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증하는 네거티브 효과
미디어 너머 진실을 보려는 대중

요즘 영화 ‘부러진 화살’이 화제다. 이 영화에 왜 300백만의 관객들이 몰릴 정도로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가 벼랑 끝에 내몰리다 못해 절벽 아래로 떨어져 만신창이가 된 전 대학교수 대 거대한 사법부의 대결에서 관객들은 전 대학교수에게 공감과 동정을 던진 것으로 보인다.

영화의 파장에 놀란 사법부는 영화 내용이 진실과 다르다고 하지만 아마도 사람들은 이미 전 대학교수의 처지에 기울어진 듯하다. 적어도 영화관에 간 사람들은 확실히 그런 것 같다. 영화의 실화 인물인 김명호 전 성균대교수는 이어 ‘판사, 니들이 뭔데’라는 도발적인 제목의 책을 출간해 사법부를 향한 증오의 ‘화살’을 날렸다. 이 영화의 인기는 무엇보다도 사법부에 대한 일반인들의 부정적 인식이 큰 공명을 일으킨 때문으로 보인다.

또한 이 영화의 인기는 배우 안성기씨에 대한 신뢰도 적지 않은 기여를 한 것 같다. 예전에 라디오 작가를 했던 사람으로부터 안성기씨에 대해 들었던 얘기다. 그는 안성기씨에 대해 ‘내가 본 연예인들 중에 그처럼 진실하고 예의 바른 사람을 보지를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라디오의 세계를 알고 싶다며 6개월만 라디오 프로그램을 하겠다고 했다는 것이다. 방송사에서는 당시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던 배우라서 흔쾌히 ‘모셨다’는 것이다. 그때 작가와 피디는 속으로 설마 6개월만에 그만두랴 하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라디오 시청률도 그의 인기에 힘입어 좋았는데, 정말 6개월이 되는 날, ‘저 내일부터 나오지 않을 겁니다’라고 했다. 모두 지금 한창 인기가 좋고 경제적으로도 도움이 될 텐데 정말 그만두는 걸 보고 놀랐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떠나면서 회식하지 말고 (그는 술을 전혀 못한다) 바바리코트를 선물하겠다고 말했다는 거다. 그래서 그 작가는 속으로 역시 일류배우는 다르긴 다르구나 하고 그를 따라갔는데, 백화점을 가는 게 아니라 동대문시장 주변 거리에있는 노점 옷가게에서 15,000원짜리 코트를 골랐단다. 그리곤 자기도 한 개 사고 피디에게도 한 개 사주더라는 것이다. 그 작가는 몸에 맞는 사이즈가 없어 고르는 걸 포기하고, 자기와 피디도 각각 스카프와 쉐타를 사서 서로 답례선물을 교환하는 것으로 헤어졌다 는 얘기다. 스카프는 5천원짜리였고, 쉐타는 2만원짜리였다고 한다.

그 작가는 오래 전 방송계를 떠나 지금은 조그만 카페를 운영하고 있는데, 우연히 최근 에 칼국수집에서 안성기씨를 만났다는 것이다. 그는 그를 만난 지도 너무 오래되었고 지금 초라하게 변해버린 자신을 몰라볼 거라고 생각하고 피하려고 했지만 딱 눈이 마주친 까닭에 목례만 하고 그냥 지나치려고 했다는 거다. 안성기씨는 그를 보는 순간, 칼국수를 먹다 말고 일어나서 정중하게 인사를 하고 근황을 묻고 인사를 나눴다는 것이다. 그 옛날 작가는 이 얘기를 하면서 안성기씨를 존경하는 표정이 가득했
다.

필자는 안성기씨를 만난 적이 없다. 그러나 그는 왠지 우리 사회에는 매우 희귀한 ‘신뢰’라는 DNA을 갖고 있다. 얼마 전 매경신문에서 화제작의 주인공으로서 안성기 씨를 인터뷰 한 기사를 읽었다. 그의 말 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멘트. “촬영할 때는 관객이 보지 않아서 배우로선 자칫 지금 찍는 순간이 관객과 만나는 순간이라는 걸 잊기 쉬워요, 하지만 관객은 현장에서 배우가 쉽게 한 건 쉽게 받아들이고 열심히 한 건 열심히 받아들입니다…전 영화 외적인 일도 영화와 관련된 일을 해요. 영화에 죽기 살기로 늘어져야 합니다. 프로답게 굉장히 철저히 준비하고 노력해야 합니다. 잘하는 것보다 열심히 하는 게 중요해요.”

또 이 영화를 감독한 정지영 감독은 ‘남부군’을 만드는 등 한국사회에 묵직한 주제를 던지는 한국영화계의 자산으로 봐도 지나치지 않는 것 같다. 일부에서는 논란거 리를 이용한 상업성을 비판하기도 하는데, 감독이 그런 것도 못 만들면 만들 게 없다. 판단은 관객이 하는 것, 감독은 단면을 충실히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의미 있는 역할을 한다.

영화 한 편의 성공 여부는 중요한 요소들의 각각의 무게와 그 요소들의 결합이 만들어낸 총체적인 결과물에 따라 결정된다. ‘부러진 화살’의 여러 요소 중에서 절대권력 앞에서 선 전 대학교수의 캐릭터, 국민배우 안성기의 신뢰감, 문제작에 도전하는 노련한 감독에 대한 이미지 효과도 흥행 성공의 중요한 요소란 생각이 든다.

배우 안성기와 묘하게 같은 성씨인 안철수 교수에 대한 인기도 비슷한 종류가 아닐까 한다. 그는 말과 생활이 일치는 사람으로 비친다. 우리 사회는 말과 행동이 일치되지 않은 공직자들을 너무나 많이 봐왔기 때문에 안철수씨와 안성기씨의 인기와 신뢰는 굳건해 보인다.


