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에 빠진 김문경 감독의 책 '영화처럼 걷고, 여행처럼 찍다'
'정직한 사람들'의 김 감독, 세계 11개국을 영화처럼 담은 에세이
[미디어펜=이석원 문화미디어 전문기자] 삶이 팍팍하다. 특히 MZ라 불리는 2030 젊은 세대들의 삶은 더 팍팍하다. 더더구나 이제 막 사회에 진출하려고 하는 이들은 팍팍함을 넘어서 절망스럽기까지 하다. 

세상은 빠르게 바뀌고 있고, 정치든 경제든 뉴스 화면 속 세상은 저 혼자 신이 난 듯 정신없이 돌아가고 있다. 하지만 21세기를 25%나 소모한 대한민국은 대체로 젊은이들의 삶을 별로 신경쓰지 않는 듯하다. 그래서 젊은 세대들의 삶은 계속 팍팍하다.

그 자신이 ‘팍팍’한 MZ에 속하는 영화감독 김문경은, 그래서 자신의 첫 장편영화에서도 ‘팍팍’하다 못해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일탈과 이탈에 몰리는 젊은이들의 이야기를 그렸다. 

그저 취업하려고 아둥바둥거리는 게 대단히 잘못하는 일이 아님에도 삶이 생각과 다른 방향으로 몰려가는, 측은하기도, 안타깝기도 한 그 젊은이들의 ‘팍팍’함을 그린 영화 ‘정직한 사람들’이 바로 그것이다.

   
▲ '영화처럼 걷고, 여행처럼 찍다'의 저자 영화감독 김문경. /사진=사유와공감 제공


감독은 스스로 “잘 찍지 못한 영화”라고 얘기하지만, 언어가 투박할지는 몰라도 그 알맹이는 가슴 아픔으로 가득 찬 영화를 세상에 꺼내 놓고 난 후 영화 사이사이의 빈 곳보다 더 빈 가슴을 느꼈던 걸까? 영화가 아닌 다른 언어로 자신을 드러내 보였나 보다. 그렇게 이 시대를 살아가는 ‘팍팍’한 젊은이인 본인의 또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 낸 것을 보면.

‘젊은’ 김문경, 영화처럼 걸었다

김문경 감독에게 영화를 빼고도 얘기할 수 있는 게 하나 더 있는데 그건 여행이다. 그는 세계 30여 개국을 돌아다닌 여행 고수다. 삶을 잘게 쪼개서 쓰는 것을 즐기는 그는 영화를 만들고, 공부를 하고, 또 그렇게 살아가는 순간 순간의 작은 틈에 다시 작은 시간들을 배치해 여행을 해 왔다. 그리고 그 여행의 흔적들을 하나씩 하나씩 모아서 책까지 냈다. 

김문경 감독의 책 제목을 보면 그 책의 내용이, 그 여행이 어떤 것인지 직관적으로 알 수 있다. ‘영화처럼 걷고, 여행처럼 찍다’(사유와공감 출간). 영화감독인 그가 어떤 여행을 했는지, 그 여행에서 무엇을 보고 담았는지를 짐작하는 게 어렵지 않아 보인다. 이 책을 읽으면 여행과 영화 보기가 함께 이뤄질 것이라는 산뜻한 예감도 어렵지 않다.

“영화라는 새로운 세계관을 창조하는 직업과 달리, 오롯이 내 이야기만을 솔직히 풀어내는 건 결코 쉽지 않았다. 타자율이 800대인 내가, 200 타율도 못들었으니 말이다. (‘영화처럼 걷고 여행처럼 찍다’ 저자 서문 중)

   
▲ 김문경 감독의 책 '영화처럼 걷고, 여행처럼 찍다'. /사진=사유와공감 제공

그런데 영화를 만드는 일은 고된 ‘작업’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여행은 즐거운 ‘놀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아마도 김문경 감독에게는 꼭 그렇지만도 않았나 보다. 여행까지는 어땠는지 몰라도 그 여행의 흔적들을 하나씩 꿰서 예쁜 목걸이 장식으로 만드는 작업은 영화를 만드는 일만큼 녹록치 않았다고 토로하니 말이다.

