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대 슈퍼카 판매 18.5% 증가…법인차가 열기 키워
'연두색 번호판' 역효과…체면 소비 흐름 '뚜렷'
경차, 33.8% 역성장…단종 수순 현실화 가능성
[미디어펜=김연지 기자]경기 침체와 고금리, 물가 상승 등 소비심리 위축 국면에도 국내 슈퍼카 시장이 거침없이 성장하고 있다. 1억 원 이상 고급 수입차 판매가 두 자릿수 증가세를 기록한 가운데, 수요의 상당 부분은 법인이 주도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서민 실용차인 경차는 외면받으며 30% 넘는 역성장을 기록했다. 자동차 시장의 고급화와 체면 소비 흐름이 더욱 뚜렷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12일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올해 1∼5월 국내에서 판매된 1억 원 이상 수입차는 총 2만8084대로 지난해 같은 기간(2만3699대)보다 18.5% 늘었다. 이 가운데 1만6351대(58.2%)가 법인 명의로 등록됐다. 전년 법인 구매량(1만2795대)과 비교하면 27.8% 증가한 수치다.

슈퍼카 열풍의 중심에는 법인 수요가 있다. 올해 1~5월 기준 페라리는 158대 중 141대(89.2%), 람보르기니는 158대 중 124대(78.5%), 롤스로이스는 86대 중 61대(70.9%)가 법인 명의 차량이었다.

BMW의 1억 원 이상 모델은 1만438대 중 6106대(58.5%), 벤츠는 8210대 중 4981대(60.6%), 포르쉐는 4683대 중 2452대(52.4%)가 법인 구매로 집계됐다. 법인을 통한 비용 처리, 체면용 수요가 여전히 활발하다는 해석이다.

   
▲ 람보르기니 테메라리오./사진=람보르기니 제공

7000만 원 이상 수입차로 범위를 넓히면 고급차 시장의 체급은 더욱 커진다. 같은 기간 해당 가격대 차량은 총 6만6366대가 판매됐으며, 이 중 3만1062대(46.8%)가 법인 명의로 등록됐다. 억대차뿐 아니라 고급 수입차 전반에서 법인 수요가 핵심 소비층임을 확인할 수 있다.

고가 법인 차량의 사적 유용과 세제 혜택 남용을 방지하기 위해 도입된 연두색 번호판 제도는 시행 초기 일시적인 효과를 냈지만, 현재는 제도의 실효성이 퇴색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정부는 지난 2023년 1월부터 출고가 8000만 원 이상 법인 차량에 연두색 번호판 부착을 의무화했다. 제도 도입 초기에는 번호판 색상에 대한 거부감이 작용하며 법인차 등록 비율이 한때 줄기도 했다.

하지만 1년이 지난 현재 분위기는 정반대다. 업계 관계자는 "처음엔 눈에 띄는 번호판이 불편하다는 반응이 있었지만, 지금은 오히려 연두색 번호판이 '고급차 오너'의 상징처럼 받아들여지는 분위기"라며 "실제로 억대 법인차 판매도 상승 흐름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슈퍼카와 고급차 시장이 고공 행진하는 사이 '불황형 자동차'로 불리던 경차는 깊은 침체에 빠져 있다. 국내 소비자들의 구매 성향이 대형차·고급차 중심으로 이동하면서 경차는 점차 선택지에서 밀려나고 있다.

카이즈유데이터연구소에 따르면 올해 1~5월 경차 판매량은 3만809대로, 전년 동기(4만6517대) 대비 33.8% 급감했다. 이 흐름대로라면 연간 판매량은 7만 대를 넘기기도 어려울 전망이다. 경차는 이미 지난해에도 연간 판매량이 10만 대 아래로 떨어지며 내리막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

완성차 업체들도 이런 흐름에 맞춰 라인업을 정리 중이다. 쉐보레 스파크 단종 이후 현재 국내 시장에서 팔리는 경차는 기아 모닝, 레이, 레이 EV, 현대차 캐스퍼뿐이다. 이 가운데 전기차 캐스퍼 EV는 크기 증가로 경차 분류에서 빠지면서 통계상 경차 판매 감소를 더 부추기고 있다. 캐스퍼 EV는 전장과 휠베이스가 커져 법적으로 '소형차'로 분류된다.

업계 관계자는 "실용성보다는 체면과 체급을 중시하는 소비 성향이 슈퍼카 판매 증가, 경차 수요 감소로 나타나고 있다"며 "완성차 업계도 고수익 차종 중심으로 신차를 출시하면서 자동차 시장의 양극화 현상이 더 짙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미디어펜=김연지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