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영향AI 기준 모호… 민간기업 개발 위축시킬 우려
"해외 규제 동향 고려해야… 합리적 법안 마련 중요"
[미디어펜=배소현 기자] AI 기본법(인공지능 발전과 신뢰 기반 조성 등에 관한 기본법)이 내년 1월 시행을 앞둔 가운데, 일부 조항은 다소 AI 현실과 맞지 않는 쟁점적인 측면이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에 업계를 중심으로는 'AI 3대 강국'을 만들겠다는 이재명 정부의 정책 기조를 역행할 수 있다는 우려와 함께 AI 기본법 시행 유예를 외치는 목소리가 커지는 분위기다.

   
▲ 사진=픽사베이 제공


1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따르면 정부는 내년 1월 22일 시행 예정인 AI 기본법의 시행령 초안을 이달 중 공개하고 기업 의견을 들을 예정이다. 당초 시행령 초안은 지난 6월에 공개할 계획이었으나 조항별 가이드라인 등 세부 내용을 조정하면서 일정이 미뤄졌다. 

AI 기본법은 EU(유럽연합)의 'AI 법(AI Act)'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제정된 주요 AI 법률로, AI 산업을 육성하기 위한 체계를 정립하고 AI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위험을 예방하자는 것을 핵심 골자로 한다. EU가 일부 시행을 유예하면서 한국은 세계 최초로 AI 규제를 실시하는 국가가 됐다. 

하지만 AI 기본법을 두고 국내 IT(정보기술) 업계를 중심으로 해당 법안이 AI 산업을 촉진하기보다 AI 개발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사실조사' 등 규제 대상이 될 법률상 '고영향 AI' 정의가 지나치게 추상적이고 광범위하다는 이유에서다. 

고영향 AI는 인간에게 직·간접적 피해를 끼칠 수 있는 AI로, 이를 제공하는 사업자는 이용자에게 해당 사실을 미리 알려야 한다. 법안에는 고영향 AI 범위로 '사람의 생명·신체의 안전 및 기본권 보호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영역'이라는 포괄규정이 담겼다.

사실조사 조항은 이 같은 고영향·생성형 AI 사용 사실을 이용자에게 사전 고지하지 않았거나 AI 워터마크를 표시하지 않은 혐의를 받는 사업자를 정부가 조사할 수 있도록 규정한다. 잘못이 인정되면 사업자는 3000만 원 이하의 과태료를 내야 한다.

고영향 AI의 기준이 모호한 상황에서 해당 규정이 적용되면 민간 기업들은 AI 서비스 개발에 소극적일 수 밖에 없다는 게 업계 중론이다. 더군다나 신고나 민원만 접수돼도 과기정통부 소속 공무원이 사업장에 출입하거나 자료를 조사할 수 있는 규정은 지나친 규제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이에 업계에서는 AI 기본법 규제 조항에 대해서는 일정 기간 시행을 유예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특히 AI 3대 강국을 목표로 하는 한국 입장에서 이러한 포괄적 규제를 도입할 시 AI 산업 진흥을 위축시켜 정책 기조를 도리어 역행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굳이 성급할 필요가 없다"며 "법 시행을 일정 기간 유예해 해외 규제 동향을 고려하고 충분한 검토를 거쳐 결국엔 합리적인 법 개정안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또 "AI 기술 발전 속도가 빠른데 법안은 이 속도를 따라가기 어려울 것"이라며 더더욱 글로벌 흐름에 맞춰 유연하게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미 국회에서도 AI 기본법이 시행되기도 전에 7개의 개정안이 발의된 상태다. 

대표적으로 지난 4월 황정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개정안은 AI 사업자에 대한 의무나 책임을 부과하는 규제 조항 시행일을 3년 유예키로 했다. 

황 의원은 "AI 기본법에 따른 규제가 예정대로 시행되면 한국은 AI 콘텐츠에 워터마크 등의 규제를 가장 먼저 도입하는 국가가 된다"며 "글로벌 AI 패권 경쟁이 심화되고 있는 가운데 첨단 산업에 대한 정부의 설익은 규제 정책으로 AI 강국 도약의 골든타임을 놓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산업계와 학계에서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라고 짚었다.

이어 "전 세계 AI 트렌드가 규제에서 진흥으로 전환되고 있다. 제대로 AI 패권 경쟁에 뛰어들기도 전에 국내 기술 발전에 모래주머니를 채우는 것은 시기상조"라며 "현행법에서 진흥 관련 규정은 우선적으로 진행하되 규제 관련 규정은 그 적용을 일정 기간 유예할 필요가 있다는 현장의 목소리가 제기된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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