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마트 의무휴업 규제 둘러싼 정치권 논쟁 10년
   
▲ 이미미 생활경제부장
소비자는 ‘클릭’ 한 번이면 장을 보지만, 정치는 여전히 ‘셔터’를 내리라 한다. 익숙한 이름, ‘유통산업발전법’. 10년 넘게 ‘상생’을 명분으로 이어져 온 논쟁에 또다시 불이 붙었다.

지난해 9월, 오세희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 10명의 의원들이 대형마트 의무휴업일을 다시 공휴일로 지정하도록 하는 유통산업발전법(유통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여당이 된 더불어민주당이 법안 처리에 속도를 낼 것이란 전망에 논란은 재점화됐다.

유통법은 2012년, 골목상권 보호를 취지로 탄생했다. 지난 정부에서는 일부 지자체가 공휴일 대신 평일로 휴무일을 조정하면서 사실상 규제가 완화된 것으로 봤다. 이번 개정안은 그 흐름을 정면으로 거스른다.

유독 유통법은 규제 실효성에 대한 논의보다, 정치적 여론에 좌지우지되는 경향이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로 지난해 21대 국회에서는 대형마트 의무휴업일 폐지와 새벽배송 허용 등 규제를 완화하는 유통법 개정안이 발의됐으나, 끝내 폐기됐다.

정반대 방향의 개정안들이 정치권의 손바뀜에 따라 번갈아 테이블에 올라온다. 이렇다 보니 기업 입장에서도 정권 바뀔 때마다 ‘청기 내려 백기 올려’ 식으로 휩쓸릴 수밖에 없다. 정책은 출렁이고, 기업의 중장기 전략은 그때그때 ‘눈치 보기’로 대체된다.

특히 대형마트 의무휴업일을 공휴일로 되돌리겠다는 건, 소비자더러 ‘장보기 스케줄도 정치 일정에 맞추라’는 말이나 다름없다. 더운 여름, 전기세에 물가까지 오른 와중에 ‘몰캉스(쇼핑몰+바캉스)’ 한 번 누리기도 어려워진다는 얘기다. 마트의 주 고객이 누구인지 정치권은 잊었고, 결국 피해는 국민에게 돌아온다.

대형마트의 출점 제한과 의무휴업일 지정, 심야영업 금지 등은 한동안 ‘상생’을 상징하는 제도처럼 여겨졌다. 하지만 10년이 흐른 지금, 시장 환경은 크게 달라졌다. 온라인 소비의 확산, 대형마트의 역성장, 소비자 쇼핑 행태의 변화 등 규제를 둘러싼 전제가 모두 바뀌었다.

코로나19를 기점으로 소비자의 구매 채널은 더욱 다변화됐고, 대형마트는 이커머스에 밀려 매출과 점포 수가 모두 줄어드는 구조조정의 한복판에 있다.

홈플러스는 기업회생절차를 밟고 있으며, 폐점 위기에 놓인 점포들의 노조와 점주들은 구조조정 철회를 촉구하며 반발하고 있다. 롯데마트 역시 올해 1분기 영업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 34.8% 급감했다. 국내 3대 마트 가운데 두 곳이 이런 상황에서 의무휴업을 강화하면, 기업과 소비자, 근로자 모두가 더욱 힘들어질 수밖에 없다.

의무휴업일이나 심야영업 제한이 실질적인 상권 보호로 이어졌는지에 대해서도 각종 연구와 정부 보고서를 통해 비판적 시각이 제기되어왔다. 소상공인 보호라는 목표는 존중받아야 하지만, 과거의 수단이 현재에도 유효한지는 따져볼 일이다.

정치권도 이를 모를 리 없다. 명분만 반복되는 유통법 개정안은 어느새 실효성도 설득도 없이 떠도는 ‘유령 법안’에 가깝다.

입고, 쓰고, 먹는 생활필수품을 파는 장터의 현대판 버전이 바로 대형마트다. 대형마트 영업시간 제한은 단순한 규제를 넘어 국민 삶과 직결되는 문제다. 장터 문을 닫으라는 건 곧 장사하는 상인들의 생존을 막고, 소비자의 선택권을 빼앗는 일이다.

누구를 위한 상생인가. 정치의 명분 아래 유통업계 종사자도, 소비자도, 그 누구도 대변 받지 못하고 있다.

진짜 상생은 멈추는 것이 아니라, 변화한 시장에 맞는 해법을 찾는 것이다. 유통산업은 달라졌는데 법은 여전히 10년 전 그 자리에 있다. 간극을 좁히지 못하고 정치만 반복하는 유예를, 이제는 끝내야 한다.

[미디어펜=이미미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