미디어의 네거티브 효과


요즘 한국과 마찬가지로 미국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각 후보들의 유세가 요란하다. 후보의 이름을 커다랗게 쓴 대형버스에서 후보가 내리면 미리 기다리고 있던 지지자들이 깃발을 흔들고 환호한다. 그러면 부인과 손을 흔들고 만면에 웃음 가득 찬 표정으로 연단에 올라 연설을 한다. 연설 중간 중간에 열렬한 박수갈채가 터지고 감동 어린 연설이 끝난 뒤엔 몰려드는 청중들에게 사인을 해주고는 다시 버스를 타고 어디론가 떠난다. 이런 장면은 카메라에 찍혀 기사와 함께 주요 부분의 육성이 편집돼 전국 TV와 인터넷에서 노출된다.

미국은 광고와 홍보의 나라이다. 미국뿐만 아니라 자본주의가 성숙해질수록 제한된 공간속의 광고와 홍보의 집적도도 높아진다. 눈길 있는 곳에 광고와 홍보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처음에 사람들은 미디어의 효과에 경탄했다. 우리나라도 1980년대 컬러TV 시대가 열리고 전 세계의 뉴스와 정보가 위성을 통하여 생생하게 전달되는 걸 지켜보면서 미디어에 열광했다.

이 미디어의 만개 속에서 연예인에 이어 스포츠 선수가 사람들의 인기를 한 몸에 받았고, 그 다음엔 정치인, 교수, 변호사 등 말 잘하거나 또는 잘 생기거나 개성 있는 인물들이 번갈아 가며 스타로 자리매김했다. 5공 스타였던 노무현 의원은 나중에 대통령으로 당선되었고, 잘 생긴 오세훈 변호사는 서울시장이 되기도 했다. 토론 앵커였던 유재건, 유시민 같은 사람들은 정치인으로 발돋움했다.

그런데 미디어 절정 시대를 거친 대중들은 이제 미디어에 비친 모습과 실제와 다를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오히려 거짓일 가능성이 높다는 걸 눈치채곤 그것을 확인하려는 것 같다.


글로벌 기업과 CEO의 진실을 보려는 대중

글로벌 기업과 CEO는 오늘날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미디어의 초점이 될 수밖에 없다. 아마도 글로벌 기업들은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도 CEO들은 미디어의 스포트라이트를 피하고 싶을 게다. 그러나 대중은 그를 보고 만나고 싶어하고 나아가 그들의 진실을 확인하고자 한다. 만약 확인 결과 미디어에 비친 모습과 실제와 다를 때 대중은 격렬히 반응을 보인다.

지금 미국에선 애플의 진실을 놓고 시끄럽다. 거의 모든 애플 제품을 조립생산하고 있는 중국의 열악한 노동현장이 뉴욕 타임즈의 심층기사로 고발되었다. 물론 그 노동 현장의 기업주는 대만 기업 팍스콘이다. 사람들은 팍스콘에는 관심이 없다. 그들은 미국민들의 창의성과 기술적 우위성의 자부심인 애플이 그런 열악한 작업장을 외면했고, 더욱이 미국 노동자들을 고용하지 않은 가운데 벌어진 일에 대한 강한 도덕적 의문과 분노를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남의 말 얘기를 할 여유가 없다. 한국의 글로벌 기업들도 코너에 몰려 있는 신세다. 대부분의 오너들이 과거 유죄 판결의 경험을 갖고 있거나 문어발 확장이라는 도덕적 비난에 직면하고 있다. 한국의 대기업들도 연말이면 열심히 기부를 하고 CSR(기업의 사회적책임) 프로그램도 열심이지만 좀처럼 이미지가 개선되지 않고 있다.

대중들은 미디어에 비친 그들의 모습을 그대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최첨단 업종이라는 정보통신기업과 그 수장이 미디어의 절대적 도움을 받고 있는데도 이미지가 개선되지 않는 것도 아이러니다.

이런 현상은 선진국도 마찬가지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뉴스코프의 머독인 것 같다. 한때 일본 하면 신용이라고 했는데, 올림푸스의 회계부정 사건에서 일부라고 생각하 고 싶지만 일본 경영인들의 부도덕성을 적나라하게 볼 수 있었다.

지금 여야 정당은 선거를 앞두고 재벌 옥죄기에 나서고 있다. 이에 대해 재벌들은 노심초사하고 있다.

기업이 거대해지면 고객들은 도덕성을 요구하는 것 같다. 고객들은 자신이 사용하고 좋아하는 상품과 서비스의 기업과 기업 경영자와 연결 의식을 느끼거나 동일시하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 더욱이 그 기업이 거대할수록 그런 감정은 진해진다.

한국의 글로벌기업과 경영자들도 자신들의 위상이 달라지고 있음을 깨닫지 않으면 치명적 타격을 입을 수 있다.

미디어에 대해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사법부에서 좋은 힌트를 얻을 수 있다. 사법부는 너무 미디어에 노출되지 않으려고 한 가운데, 나쁜 입소문들이 실제로 사실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부정확한 인식도 중첩되면서 극도로 이미지가 나빠졌다고 할 수 있다. 역사적으로 보면 유대인들이 언제나 이런 대접을 받았다.

미디어 시대에 미디어를 피할 수 없다. 그러므로 미디어를 적절히 접촉하여야 한다. 그럼에도 가장 중요한 건 ‘진실성’과 ‘진정성’이다. (글, 종려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