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연지 기자]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외국산 자동차에 부과 중인 25%의 관세 추가 인상 가능성을 직접 언급하면서 자동차 업계 전반에 다시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글로벌 제조사들의 미국 투자 확대를 유도하기 위한 정치적 압박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자동차 가격 인상은 물론, 생산지 재편과 수출 전략 수정 등 구조적 변화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15일 업계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백악관에서 열린 법안 서명식에서 "나는 우리 자동차 노동자들을 더 보호하기 위해 모든 외국 자동차에 대해 25%의 관세를 부과했다. 나는 그리 머지않은 미래(in the not too distant future)에 그 관세를 (더) 올릴 수 있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관세가 더 높아질수록 그들이 이곳(미국)에 공장을 지을 가능성이 커진다"며 관세 인상 목적이 미국 내 생산 유도에 있음을 분명히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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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사진=연합뉴스 제공 |
◆ 관세 압박에 투자 늘리는 글로벌 車업계
트럼프 대통령이 예고한 자동차 관세 인상은 단순한 보호무역 조치가 아닌, 글로벌 제조사들의 미국 내 생산 확대를 유도하는 수단으로 풀이된다. '미국 우선' 기조를 강화하는 차원에서 미국 내 일자리 창출과 제조업 부흥을 강조하는 전략이다. 이에 주요 완성차 업체들은 미국 공장 증설과 생산 이전 등 현지화 수준을 끌어올리는 방식으로 대응에 나서고 있다.
폭스바겐은 전기 픽업·밴 생산을 위한 채터누가 공장 확장을 검토 중이며, 아우디는 미국 내 후보지 3곳을 두고 현지 생산을 추진하고 있다. 메르세데스-벤츠는 앨라배마 공장에 신형 모델을 투입하고 북미용 GLC 생산을 맡길 계획이다. BMW는 내년부터 스파턴버그 공장의 연간 생산량을 48만 대로 확대하고, 차세대 전기 SUV 생산을 시작한다. 도요타는 웨스트버지니아 공장에 8800만 달러를 투자하고, 신형 RAV4 생산지를 일본·캐나다에서 미국 켄터키로 이전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혼다 역시 오하이오 신공장 투자액을 3억달러 증액하고, 시빅 HEV 생산을 일본에서 미국 인디애나 공장으로 이전하기로 했다. 현대차그룹은 2028년까지 누적 210억 달러를 투자해 미국 내 현지화율을 70%까지 끌어올리겠다는 계획이다. 이 같은 움직임은 사실상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압박이 일정 부분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미국 브랜드들도 자국 내 생산을 확대하고 있다. GM은 인디애나 조립공장과 토나완다 엔진공장에 이어 오하이오 등 미국 내 조립공장 3곳에 향후 2년 간 40억 달러를 투자할 계획이다. 반면, 캐나다 전기상용차 조립공장은 가동 중단하고 700명을 감원하는 등 해외 생산기지는 축소하는 분위기다. 스텔란티스 역시 일부 픽업트럭 생산을 멕시코에서 미국으로 이전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 비관세 재고 소진 임박…현대차·기아 가격 인상 불가피
완성차 업계는 이미 현행 25%의 관세만으로도 큰 부담을 안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 4월 3일부터 외국산 자동차에 대한 고율 관세를 공식 부과하기 시작했다. 업계는 단기적으로는 가격 인상 대신 판매 전략 조정에 집중하고 있지만, 비관세 재고가 소진되면 정면 돌파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고 있다.
포드와 스텔란티스는 일부 모델에 임직원가 할인을 적용해 가격 방어에 나섰고, 폭스바겐은 아우디·포르쉐의 미국 선적을 일시 중단한 상태다. 메르세데스-벤츠도 엔트리 모델 GLA의 미국 판매 중단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현대차·기아·제네시스는 아직까지 가격을 동결 중이며, 일부 차종은 특별 현금 할인 행사를 다음달 7일까지 연장했다.
그러나 이 같은 기조를 장기간 유지하기엔 현실적 부담이 크다. 현대차와 기아가 4월 관세 부과 이전 미국으로 선적한 물량은 빠르면 이달 말, 늦어도 7월 초에는 소진될 것으로 보인다. 이후 출고분부터는 고율 관세가 반영돼 소비자 가격 인상이 불가피하다. 업계에 따르면 현대차의 미국 수출 차량 평균 단가는 약 2만3000달러이며, 25% 관세가 적용되면 대당 약 5750달러의 부담이 추가된다.
현대차는 관세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해 조지아주 메타플랜트 아메리카(HMGMA) 공장의 가동률을 높이고, 수익성이 높은 하이브리드 차량 중심으로 물량을 확대하고 있다. 이병근 LS증권 연구원은 "7월부터는 차량 가격을 10% 이상 올려야 관세 부담을 어느 정도 상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 트럼프 '오락가락' 정책에 업계 혼선…현대차그룹은 이미 투자 과해
트럼프 대통령의 자동차 관세 인상 발언은 업계에 혼란을 초래하고 있다. 외국산 자동차에 대한 25% 관세 부과가 이미 실행된 가운데 이에 더해 추가 인상을 시사한 것인데 트럼프 대통령이 매번 기습 발표를 한 뒤 협상의 여지를 두는 방식으로 혼선을 키우고 있다는 지적이다.
업계에서는 만약 트럼프 대통령이 실제로 추가 관세 인상을 단행할 경우 한국을 포함한 주요 수출국의 가격 경쟁력은 급격히 약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현대차·기아 등은 미국 수출 비중이 크고, 고율 관세를 가격에 고스란히 전가하기 어려운 중저가 차종이 많아 수익성 타격이 불가피하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내 투자 압박을 위해 관세를 활용하고 있다는 주장이 나오지만, 현대차그룹 입장에서 선투자 발표를 이미 해놓은 상황이어서 더 이상 투자를 늘리는 것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트럼프 1기 때부터 미국 내 적극 투자를 늘려온 현대차그룹은 현대제철마저 미국 내 공장 설립을 투자 계획할 만큼 적극적으로 트럼프 정책에 동조해왔다.
그럼에도 우리나라 관세가 줄지 않고 추가 인상 압박을 받는 것에 대해 업계에서는 정치적으로 풀어야 한다는 주장이 강하게 나온다. 우리나라와의 협상에서 미국 내 투자 외에 다른 것을 요구할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다. 미국 자동차 브랜드들이 공장을 해외로 이전할 때에도 미국 내 투자를 마다하지 않았던 현대차그룹이기에 결국 우리나라의 자동차 관세 인상은 다른 목적을 염두에 뒀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한편,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 인상을 단행하지 않을 가능성도 여전히 열려 있다. 정치적·경제적 부담 때문이다. 현재 미국 내 자동차 가격은 고금리 여파로 이미 상당폭 상승한 상태이며, 여기에 추가 관세까지 겹칠 경우 소비자 반발이 거세질 수 있다. 미국 자동차딜러협회(NADA)와 소비자 단체들의 반대 목소리도 변수다. WTO 규범이나 USMCA 등 국제 무역질서에도 저촉될 가능성이 있어 외교적 리스크도 만만치 않다.
[미디어펜=김연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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