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연지 기자]서울 집값과 주식시장 상승 흐름에 힘입어 5대 은행의 가계대출 증가 속도가 10개월 만에 다시 최고 수준으로 치솟았다.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대출)' 수요가 다시 고개를 들면서, 기준금리 인하를 준비하던 통화정책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특히 주택담보대출뿐 아니라 신용대출 증가폭도 가파르게 확대되고 있어 증시와 주택시장 양쪽에서 유동성 쏠림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일부 은행은 이미 대출 제한 조치에 들어갔고, 가계대출 급증세가 진정되지 않을 경우 1주택자나 전세대까지 규제를 확대하는 방안도 검토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22일 금융권에 따르면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은행의 이달 19일 기준 가계대출 잔액은 752조749억 원으로, 5월 말(748조812억 원) 대비 3조9937억 원 늘었다. 하루 평균 2102억 원 증가로 이는 작년 8월(3105억 원) 이후 10개월 만에 최대다. 이 같은 증가 속도가 유지된다면, 이달 말까지 가계대출이 약 6조3000억 원가량 늘어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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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집값과 주식시장 상승 흐름에 힘입어 5대 은행의 가계대출 증가 속도가 10개월 만에 다시 최고 수준으로 치솟았다./사진=연합뉴스 제공 |
월간 기준 증가 폭 역시 작년 8월(+9조6259억 원) 이후 최대가 될 가능성이 있다. 각 은행의 분기 말 회계 처리나 규제 수준 등 변수가 남아 있지만, 이미 7월(+7조1660억 원) 수준에는 근접한 상황이다. 은행권은 현재 대출 증가 흐름이 작년 8월 '영끌 대출' 정점 직전과 유사하다고 보고 있다.
항목별로 보면 주택담보대출(전세자금 포함) 잔액은 596조6471억 원으로, 5월 말보다 2조9855억 원 늘었다. 이달 말까지는 4조7000억 원 이상 증가해 5월(+4조2316억 원)보다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신용대출도 같은 기간 103조3145억 원에서 104조4027억 원으로 1조882억 원 증가했다. 하루 평균 증가액이 573억 원으로 5월(265억 원)의 두 배를 웃돌며, 월말 기준으론 1조7755억 원 수준이 예상된다. 이는 2021년 7월 이후 약 4년 만의 최대 증가폭이다.
주담대와 신용대출의 동반 급증은 주택 매입뿐 아니라 증시 투자 수요도 함께 자극받고 있음을 시사한다. 실제로 대출 집행을 앞둔 신청·접수 건수도 빠르게 늘고 있다. A은행에서는 주담대 신청 건수가 1월 4888건(1조1581억 원)에서 5월 7495건(1조7830억 원)으로 늘었고, 이달 19일까지도 5712건(1조4082억 원)이 접수돼 전월의 80%를 이미 채웠다.
B은행 역시 이달 119일 주담대 신청 금액이 1조6710억 원으로, 1월 전체(1조3120억 원)보다 27% 많았다. 특히 정책대출을 제외한 자체 주담대 신청은 1조2040억 원으로, 1월(7050억 원)보다 무려 71% 증가했다.
일부 은행은 대출 억제에 나섰다. NH농협은행은 24일부터 다른 은행에서 갈아타기 형식으로 넘어오는 주담대를 전면 중단하고, 앞서 18일엔 우대금리 조건도 축소했다. SC제일은행은 주담대 만기를 기존 50년에서 30년으로 줄였다. DSR 산정 시 만기가 짧아지면 대출 가능액이 줄어들기 때문에 실질적 한도 축소 효과가 있다.
은행권은 작년 7~8월과 마찬가지로 대출 증가세가 꺾이지 않을 경우 강도 높은 추가 규제를 검토할 것으로 보인다. 예컨대 가산금리를 인상하거나, 생활안정 목적 주담대의 실사용 여부를 엄격히 제한하고, 일부는 한도를 축소할 가능성도 있다. 이마저도 효과가 없을 경우, 1주택자의 수도권 추가 매입 목적 주담대를 제한하거나 무주택자에게만 대출을 허용하는 방안까지 거론된다. 일부 전세대출에 대해서도 소유권 이전 조건부 계약 시 전면 중단을 검토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다만 이러한 조치들이 궁극적인 해결책이 되기는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기준금리가 하락 국면에 있는 만큼 시중에 풀리는 유동성은 앞으로 더 늘어날 수밖에 없고, 주택이나 주식 등 자산시장에서 기대할 수 있는 수익률이 대출 금리를 웃돈다는 인식이 자리 잡고 있는 한 어떤 규제를 가하더라도 영끌 수요를 근본적으로 억제하긴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이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 18일 기자간담회에서 "최근 수도권 주택 가격 상승은 기대심리가 작용한 결과"라며 "구체적인 부동산 공급안이 수도권에서 제시돼야 한다"고 말했다.
결국 내달 10일 열리는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 회의까지 가계대출과 집값 상승세가 꺾이지 않는다면, 경기 침체 우려에도 불구하고 금리를 섣불리 내릴 수 없는 상황이 될 수 있다는 게 시장의 관측이다.
[미디어펜=김연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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