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이석원 문화미디어 전문기자] 아둥바둥 살아야 하는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해, 앞이 보이지 않는 미래를 조금이라도 희망으로 채울 수 있기 위해 이 시대의 젊은이들은 영혼까지 끌어모아 아파트를 장만하려고 한다.
이른바 '영끌'은 이 시대 MZ 세대들에게는 이제 일상의 언어가 됐고, 대출 금리의 부침으로 곤욕을 치르면서도 그래도 오직 믿을 구석은 그것 뿐이라며 매달린다. '영끌'을 하지 않는 젊은이는 게으르거나 부자거나 둘 중 하나라는 인식이 팽배한 오늘, 강하늘이 그 암담한 현실 속에서 다시 허우적거리게 됐다.
14일 서울 중구 앰배서더 서울 풀만 호텔에서 열린 영화 '84제곱미터' 제작발표회는 한 영화가 완성돼 대중들에게 소개되기 직전, 그러니까 영화에 대한 기대와 희망이 가득한 자리인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84제곱미터'의 제작발표회 현장은 어딘지 유쾌하지만은 않은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
 |
|
▲ 14일 제작발표회를 가진 영화 '84제곱미터'의 세 주역인 강하늘과 염혜란, 그리고 서현우. /사진=넷플릭스 제공 |
주인공인 강하늘 본인부터가 그런 분위기를 자아낸다. 제작발표회장에서 강하늘은 "평범한 청년 우성이 내 집 마련의 꿈을 이루지만, 층간 소음에 점점 쇠약해진다"며 자신의 배역을 설명한다. 얼굴 가득 미소가 번져있지만, 씁쓸해 보이는 것은 이 영화가 담고 있는 내용 때문일 것이다.
이 영화에서 강하늘은 평범한 30대 직장인이자, 주택 담보대출부터 퇴직금, 원룸 보증금, 엄마의 마늘밭 판매금까지 다 털어서 32평 아파트에 입성한 인물 우성을 연기했다. 마침 아파트 인근에 GTX가 지나간다는 호재까지 맞물려 우성의 기대감도 커진 상황. 하지만 입주 직후 알 수 없는 층간 소음이 시작되면서 악몽은 시작됐다.
대출금을 갚을 길이 막막해지고, 아파트는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한 푼의 돈이라도 아끼려고 온갖 '추접한 짓'은 다하는데, 심지어 밤마다 층간 소음으로 잘 수조차 없다. 그런데 이 아파트 주민들은 그 층간소음의 주범이 강하늘이라고 한다. 강하늘은 미치고 펄쩍 뛸 노릇이다.
강하늘은 연기가 쉽지 않았음도 토로한다. 영화 처음부터 끝까지 거의 매회 촬영마다 강하늘은 촬영분이 있었다고 한다. "어떻게 하면 오늘 좀 빨리 끝날까만 생각했다. 대본을 처음 읽었을 때 저 말고도 다른 인물이 많았는데 촬영하면서도 감독님께 '매 촬영마다 저밖에 없느냐'고 장난을 쳤다"는 강하늘의 말은 그가 얼마나 많이, 또 얼마나 힘겹게 촬영에 임했는지 짐작케 한다.
|
 |
|
▲ '84제곱미터'의 김태준 감독. /사진=넷플릭스 제공 |
넷플릭스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 이후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는 염혜란은 이번 영화에 대해 "그 어떤 스릴러보다 더 쫄깃쫄깃했다. 정말 우리들의 얘기라는 공감대가 있어서 꼭 해보고 싶었고, 지금까지 제가 하던 결과 다른 캐릭터여서 도전해보고 싶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그는 아파트 최고층 펜트하우스에 사는 입주민 대표 은화 캐릭터에 대해 “흔히 볼 수 없는 굉장한 권력형 부자다. 이 사람을 건드리지 않고 잘 이용한다면 나의 욕망을 실현하는 데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은 인물로 생각하고 접근했다”고 전해 그의 새로운 모습을 향한 궁금증을 끌어올렸다.
극중 강하늘의 윗집 남자로 등장하는 서현우의 말도 같은 맥락이다. 이날 제작발표회에서 서현우는 "강하늘 배우가 거의 전 회차를 찍었는데, 세트장에 가면 귀신이 한 명 살고 있었다"며 "아파트 벽지 주변을 상주하는 느낌이었다"고 말해 좌중을 웃게도 했다.
물론 서현우는 "굉장히 어둡고 무언가를 파헤쳐가는 스릴러 분위기의 작품인데, 강하늘 배우가 현장에서 좋은 에너지를 전달해줘 같이 연기할 때 행복했다"며 강하늘을 한껏 치켜올리는 것을 잊지는 않았다.
서현우가 맡은 역은 실전형 파이터이자 우성에게 연민을 느끼는 윗집 남자 '진호'. 강하늘이 층간 소음의 범인으로 의심했지만, 정작 강하늘에게 상당한 연민과 동질감을 느끼는 캐릭터로 등장해 이번 영화가 개봉한 후 상당한 관심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기대가 모이는 인물이다.
2014년 '착한, 사람들'이라는 영화로 극영화에 데뷔한 후, 2023년 영화 '스마트폰을 떨어뜨렸을 뿐인데'로 단번에 영화계의 주목을 받은 김태준 감독은 이 영화에 대해 "층간 소음이라는 현실 소재와 영끌족부터 고금리 대출까지 생활과 밀접한 이야기들을 녹인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
 |
|
▲ 제작발표회 무대에 함께 선 서현우, 김태준 감독, 강하늘, 염혜란(사진 왼쪽부터). /사진=넷플릭스 제공 |
현재 우리나라 주택 구성의 상당수, 특히 서울을 비롯한 대도시 주택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아파트에서 가장 일상적이면서도 심각한 문제인 층간소음을 영화의 소재로 삼았다는 점은, 김태준 감독이 전작에서 스마트폰을 소재로한 스릴러를 만든 것과 정서가 통하는 면이 있다.
김태준 감독은 "지금 청년들이 가지고 있는 현실적 모습과 욕망을 우성에 투영하고 싶었다"며 "우성이 처한 상황이 팍팍하다 보니 우성이 지나치게 어두운 인물이 되는 게 아닌가 걱정도 들었다"고 연출 과정에서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그러나 김 감독은 "때문에 평소에 강하늘이 가진 긍정적 이미지가 우성에 더해진다면 단순히 어두운 인물이 아니라 '짠한' 캐릭터로 거듭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김태준 감독은 "우리나라에서는 이미 많은 분이 층간 소음을 겪고 있다"며 "우리나라 주택 80%가 공동 주택이고 그중에서도 아파트가 80% 이상인데 국민의 대부분은 층간 소음을 겪거나 겪을 수 있는 환경에 놓여있다는 이야기"라고 강조했다. 이어 "층간 소음이라는 소재가 굉장히 시의성이 있고 공감대가 형성 가능한 소재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영화 속 또 다른 중요한 인물인 염혜란은 지지고 볶으며 사는 평범한 이웃들과는 달리 돈과 권력을 모두 가진 펜트하우스의 주인이자 이 아파트 입주민 대표인 은화. 은화의 집에는 최고급 브랜드인 '에르메스' 접시와 수천만 원이 넘는 가구들이 배치돼 뭐든 함부로 만지기 조심스러웠다고 한다.
[미디어펜=이석원 문화미디어 전문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