김 감독에게 여행은 익숙한 일이지만 책은 결코 만만한 존재가 아니었다. 20대가 되고서부터 영화만큼 빠졌던 여행이 1년 중 반년에 이른 적도 있을 정도였다. 고행한다는 마음으로 다닌 게 아닌 바에야 김 감독에게 어쩌면 영화보다 더 신나고 행복한 게 여행이 아니었을까? 

그렇지만 그 여행의 결과물을 책으로 만든다는 건 꿈도 꿔보지 못한 일이었다. 적어도 누군가의 부추김이 있기 전까지는.

20대 때부터 배낭여행으로 해외에서 살다시피 했어요. 일 년에 반 년씩 있었던 적도 있죠. 그랬더니 지인들이 책 쓰는 걸 권하더군요. 하지만 책을 내는 방법도 몰랐어요. 권유 때문에 생각만 하고 엄두도 못 냈는데 지난 해 어떤 유튜브 채널에서 영화와 여행을 연관해서 여행을 다닌다는 얘기를 했더니 그걸 출판사 대표님이 듣고 출간을 제안했죠.

원래 그렇다. 무슨 일이든 예기치 않았지만, 운명처럼 들이닥치는 일이 있다. 김문경 감독에게는 그게 책이었다. 영화가 오래전부터 꿈꾸고, 공부하고, 여러 다짐의 결과물이었다면, 여행 책은 그야말로 전혀 예상하지도, 계획하지도 않았는데 느닷없이 다가온 것이었다. 

그래도 그는 제법 잘 집중하는 편이다. 제안을 받고, 해보자고 생각한 후 그는 아무 것도 하지 않고 한동안 책 쓰기에만 몰두했다. 

   
▲ 김문경 감독은 영화를 통해서 여행을 한다. 그 여행지 속에서 또 영화를 보는 것이다. /사진=사유와공감 제공

영화 시나리오를 제외하고, 또 일기나 편지 쓰기를 제외하고 집중해서 쓴 그의 책 ‘영화처럼 걷고, 여행처럼 찍다’에는 모두 세계 11개 국가(도시)가 나온다. 쿠바를 시작으로 인도와 스페인, 포르투갈과 미국(뉴욕)이 나오고, 또 태국과 대만, 중국(상하이)과 베트남과 마카오, 그리고 그가 가장 사랑하는 홍콩이 등장한다.

‘감독’ 김문경, 여행같이 스며든 영화

홍콩은 김 감독이 영화를 하게 된 이유가 된 곳이기도 하다. 그는 고교 시절 왕가위 감독의 ‘중경삼림’과 '아비정전‘을 보고 영화를 꿈꾸기 시작했다. 그는 왕가위 감독에 대해 ”살면서 본 모든 영화감독 중에 가장 비주얼리스트“라고 그를 정의한다. 홍콩 영화를 세계 영화의 교본으로 만들었던 왕가위 감독에게 매료된 것은 별로 특별하지 않은 일이다. 

왕가위나 오우삼 같은 이들의 영화를 보면서 영화배우나 감독을 꿈꾼 청소년이 어디 김 감독 뿐이었을까? 아무튼 그러니 김 감독에게 홍콩은 매우 당연한 여행지일 것이다.

그런데 그가 이 책에서 홍콩이 아닌 쿠바를 첫 페이지로 선택한 이유는 특별하다. 쿠바를 그리는 젊은이들이 대개 그렇듯 김 감독도 물론 체 게바라를 생각했다. 

그런데 정작 그가 쿠바를 그리면서 봤던 영화는 쿠바 배경이 아닌 ’모터사이클 다이어리‘였다. 쿠바에 가기 전, 혁명가가 되기 전 게바라의 흔적을 볼 수 있는 영화 ’모터사이클 다이어리‘가 왜 쿠바와 연결됐을까?

