수호자여야 한다. 입맛대로 해석하고 자신을 위해 고치는 자는 시대 정신을 거스르는 자다. 그들만의 주장대로라면 법만 바꾸면 이 세상에 죄 지은 자 하나도 없으리라는 것과 같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행보는 국민의힘의 자중지란을 등에 업고 거침없다. 하루 사이에 기업인들 만나면 규제 혁파를, 노동자를 만나면 기업의 갑질을 예기한다. 낮에 다르고 밤에 다르듯 물 흐르듯 말이 변한다. 규제 혁파에서 규제 강화를, 유연 근무를 말하면서 근무 시간 제한을 말한다. 사법부의 판단도 제 멋대로 재단한다.
대법조차 흔든다. 자신이 현재 법의 재판을 받는 상태에 있다. 유리한 판단이면 사법 정의고 불리하면 탄핵이다. 민주공화국의 보루는 사법이라면서 자신에게 씌워진 의혹에 대해서는 이율배반이다. 대한민국 행정부를 탄핵이라는 이름으로 공백 상태에 만들었다. 이도 모자라 이제는 사법부 수장과 자신에게 비판적인 법관들까지 사퇴와 탄핵으로 협박하고 있다. 사법 정의가 그리 쉽게 흔들리는 잣대인가.
드라마 공화국 대한민국은 지금 드라마를 찍고 있는 걸까? 모든 게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하다. 법원이 발을 빼는 것도, 단일화의 약속도, 아침의 말을 저녁에 뒤집어도 얼굴색조차 변함이 없는 이 대단한 인물들에겐 양심이란 게 있을까? 이 한심한 상황을 만든 정치인이 대한민국을 이끌 수 있을까? 그보다 먼저 대한민국이라는 나라 앞에 무릎 꿇어야 할 범법자는 아닐까?
지금은 속을 알 수 없는 한 편의 드라마 같은 상황이다. 그냥 얻어지는 건 없으니까 힘든 과정과 어려움 속에서 결국 모두가 기대하는 결과로 이어졌으면 한다. 결국 심판은 국민이 한다. 다만 심판을 위한 재료를 아낌없이 드러내길 바란다. 두 번의 대통령 탄핵을 겪은 국민들의 마음은 결코 호락호락 하지 않음을 잊지 말았으면 한다. 사필귀정이리니.
[미디어펜=문상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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