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잔한 웃음으로 고백하는 시인 신달자의 인생이야기

이번 주 <낭독의 발견>에는 신달자 시인이 출연하여 50년 가까이 시를 지팡이 삼아 살았던 이야기를 들려준다. 어릴 때부터 빈 곳만 보이면 글씨를 썼던 추억에서 시작해 자연스레 시인을 꿈꿨던 문학소녀 시절까지 회상한 시인은 등단을 두 번이나 하게 된 사연과 결혼 한지 9년 만에 뇌졸중으로 쓰러진 남편을 대신해 집안의 가장으로 살아온 세월을 담담히 털어놓는다. 오직 시만이 희망이고 구원이었다는 시인의 고백 뒤에는 깊고 담백한 목소리의 가수 김목인이 고되고 건조한 일상에 위로를 건네는 노래를 들려준다.

◆"희. 노. 애. 락. 애. 오. 욕. - 인간의 내면을 종이에 쓰다"

종이 안에서 종이 울리는 것을 듣는가 /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 종이 앞에서 / 뜨거운 과욕의 갈망을 걷어 내는 순간 / 울리는 종 / (...) / 맑은 랩으로 싸 얼려 놓은 순수라는 말 / 두 손을 비벼 더운 사람의 기운으로 / 풀어 녹이는 순간 / 저 지하 층층 어둠 속에서 푸르게 다가와 / 내 가슴에 울리는 종 / 종 울린다.

신달자 시 『종소리』中

짙은 여운을 남기는 꾸밈없는 목소리로 백설희의「봄날은 간다」를 부르며 등장한 신달자 시인과 2011년 제 19회 대산문학상을 수상한 그녀의 열두 번째 시집 <종이>에 대한 소감을 나눈다. 점점 사라져가는 종이를 보며 ‘시인에게 종이란 무엇인가’ 란 질문을 수없이 던지다보니 종이라는 사물에 깃든 순한 의지가 인간의 아름다운 내면과 비슷함을 발견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래서 시인은 그 순간의 깨달음을 그린 시 <종소리>를 두 번째 낭독으로 들려준다.

◆“양푼의 쌀 위에도 동네 제재소 톱밥 위에도 썼지요”

공책이 귀하던 시인의 어린 시절,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글쓰기에 대한 열정을 품었다는 시인은 운동장 흙 위에도, 금세 사라지는 물 위에도 썼던 싯귀들에 대해 이야기하며 순수했기에 더욱 뜨거웠던 문학소녀 시절을 회상한다. 좋아하던 남학생에게 마음을 전하기 위해 편지지에 김소월의 시를 또박또박 옮겨 적던 이야기와 글자를 모르던 그녀에게 일주일에 한번씩 ‘부모님 전상서’를 올리게 한 아버지와의 이야기 또한 전한다.

◆"고통은 반드시 누군가의 선물일거예요."

대학 4학년, 당시 인기를 끌던 여성지 <여상(女像)>을 통해 등단한 신달자. 졸업 직후 결혼한 그녀는 뇌졸중으로 쓰러진 남편과 낙상사고로 반신불수가 된 시어머니를 30년 가까이 병구완했던 세월을 털어놓으며 어두운 현실 속에서 글쓰기는커녕 우울증과 공황장애로 힘겨웠던 시절을 고백한다. 하지만 거리에서 우연히 만난 대학시절의 은사 박목월 시인의 권유로 어깨를 짓누르던 현실을 떨치고 재등단하게 된 사연을 밝히며 삶에 대한 의지를 심어준 시에 애정과 감사를 전했다. 또 그는 고통은 절대 홑겹이 아니라 언제나 행운을 동반한다 말하며 지난 세월 속에서 터득한 희망의 비결을 전해주었다.

◆"사랑에 있어선 우리 서로 바보가 되자. 그것이 백치애인이죠."

나에게는 백치 애인이 있다. / 그 바보의 됨됨이가 얼마나 나를 슬프게 하는지 모른다. / 내가 얼마나 저를 사랑하는지를, 그리워하는지를 그는 모른다. / (...) / 내 목소리를 듣지 못하는 귀머거리이며, 내게 한마디 말도 해오지 않으니 그는 벙어리이다. /

바보 애인아. 너는 나를 떠난 그 어디서나 총명하고 과감하면서, 내게 와서 너는 백치가 되고 바보가 되는가.

신달자 글 『백치애인』中

1980년대 수많은 여학생들의 연습장 표지와 책받침을 장식했던 수필 <백치애인>, 그리고 베스트셀러 소설 <물위를 걷는 여자> 시인은 이 두 작품 덕에 병든 남편과 딸 셋을 비롯해 온 식구를 부양할 수 있었다 밝힌다. 하지만 그런 모습을 돌아가신 친정어머니께는 한번도 보여드리지 못했다 털어놓으며 눈시울을 붉혔다. 그동안 고생한 시절을 떠올리면 친정어머니가 많이 생각난다며 안타까워한 시인은 요즘 많은 여성들의 요청에 멘토로서 위로와 응원을 담아 강의하고 있다며 자신이 그랬듯 용기와 희망을 잃은 사람들의 손을 잡아주고 싶다는 말을 전했다.

◆"시와 함께 한 48년, 시는 쓸수록 어렵다"

군더더기 없는 목소리로 일상의 따뜻함을 노래하는 가수 김목인이 <작은 한 사람>을 들려준다. 신달자 시인은 평소에 김목인이 늘 지니고 다니며 노랫말을 적어온 수첩 속에서 마음에 드는 구절을 낭독했고, 시인의 낭독을 들은 가수는 그에 답하듯 시집 <종이> 中「상징」을 낭독했다. 이어서 보통 사람들이 공감대를 나눌 수 있는 노래를 만들고 싶다는 김목인의 고백을 들은 신달자 시인은 50년 가까이 시를 써왔지만 시는 쓸수록 어렵다고 토로한 뒤, 그럼에도 글을 쓴다는 것은 언제나 큰 행복감을 주었다며 웃었다. 김목인은 소소하지만 따뜻한 일상의 풍경을 그린 노래 <이 좁은 골목길>을 부르며 마지막 무대를 장식했다.

고통은 절대 홑겹이 아니라 그 갈피엔 언제나 행운이 숨어있다고 말하는 시인 신달자와 함께 하는 387회 <낭독의 발견> ‘삶은 고통으로 빛난다’편은 2월 16일 (목) 밤 12시 35분부터 KBS 2TV를 통해 방송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