쿠바는 쿠바 혁명에 뛰어들기 전 체 게바라를 그린 영화 ‘모터사이클 다이어리’ 때문에 좋았어요. 혁명가 체 게바라를 그린 영화들도 있지만, 체 게바라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모터사이클 다이어리’가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체 게바라를 제대로 이해한 후 쿠바를 여행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었죠.

쿠바가 가장 첫 장에, 그리고 홍콩이 가장 마지막 장에 등장하는 것은 김 감독의 치밀한 계산이면서도 김 감독의 의식을 따라 여행이 이뤄졌으면 하는 바람일 수도 있는 듯하다.

김문경 감독이 ‘영화처럼 걷는’ 여행을 하는 것은 단지 그가 영화감독이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기 때문 만은 아니다. 여행을 하는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 스타일의 여행을 하기 마련이다. 

어떤 이는 그저 편안히 쉬는 휴양의 여행을 택하기도 하고, 또 어떤 이들은 유명한 관광지라면 하나도 빠짐없이 다 다니면서 사진에 박제하기도 한다. 또 어떤 이는 카페나 식당을 찾아다니는가 하면, 또 어떤 이들은 대자연을 따라 오프로드 여행을 즐기기도 한다.

   
▲ '영화처럼 걷고, 여행처럼 찍다'에서 김문경 감독은 모두 11개의 국가(도시)를 소개한다. /사진=사유와공감 제공

그런데 김 감독은 먼저 영화를 보고, 그 영화에 등장한 장소들을 눈에 담고, 그곳에 머물면서 영화 속의 인물들처럼 그 장소의 하나가 돼 보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다. 

김 감독은 “영화를 보고 가는 여행지들은, 그 영화 속에서 봤던 감정을 느낄 수도 있고, 그 스팟에서 그 감성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같은 장소라도 모든 사람의 감성이 같을 수는 없겠지만, 제 나름의 감성을 느끼면서도 영화 속에서의 감성이 어떤 것이었는 지를 영화 화면이 아니 그 화면이 실현된 공간에서 다시 느껴 보는 것이 좋은 여행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김문경 감독이 ‘영화처럼 걷고, 여행처럼 찍다’에 꼭 넣고 싶었는데 넣지 못한 곳도 있다. 오스트리아라고 한다. 

“오스트리아 빈이나 잘츠부르크는 그곳을 배경으로 한 영화도 많죠, ‘비포 선라이즈’나 ‘사운드 오브 뮤직’이 대표적이죠. 특히 빈은 굉장히 영화 감수성이 강한 도시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꼭 이 책에 넣고 싶었어요. 그런데 아무래도 빈을 비롯한 오스트리아는 음악의 느낌이 더 강하지 않아요. 음악의 도시니까요. 그래서 무척 아쉽지만 이번 책에서는 뺐어요.”

하긴 그가 여행한 곳은 30여 개국에 이르는데, 책에서 소개한 곳은 겨우 11곳이니 이런 책 세 권이 더 필요한 셈이다. 

하지만 그는 ‘그만하기’를 잘 했다. 전문 여행 작가도 아닌 자신이 여행을 소재로 한 책을 계속 만든다는 게 ‘자기 일’은 아니라는 생각을 한 듯하다. 

대신 그는 영화로 보여주고 싶어한다. 여행지에서 느낀 감정을 직관적인 여행 책이 아닌 자신의 영화 속에 자연스럽게 녹여 넣는 것, 그게 영화감독인 자신이 할 일이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그리하여 김문경 감독, 여행에서 영화를 말하다

앞서 언급했듯, 김문경 감독은 자신의 첫 장편영화인 ‘정직한 사람들’이 그다지 ‘잘 찍은 영화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긴 첫 장편이 ‘잘 찍었다’고 생각하는 감독이 몇이나 있을까? 또 그런 만족감이 가능할 수 있을까? 만족할 수 없으니 그 다음 영화가 또 있는 것이다. 김문경 감독도 그 길 위에 서 있다.

