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연지 기자]중국 전기차 시장에서 BYD가 촉발한 가격 인하 경쟁이 중국 자동차 업계 전반을 위기로 몰아넣고 있다. 올해 말부터 중소업체들의 도산과 합병 등 구조조정 가능성과 대형 완성차 브랜드의 수익성 악화가 불가피하다는 전망이 나오는 가운데 당국의 긴급 개입까지 이어지며 사태의 심각성을 방증하고 있다. 이번 할인 전쟁은 중국 전기차 산업의 성장 축을 흔들 뿐 아니라 글로벌 전기차 시장 구조에 근본적 변화를 불러올 가능성이 있다.
10일 업계에 따르면 BYD는 지난달부터 중국 내 주요 전기차와 플러그인 하이브리드(PHEV) 22종에 대해 최대 34%의 할인 공세를 펼치고 있다. 주력 모델 중 해치백 'Seagull'은 20%, 중형 세단 'Seal'은 최대 34%까지 가격이 떨어졌다. 경쟁사인 지리, 치루이, 창안 등도 8%에서 47%에 달하는 할인 대열에 합류하며 시장 전반이 '출혈 경쟁'에 휩싸였다. 중국 정부는 완성차 업체 대표들을 긴급 소집해 가격 전쟁 자제를 요청한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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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토3./사진=BYD 코리아 제공 |
◆ 중국 전기차 시장, 재고 폭증과 가격 전쟁
중국 전기차 시장은 과잉 생산능력과 수요 둔화라는 구조적 문제에 직면해 있다. 지난해 말부터 재고가 급격히 쌓이기 시작했고, 4월 말 전기차 재고는 350만 대를 넘어섰다. 5월 EV·PHEV 판매 증가율은 28.2%로 둔화됐으며, 이는 지난해 33.9% 대비 큰 폭의 하락이다 . 이 같은 수요 위축과 재고 부담이 깊어지면서 업체들은 생존을 위해 마진을 포기하며 할인 경쟁에 돌입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내몰렸다.
BYD가 촉발한 할인 전쟁은 경쟁사들까지 전방위적으로 끌어들였다. 지리자동차는 7개 모델을 8~18% 할인했고, 치루이자동차는 산하 4개 브랜드의 31개 차종에 대해 최대 47%까지 할인 폭을 확대했다. 창안자동차 역시 10%대 중반의 할인으로 가세했다.이에 따라 중국 전기차 업계의 평균 할인율은 지난해 8.3%에서 올해 4월 16.8%로 두 배 가까이 뛰었다.
중소업체들의 도산 우려도 커지고 있다. 업계에서는 현재 중국 전기차 시장이 과잉 공급과 가격 경쟁이 맞물리며 올해 말부터 도산과 인수합병 등 구조조정이 본격화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이미 일부 중소 제조사들은 적자 폭이 커져 도산 위기에 몰렸으며, 이들은 대형 업체에 헐값에 매각되거나 시장에서 퇴출당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자동차 부품사들도 장기 어음 지급 지연으로 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다는 분석이다.
중국 정부도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본격 개입에 나섰다. 중국중앙(CC)TV에 따르면 중국 공업정보화부 관계자는 "자동차 산업의 네이쥐안(內卷·제 살 깎아 먹기)식 경쟁에 대한 정비(감독) 역량을 강화하고 공정하고 질서있는 시장 환경을 확고하게 유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업계 관계자는 "중국 정부가 가격 문제에 직접 개입한 것은 이례적"이라며 "그만큼 시장 상황이 심각하다는 방증"이라고 말했다.
◆ BYD, 수익 둔화·재고 부담·부채 3중고…'제2의 헝다 사태' 우려
BYD가 가격 전쟁에 나선 배경에는 수익성 둔화와 재고 부담, 그리고 부채 문제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BYD는 지난해 세계 전기차 시장에서 테슬라에 이어 판매량 2위를 기록했지만 올해 들어 급격한 수요 둔화와 과잉 생산능력, 재고 누적이라는 삼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BYD는 올해 판매목표를 550만 대로 잡았지만 지난 4월까지의 누적 판매량은 138만여 대에 그치며 목표 달성에 빨간불이 켜졌다. 생산능력만 늘어난 상황에서 재고가 쌓이자 결국 '떨이 판매'라는 강수에 나설 수밖에 없었던 셈이다.
