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 투자자, 신약 개발 불확실성 이유로 투자 심리 보수적인 분위기
중소 제약사, 자금 마련 압박↑…R&D 투자 비율 전년도 수준 유지
[미디어펜=박재훈 기자]올해 국내 제약·바이오 업계가 자금 조달과 투자 위축, 고환율이라는 복합적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신약 개발과 글로벌 시장 진출을 위해 막대한 자금이 필요한 업계 특성상 최근 대외 환경은 기업들의 경영 전략과 미래 성장 동력에 큰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 현황판에 코스피, 원/달러 환율이 표시돼 있다./사진=미디어펜 김상문 기자


8일 업계에 따르면 지난 팬데믹 이후 활기를 보이던 바이오 투자 시장은 2022년을 기점으로 급격히 위축되고 있다. 벤처캐피털(VC)과 사모펀드(PE) 등 민간 투자자들이 신약 개발의 불확실성과 경기 불안, 금리 인상 등으로 인해 투자 심리를 크게 보수적으로 바꿨기 때문이다.

실제로 2021년 정점을 찍었던 바이오 투자금액은 이후 꾸준히 감소세를 보였다. 지난해 바이오·의료 분야 신규 투자액은 8844억 원으로 전년 대비 23.1% 감소했다.

최근 투자자들은 초기 단계 바이오벤처보다 임상 2상 이상, 상업화 가능성이 높은 기업에만 자금을 집중하는 경향을 뚜렷하게 보다. 이에 따 신생 바이오기업이나 비상장 벤처들은 자금 확보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상장 유지 요건 강화로 상장폐지 우려도 커지고 있다.

올해 들어 원·달러 환율은 4월 중 1487원까지 치솟으며 근래 최고치를 기록했다. 지난 7일 기준으로 원·달러 환율은 1361원을 기록 중이다. 비교적 환율이 하락하기는 했으나 전반적으로 원화 약세 압력이 지속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환율이 상승할 경우 수출 중심의 대형 바이오기업들은 달러 강세로 인한 환차익을 기대할 수 있다. 하지만 전체 업계로 볼 경우 고환율이 주는 부담이 훨씬 큰 상황이다. 

원료의약품 등 원자재 수입 의존도가 높은 제약사들은 수입 비용이 많 늘어나고 해외 임상시험 등 글로벌 R&D(연구개발) 비용도 급증한다. 업계에서는 실제로 올해 업황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요인으로 '고환율로 인한 자금 조달 어려움'을 꼽는 비율이 전년 대비 많이 증가했다.

   
▲ SK바이오사이언스 연구원들이 연구 결과를 분석중이다./사진=SK바이오사이언스

특히 자금력이 부족한 중소 바이오기업들은 고환율로 인한 경영 압박이 심화고 있다. △수입 원자재 △임상비용 상승 △글로벌 공급망 불안 △에너지·원자재 가격 상승 등도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재무적 부담이 더욱 커지고 있다.

이처럼 수출 중심의 일부 대형 바이오기업들은 고환율을 기회로 삼아 실적 개선을 기대하는 것과 달리 대다수 내수 중심 제약사와 중소 바이오벤처들이 고환율과 투자 위축이라는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다는 점에서 업계 내 격차는 기업 간 양극화를 더욱 심화시킬 것으로 보인다.

투자 위축과 고환율 부담 등 어려운 조건이 맞물리면서 다수의 제약·바이오 기업들은 올해 R&D 투자 규모를 2024년 수준으로 유지하거나 축소할 계획이다. 신약 개발 등 혁신 투자가 위축될 가능성이 높고 업계 전반의 성장 동력이 약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국내 주요 제약사들의 2024년 R&D 투자 현황을 살펴보면 유한양행은 지난해 2687억 원을 R&D에 투입해 연 매출의 13%에 해당하는 규모를 기록했다. 대웅제약은 지난해 매출의 18.5% 수준인 2346억 원, 한미약품은 14%에 해당하는 2098억 원을 각각 R&D에 투자했다. 

종근당과 GC녹십자 등도 매출의 10% 이상을 연구개발에 사용하며 업계 평균을 상회하는 수준을 유지했다. 이들 기업은 올해도 전년과 유사한 수준의 R&D 투자를 이어가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이는 대내외 불확실성에도 불구하고 신약 파이프라인 확보와 글로벌 시장 진출을 위한 최소한의 투자 수준을 유지하겠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한편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하 등으로 자금 조달 환경이 점진적으로 개선될 가능성도 제기되나 투자자 신뢰 회복과 대규모 자금 유입까지는 시간이 더 필요할 전망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대내외 불확실성이 해소되고 초기 단계 바이오벤처의 성공 전략과 기술 사업화가 뒷받침돼야만 투자 유치가 가능할 것"이라면서도 "장기적인 신약 개발을 위해 R&D 투자 비율을 유지해야 하는 것이 딜레마"라고 말했다.
[미디어펜=박재훈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