김 감독은 역시 MZ다. 힘겹고 지치고 신나는 일보다는 버거운 일이 많지만, 그래도 주어진 지금의 삶을 꿋꿋이 살아가고 있는 MZ다. 그래서 최근 우리나라 뿐 아니라 세계 영화계가 함께 겪고 있는 영화의 치열한 변화에 당황하기 보다는 올라탄다. 

OTT로 인해 영화관이 위기라고 해도, OTT는 영화관의 위기일지는 몰라도 영화의 위기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젊은이들 사이에서 긴 영화를 진득하게 보는 것보다는 1분 남짓의 숏폼이 대세를 이루는 것도,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이 자괴감에 빠질 일이 아니라 그 대세에 올라타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 김문경 감독의 첫 장편영화 '정직한 사람들'. 현재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의 힘겨움이 그려져 있다. /사진=제이플러스비 제공


“영화의 기회일 수 있어요. 영화관에서만 영화를 보던 시대는 이미 80년대 비디오가 나오기 시작하면서 저물었다고 생각하거든요. ‘영화관 영화’의 위기는 맞지만, 영화는 영화관에만 있는 것은 아니니까요. 그래서 저도 OTT 시리즈를 만드는 것을 생각하고 있어요. 하지만 그보다 먼저 짧은 호흡의 영상을 만들고 싶어요. 요즘 젊은 세대가 향유하는 숏폼 드라마에 대해 고민 중입니다. 1분 안팎의 유료 드라마. 지금 기획팀이랑 조율하고 있어요.”

21세기를 반의 반 써버린 지금의 젊은이들은 피곤하고 힘들다. 어지간해서 돌파구는커녕 출구도 잘 보이지 않는다. 마치 이제 막 서울-양양 고속도로 양양-인제 터널의 3분의 1쯤에 들어간 듯 답답하다. 

그 젊은이들과 같은 길 위에 김문경 감독도 서 있다. 김 감독이라고 해서 남들은 3분의 1 지점에 있는 터널의 3분의 2 지점에 있는 것은 아니다. 그 또한 그들과 같은 지점에 있을 것이다.

그래서 김문경 감독은 영화를 찍고, 그 영화가 쉬어가는 시간에 여행을 한다. 그 여행을 위해 영화를 보고, 그 여행 중에 그 영화를 기억해 낸다. 그렇게 그는 ‘영화처럼 걷고, 여행처럼 찍어' 온 것이다.

그는 이 책이 많이 팔리길 바라냐는 아주 단순한 질문에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솔직히 그 속마음은 누구나 다 알 수 있다. 그런데도 그가 ”이 책이 많이 팔려서 많은 분들이 읽었으면 좋겠다“는 단순한 대답을 이야기하지 못하는 이유는 뭘까?

“이 책이 몇 권이나 팔리고, 몇 쇄를 인쇄했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은 안 해봤어요. 이 책을 쓴 사람의 욕심은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죠. 읽는 사람들이 무조건 중요해요. 책이든 영화든 무조건 재밌어야 합니다. 그래서 여행지에서 느꼈던 걸 무조건 재밌게 쓰려고 했어요. 영화를 만드는 마음으로 영화의 감성들 담아 열심히 썼기 때문에 그래도 많이 봐주셨으면 좋겠어요.”

아마도 김문경 감독은 자신이 만든 영화든, 자신이 쓴 책이든, 그것들이 자신과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수많은 피곤하고 힘들고 ‘팍팍’한 젊은이들이 공감하고 재밌어하는 것이 되기를 바랄 것이다. 

그래서 그는 재밌게 쓴 책 ‘영화처럼 걷고, 여행처럼 찍다’에서 선 하나를 길게 뽑아 다음 영화에 연결해 놓으려 할 것이다. 자신과 같은 모든 젊은이들이 재밌게 살기를 바라며.
[미디어펜=이석원 문화미디어 전문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