BYD가 할인 경쟁에 나선 데는 부채 문제도 깊이 연관돼 있다. BYD는 지난해 2분기 기준 순부채 규모를 277억 위안(약 5조3000억 원)이라고 공시했지만, 블룸버그가 홍콩 회계법인 GMT리서치 자료를 인용해 실제 순부채가 3230억 위안(약 62조 원)에 달했을 것이라는 분석을 내놨다. BYD가 자체 회계 처리 방식을 통해 부채 규모를 낮춰 공개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시장 불안감은 더욱 커졌다.
BYD의 독특한 협력사 결제 방식도 도마 위에 올랐다.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이 평균 2~3개월 안에 부품 대금을 지급하는 반면, BYD는 평균 9개월, 길게는 1년 후에야 대금을 지급하는 장기 어음 방식을 운영해왔다. 이로 인해 협력사들이 자금을 돌려막으며 버티고 있는 실정이다. 업계에서는 BYD가 공급망 전체를 사실상 '외부 차입'으로 활용해온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BYD가 가격 할인 피해를 메우기 위해 저가 부품을 사용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필요 이상으로 가격 할인을 하고 있는데 장기간 할인이 지속되면 수익성을 위해서라도 부품단가를 낮출 수밖에 없는 상황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저품질 부품을 사용해 단가를 맞춰 팔면 피해는 고스란히 고객들이 떠안아야 한다.
이와 관련, 김필수 대림대 미래자동차학과 교수는 "BYD는 배터리 등을 자가 생산하면서 가격 부분에서 이미 경쟁력을 갖고 있다"며 "더 이상 떨어뜨리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본다. 그 이하로 떨어지게 되면 품질이나 AS, 브랜드 이미지에 영향을 주는 등 오히려 부작용이 생기기 때문에 현 상황에 맞춰 능동적인 대응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BYD의 무리한 성장 전략이 부동산 개발업체 헝다의 몰락과 비슷한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창청자동차 웨이젠준 회장은 최근 인터뷰에서 "자동차 산업에도 이미 헝다가 존재한다"며 "성장에만 몰두해 재무구조가 부실해진 업체들이 언젠가는 붕괴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헝다는 무리한 사업 확장 끝에 2021년 파산했으며, 이후 중국 부동산 시장이 극심한 침체를 겪고 있다. 웨이 회장의 발언은 BYD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 '출혈 수출' 가능성도…"BYD발 지각변동 일어날 것"
BYD의 가격 전쟁은 단순히 중국 시장의 경쟁 구도를 바꾸는 데 그치지 않고, 글로벌 전기차 산업 전반에 지각변동을 예고하고 있다. 업계 강자가 가격을 30% 이상 낮춰버리자 테슬라와 유럽, 미국의 완성차 업체들은 BYD발 가격 경쟁 압박에 직면하며 가격 전략, 생산전략, 품질 경쟁력까지 전방위적으로 재조정해야 하는 상황에 몰렸다.
BYD는 동남아와 한국, 일본 등 신흥 시장에서 점유율을 확대하며 해외 진출에 박차를 가하고 있지만, 가장 수익성이 높은 미국과 유럽 시장은 고율 관세 장벽에 막혀있다. 이에 따라 글로벌 완성차 업계는 BYD가 수출 물량을 헐값에 해외로 밀어내는 '출혈 수출' 전략을 펼칠 가능성에 긴장하고 있다. 실제로 BYD는 일부 해외 시장에서 자국보다 높은 가격을 책정하며 '프리미엄' 이미지를 내세워왔지만, 중국 내 가격 전쟁이 지속되면 해외에서도 대규모 할인 공세가 불가피할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된다.
BYD의 장기 어음 결제 관행은 글로벌 공급망 안정성에도 적신호를 켜고 있다. 이미 중국 내 중소 부품사들이 유동성 위기에 빠져 생산 차질이 현실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중국에서 시작된 '출혈 경쟁'이 한국, 일본, 동남아 등 주요 시장의 부품사들까지 연쇄적으로 흔들 수 있다는 지적이다. 자동차 산업 특성상 단일 부품 공급망이 막히면 완성차 생산 전체가 차질을 빚게 되는 만큼, 글로벌 OEM들도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업계는 'BYD발 출혈 경쟁'이 글로벌 전기차 산업의 지각변동을 일으키는 결정적 계기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김 교수는 "BYD발 가격 경쟁으로 중국 내에서 부도나는 기업들이 생기면서 중국 전기차 업계가 정리가 될 것"이라면서 "그 때쯤이면 지금처럼 가격 경쟁을 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디어펜=김연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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