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연지 기자]제너럴모터스(GM) 한국사업장이 직영 서비스센터와 부평공장 일부 자산을 동시에 정리하겠다고 밝히면서 국내 사업 철수설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업계에서는 GM의 매각 대상 자산이 중국 전기차 브랜드의 손에 들어갈 경우 국내 시장 지형에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29일 업계에 따르면 GM은 지난 28일 전국 9개 직영 서비스센터와 인천 부평공장의 유휴 자산 및 일부 부지를 매각하겠다고 내부에 공지했다. 고객 서비스는 협력 정비센터를 통해 유지되며, 생산 프로그램도 기존대로 이어간다는 입장이지만, 핵심 정비망과 생산 자산을 동시에 시장에 내놓은 데 대해 업계는 단순한 효율화 차원을 넘어선 ‘전략적 조정’이라는 시각을 내놓고 있다.
특히 이번 GM의 자산 매각은 중국 브랜드에 기회로 작용할 수 있어 단순히 한 브랜드의 국내 시장 철수만이 아니라 시장 판도가 바뀔 수 있는 단초가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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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헥터 비자레알 GM 아태지역 및 한국사업장 사장./사진=한국GM 제공 |
◆ '철수' 본격화?…향후 시나리오는?
GM이 매각을 예고한 직영 서비스센터는 서울, 동서울, 원주, 인천, 대전, 광주, 전주, 부산, 창원 등 9곳이다. 최근까지도 리뉴얼 작업을 마친 시설이 포함돼 있어 단기 실적 악화 대응보다는 향후 구조조정의 일환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부평공장도 생산은 유지되지만 유휴 부지와 낮은 활용도의 일부 자산이 매각 대상에 포함됐다.
GM이 한국에서 생산 중인 차종은 모두 가솔린 모델이며, 생산 차량의 약 84%를 미국에 수출하고 있다. 하이브리드나 전기차 생산 계획이 전무한 가운데, 미국의 고율 관세가 현실화될 경우 국내 생산기지의 경쟁력은 급격히 약화될 수 있다. 이 때문에 업계에서는 GM이 미국 정책 변화에 따라 사업 철수를 가속화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GM은 2002년 대우차 인수 당시 산업은행과 15년간 사업 유지를 약속했고, 2018년 군산공장을 폐쇄하면서 대규모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이후 약 8000억 원 규모의 산업은행 유상증자 지원을 받으며 10년간 자산 매각 제한 조건을 수용했고, 이 조건은 2027년 종료된다. 이번 매각이 해당 시점을 염두에 둔 사전 포석이라는 해석이 설득력을 얻는 이유다.
연구개발(R&D) 법인이 이미 분리 운영되고 있다는 점에서 생산시설만 정리하고 R&D는 존치하는 분리 전략이 현실화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R&D를 존치하면서 GM이 한국 내 일정 거점을 유지하는 방식은 향후 정부와의 협상에서도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현재 GM은 연간 3만 대를 생산하는 계획은 변함이 없다며 철수를 부정하고 있지만, 내수 시장의 축소는 불가피해 보인다. 전면 철수를 하지 않고 생산을 이어가더라도 수출 믈량에만 집중하는 등 전략 변화를 예상할 수 있다.
김필수 대림대 미래자동차학과 교수는 "한국GM의 R&D 조직은 본사에서도 기술력을 높이 평가하는 핵심 자산"이라며 "생산시설은 정리하되 R&D는 남겨두는 전략이 유력하다"고 말했다.
◆ 중국 브랜드, 'GM 정비망' 삼킬까
GM이 수십 년간 운영해 온 전국 단위 정비 인프라가 시장에 나오면서 이를 중국 전기차 브랜드가 인수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올해 초 BYD에 이어 지커, 샤오펑, 창안차 등 중국 업체들이 국내 시장 진출을 확대 중이나, 정비 서비스 네트워크는 아직 취약한 상황이다. GM의 인프라는 이들의 약점을 단숨에 보완할 수 있는 수단이 될 수 있다.
GM은 과거 인도·태국 철수 당시 생산기지를 상하이차, 장성차에 매각한 전례가 있다. 한국에서도 유사한 구조가 반복될 경우 정비센터까지 포함한 인프라가 중국 자본에 흡수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는 단순한 센터 매각 이상의 상징성을 지니며, ‘GM의 흔적’이 중국차의 신뢰 기반으로 전환되는 효과를 낳을 수 있다.
중국 전기차 브랜드들은 기술력과 가격 경쟁력은 충분히 확보했지만 국내 소비자 신뢰를 얻기 위해서는 빠르고 안정적인 애프터서비스 체계가 필수다. 기술력과 가격 경쟁력을 갖춘 중국 전기차 브랜드들이 소비자 신뢰까지 확보하기 위해서는 전국 단위 애프터서비스 체계 구축이 필수이며, GM의 정비망은 이 조건을 단번에 충족시킬 수 있는 지름길이다.
안정적인 정비 서비스제공은 국내 수입차 브랜드 중 어느 곳도 갖춘 곳이 없다. 국내 시장에서 성공요인 두 가지 중 하나를 충족할 수 있다는 뜻이다. 성공 요인 중 다른 하나는 신차 출시다. 이 역시 다른 수입 브래드들의 취약점으로 꼽히는데, 중국은 거리가 가까운 만큼 제한이 덜할 것으로 예상된다.
결국 기존 완성차업체들에겐 중국 브랜드의 진출이 큰 위협이 될 수 있다. 특히 중견 업체들에게 있어 정비 네트워크까지 완비된 중국 브랜드의 등장은 구조적 위협이 될 수 있다. 가격 경쟁력에 서비스 인프라까지 갖춘 중국 전기차가 점유율을 빠르게 확대할 경우 중저가 중심의 내수 시장 주도권이 재편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호근 대덕대 미래자동차학과 교수는 "중국 기업들의 국내 진출을 가로막는 유일한 장벽은 서비스 인프라"라며 "가격 경쟁력에 더해 GM의 정비망까지 흡수한다면, 국내 업체들이 저항하기 어려운 수준의 경쟁력을 갖추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미디어펜=김연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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