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는 철저한 프로페셔널의 세계
정부와 학계는 이상하게도 대기업이 하는 사업에 대해서는 ‘띄워주기’를 잘해주는것 같다. ‘스마트TV’ 띄우기에 언론들도 덩달아 힘을 보태주고 있다. 솔직히 서민들의 주머니 사정은 점점 어려워지고 있는데 스마트TV를 살 돈이 있을까 하는 걱정이 앞선다.
스마트TV를 보면 현재의 미디어 기능을 모두 집어넣으려고 하는 욕심을 부리는 것 같다. 그게 성공할 수 있을까 다른 기업들은 손 놓고 가만히 있는가 천만에 말씀이다. 지금 미디어 지평을 놓고 보면 기존의 전통 미디어들도 시장이 좁아지는 아픔을 겪고 있긴 하지만 자신들의 콘텐츠를 잘 만드는 기업들은 살아남고 있다.
신문이 전체적으로는 어렵지만 신문 기사를 잘 만드는 곳은 버텨가고 있다. 지상파도 케이블TV, 위성TV 등의 파상 공격에 견디면서 프로그램을 잘 만드는 덕분에 살아남고 있다.
새로운 미디어로 등장한 포털과 스마트폰도 처음엔 천하통일을 할 것 같이 기세등등했지만 나중엔 자신이 가장 잘하는 기능으로 모아졌다. 그 후 아이패드, SNS를 보면 지금의 미디어 지평은 컨버전스가 아니라 디버전스의 경향을 띠고 있다.
스마트폰 기능의 상당 부분이 아이패드로 대표되는 태블릿이 가져갈 것으로 보인다. 전자책은 역시 스마트폰보다는 태블릿이 더 편하다. 아이패드가 이것저것 다 하겠다고 욕심을 부리면 아마존의 킨들파이어에게 시장을 뺏길 수 있다. 현재로서는 한창 접전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어서 좀더 시간을 두고 봐야 할 것 같다.
따라서 스마트TV가 모든 걸 다 독식하겠다고 하는 것은 뭘 모르고 부리는 허세이거나 아니면 ‘다 할 수 있다’는 마케팅으로 비싸게 팔아보려는 속셈으로 보인다.
스마트TV의 성패는 뭐니뭐니해도 콘텐츠에 달렸다. 사람들은 스마트TV든 Dull TV이든 TV에서는 소파에 누워서 편안하게 드라마와 다큐, 영화, 쇼, 개그를 시청하고자 할 거다. TV는 수동적인 사용자이고 싶다. TV에서조차 어깨를 곧추세우고 눈이 피곤하도록 검색하려고 들지 않을 것 같다.
기사들을 읽어보면 수천 개 혹은 수만 개의 콘텐츠가 확보되었다고 하는데 숫자가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 콘텐츠란 단 한 개의 킬러 콘텐츠에 의해 승부가 난다. ‘해품달’ 하나면 끝난다. 허접한 콘텐츠, 수백 수천 개는 그저 쓰레기일 뿐이다.
동영상들 중에도 반짝이는 것들이 있긴 있다. 그러나 그건 반짝이는 인조 구슬과같다. 동영상도 콘텐츠라고 우긴다면 아니라고 부인하긴 어렵지만 콘텐츠란 모름지기 작가의 치열한 창작 정신과 아기를 낳는 것과 같은 절박한 고통 속에 귀하게 태어나는 것이다. 눈물과 땀, 고통으로 만들어지지 않고 ‘장난’과 ‘뽐냄’으로 만든 콘텐츠에는 사람들은 돈을 지불하지 않는다.
콘텐츠는 철저한 프로페셔널의 세계이다. 직업으로 해야 한다. 그것 아니면 생계를 유지할 수 없는 사람들이 만들어야 한다. 아마추어들이 할 수 있는 건 이 세상에서 아무 것도 없다. 아마추어들은 그저 마케팅의 들러리일 뿐이다.
대개 콘텐츠 육성을 얘기하는 사람들은 이런 콘텐츠의 본질적인 특성을 알지 못한다. 작가와 PD, 탤런트의 수고를 모르고 책상에 앉아서 계획을 짜고 호텔에서 비싼 밥을 먹으면서 콘텐츠를 말한다. 한마디로 가소로운 일이다.
어떤 이는 스마트TV에 맞는 콘텐츠 개발을 강조한다. 어디서 많이 듣던 소리인 것 같다. DMB가 나왔을 때 작은 화면에 맞는 콘텐츠를 개발해야 한다고 말을 했다. 손바닥만한 화면에서 구현되는 콘텐츠가 무슨 감동을 줄 수 있겠는가 한번 까르르 하고 웃는 걸로는 돈을 받을 수 없다.
스마트TV에 딱 맞는 콘텐츠는 뭘까 기존의 TV와 차별화되는 콘텐츠가 있을까 장엄한 우주의 모습을 담는다면 혹 모를까 설사 가능하다고 해도 엄청난 제작비를 감당할 만한 수익을 올릴 수 있을까 전 세계 시장을 상대로 하는 허리우드 영화계라면 그런 비용을 감당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허리우드조차 그런 콘텐츠를 지속적으로 만들어낼 수 없을 것이다. ‘닥터 지바고’의 영상미는 다시는 재현하지 못했다. 장엄한 콘텐츠가 그리 마음 먹은 대로 쉽게 나오는 게 결코 아니다. 좋은 콘텐츠는 수많은 요소들이 서로 딱 맞아떨어졌을 때 만들어진다. 이게 얼마나 힘든 작업인가.
더욱이 TV는 기본적으로 로컬 정부의 규제 대상이므로 로컬의 범위를 벗어나기 어렵다. 한류를 생각하는 모양인데, 그것은 덤으로 생각해야지 해외시장을 겨냥하고 프로그램을 만들면 쪽박 차기는 시간문제일 것이다.
콘텐츠는 제조품과는 다르다. 콘텐츠를 만드는 것은 종합적인 능력, 기다림, 특별한 재능을 요구한다. 완성되기 전에는 눈에 보이지 않고 완성되어도 사람들에게 노출되기 전에는 시청률을 예상할 수 없다. 한마디로 불확실한 것이 콘텐츠의 가장 큰 특징이다.
한국인은 이 부분을 마지막으로 도전해야 한다. 불확실한 창조산업인 콘텐츠에 도전할 때 삼성과 LG, KT, SKT 등은 애플, 구글과 아마존, MS, 페북과 겨룰 수 있다. (종려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