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박재훈 기자]중국 배터리 업계가 연이어 대형 IPO(기업공개)에 나서며 글로벌 전기차(EV) 배터리 시장의 판도가 요동치고 있다. 업계 1위 CATL의 홍콩 증시 상장에 이어 중국 내 5위권 기업 이브에너지도 홍콩 IPO를 공식화했다. 이들의 상장 배경에는 중국 내수 전기차 시장의 출혈경쟁 심화와 이에 따른 공급처 상실 우려 그리고 글로벌 시장 지배력 강화를 위한 대규모 재원 조달 필요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중국 배터리 IPO 러시, 내수 출혈경쟁과 공급처 위기
|
 |
|
▲ 중국 푸젠성 닝더시 소재 CATL 본사./사진=CATL |
16일 업계에 따르면 중국 전기차 시장은 최근 수년간 정부 보조금 축소와 업체 난립, 가격 경쟁 격화로 출혈경쟁이 극심해지고 있다. BYD, 체리, 샤오펑 등 주요 완성차 업체들이 판매 확대를 위해 파격적인 할인 경쟁에 나서면서 중소 전기차 브랜드는 물론 배터리 공급망 전반에 수익성 악화가 번지고 있다.
이에 따라 CATL, 이브에너지 등 배터리 업체들은 기존 내수 완성차 업체들의 도산·합병 가능성, 공급처 축소라는 구조적 리스크에 직면했다.
특히 CATL이 배터리를 공급해온 대표적인 중국 전기차 브랜드들인 NIO, XPeng(샤오펑), WM Motor(웨이마), Hozon(네타), Zhiji(지웨), Letin Auto(레틴오토) 등중 상당수가 최근 심각한 경영 악화를 겪고 있다.
NIO는 올해 1분기 기준 현금 및 단기 유동성이 1년 전의 3분의 1 수준인 약 36억 달러로 급감했으며 부채는 20억 달러에 달했다. 판매 부진과 신차 출시 지연, 테슬라 등과의 가격 경쟁에서의 소극적 대응으로 월 인도량도 1만 대에서 6000대 수준으로 하락했다. 샤오펑 역시 신모델 출시와 가격 인하에도 불구하고 2024년 차량 납품량이 전년 대비 40% 가까이 줄었으며 현금 부족과 경쟁 심화로 회생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웸이마와 네타는 대규모 해고와 생산 중단, 매장 철수 등으로 사실상 사업이 중단된 상태다. 지웨와 레틴오토는 신규 투자 유치에 실패하며 파산 직전까지 몰렸거나 이미 파산했다.
이 같은 위기의 배경에는 중국 내수 시장의 성장 둔화, 2023년부터 전기차 보조금 정책 종료, 테슬라 등 글로벌 브랜드의 가격 인하로 인한 마진 하락 그리고 과잉 경쟁 등 복합적인 요인이 꼽힌다. 실제로 2023년 한 해에만 16개 전기차 업체가 폐업했으며 시장은 대기업 중심으로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중국 전기차 시장의 구조조정이 본격화되며 자금력과 기술력을 갖춘 소수의 대기업만이 살아남는 환경이 조성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로 인해 내수 고객사를 바탕으로 1위를 달성한 CATL 역시 공급처 다변화와 리스크 관리에 더욱 신경을 써야 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중국 배터리 업체들의 IPO는 단순한 자본 확충을 넘어 글로벌 사업 확장과 미래 성장동력 확보를 위한 전략적 포석으로 보인다.
CATL은 IPO로 조달한 자금을 유럽 헝가리 공장 등 해외 생산거점 확대와 R&D(연구개발)에 집중 투입할 계획이다. 실제로 CATL의 외화 보유액(약 41억 달러)은 헝가리 공장 건설에 필요한 자금(약 108억 달러)에 크게 못 미치고 있어 이번 IPO가 글로벌 확장에 필수적이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브에너지 역시 홍콩 상장을 통해 국제 자본을 유치하고 해외 완성차 업체와의 협력 확대, 신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할 전망이다. 중국 내수 시장의 불확실성이 커진 만큼 해외 시장에서의 안정적 공급처 확보와 브랜드 신뢰도 제고가 절실한 상황이다.
◆격차 벌어지는 R&D 규모…K-배터리 '활로 모색' 시급
|
 |
|
▲ LG에너지솔루션, 인터배터리 2025 부스에 전시된 46파이 시리즈 배터리./사진=미디어펜 박재훈 기자 |
중국 업체들의 중국 내수 시장의 리스크 상쇄를 위해 IPO를 진행하면서 국내 3사(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SK온)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IPO를 통해 조달한 재원을 R&D나 해외 생산시설 확보로 투입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국내 3사는 유상증자와 회사채 발행 등으로 자금을 조달하고 있다. 하지만 규모 면에서 CATL 등 중국 업체에 크게 못 미치는 상황이다. 삼성SDI, 포스코퓨처엠, LG에너지솔루션 등 기업들의 개별 조달 규모는 CATL의 7조 원에 비해 현저히 낮다.
중국 업체들은 IPO로 확보한 자금을 R&D와 해외 공장 증설에 집중, 고속 충전·나트륨 이온 등 차세대 기술 개발에서 앞서가고 있다. 반면 국내 3사는 실적 악화와 자금력 부족으로 R&D 예산이 전년 대비 평균 15% 감소했다. 이로 인해 전고체 배터리 상용화도 연기되는 등 기술 격차가 커질 우려가 제기된다.
CATL은 글로벌 EV 배터리 시장 점유율 38%로 1위를 유지하고 있으며 한국 3사 합산 점유율은 20% 미만으로 하락했다. 중국 정부의 세제 감면, 보조금 등 전폭적 지원과 달리 한국은 IRA(인플레이션감축법) 등 해외 정책 변화에 취약하다는 점도 리스크로 작용한다. 실제 SK온의 미국 테네시 공장 건설은 1년 연기되는 등 정책 리스크도 현실화되고 있다.
한국은 배터리 셀뿐 아니라 양극재, 음극재, 분리막 등 전 밸류체인을 자체 구축한 몇 안 되는 국가로 생태계 경쟁력은 여전히 높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실제 전방산업인 EV 고객사들의 협업 및 ESS(에너지저장장치)사업에서의 협업도 활발히 이어지고 있다.
이에 정부도 2030년까지 1조 원의 R&D 투자를 포함해 총 20조5000억 원을 투입할 계획이다. 업계에서는 직접환급제 도입, 정책금융 확대, R&D 예산 증액 등 정부의 적극적 지원을 촉구하고 있다.
한편 이재명 정부는 충청권(배터리 제조 거점), 영남권(핵심 소재 및 미래 수요 대응), 호남권(핵심 광물·양극재 거점)등을 연계한 ‘K-배터리 삼각 벨트’ 조성을 추진하고 배터리 생태계 전반을 고도화하겠다고 밝혔다.
업계 관계자는 "중국 업체들의 IPO가 투자로 이어질 것으로 보이며 내수 경쟁에서 나오는 출혈에 따라 투자 재배치를 할 것"이라며 "기존 고객사외에 업계 재편이 되고 있는 만큼 국내 배터리 업계에도 파생되는 기회가 있을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미디어펜=박재훈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