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등 망 사용료 회피… 글로벌 CP, 국내 인터넷망 트래픽 40%↑ 차지
구글, 고정밀 지도 반출 공식 요청… '블러 처리' 한다면서도 좌표값까지 요구
[미디어펜=배소현 기자]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을 둘러싼 '망 무임승차 논란'과 '고정밀 지도 반출 요구' 문제가 한국의 디지털 주권을 위협하는 핵심 통상 이슈로 떠오른다. 이에 업계와 학계에서는 국내 기업을 우선적으로 보호해야 한다는 목소리와 함께 "상황을 엄중히 봐야한다"는 등 강한 우려를 표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망 이용대가 제도화'를 공약으로 내건 가운데,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관세 폭탄을 내세우면서 과한 통상 요구를 하고 있어 정부 역시 골머리를 앓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주요 협상사안은 반도체·철강·자동차 등의 제조업이지만, 플랫폼법·망 사용료·정밀지도 반출 등 디지털 분야도 덩달아 핵심논점으로 떠르고 있다. 특히 고정밀 지도 등의 요청을 거부하면 다른 통상협상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만큼, 각 정부부처도 이해관계에 따른 다른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 망 사용료, 네이버·카카오는 수천·수백억 원대 내는데… 구글은 '모르쇠'

   
▲ 구글 마니쉬 굽타 딥마인드 시니어 디렉터가 2일 서울 강남구 조선 팰리스 호텔에서 열린 '구글 포 코리아'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여는 구글 AI'를 주제로 발언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16일 업계에 따르면 글로벌 콘텐츠 사업자(CP)가 국내 인터넷망에서 막대한 트래픽을 유발하면서도 망 사용료는 내고 있지 않아 역차별 문제가 거듭 제기된다.

망 사용료는 글로벌CP가 데이터 전송에 따른 트래픽을 처리하기 위해 국내 통신사업자(ISP)에게 내는 비용을 일컫는다. 네이버·카카오 등 국내 기업들은 매년 수백에서 수천억 원의 망 사용 대가를 지불하는 반면, 구글의 경우 약 2000억 원 규모의 망 사용료를 나몰라하고 있는 실정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따르면 작년 국내 일평균 생성 트래픽 비중 가운데 구글이 차지하는 비중은 31.1%였다. 넷플릭스(4.88%), 메타(4.39%)까지 합산하면 글로벌 CP가 국내 인터넷망 트래픽의 4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네이버와 카카오의 트래픽은 각각 3%, 1%대에 불과하다.

네이버·카카오 등 국내 기업들은 통신사들과 자율적으로 협의해 매년 망 이용 대가를 지불하고 있다. 이 밖에 스트리밍 플랫폼 SOOP(숲), 웨이브나 티빙 등 온라인동영상플랫폼(OTT) 기업들도 망 사용료 납부 의무를 지키고 있다.

그러나 글로벌 CP들은 망 사용량이 수십배나 많은데 반해 국내에서는 부담 의무가 없다는 이유로 비용을 내지 않고 있다. 구글뿐만 아니라 다른 해외 CP까지 합치면 최대 조 단위의 규모가 걸린 사안이다.

망 '무임승차' 논란이 확산하자 국회에서도 이미 여러차례 이를 방지하는 것을 골자로 한 법안 발의가 이어졌으나 이렇다 할 진전은 이루지 못했다. 

이는 글로벌 플랫폼에 대한 망 사용료 부과가 제도화될 경우 국가 차원의 통상 문제로 비화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특히 트럼프가 자국 빅테크 기업에 대한 규제 움직임을 면밀히 견제하고 있는 만큼 한국 입장에선 미국이 망 사용료 부과에 강하게 반발하거나 보복할 경우도 대비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 구글 이어 애플도 고정밀 지도 반출 요구… 보안 통제 사실상 어려워

   
▲ 사진=픽사베이 제공.


망 무임승차 문제와 더불어 '고정밀 지도 데이터 반출' 문제도 최근 주요 통상 쟁점으로 떠올랐다. 현재 정부는 구글과 애플이 각각 신청한 '고정밀 지도 데이터 해외 반출' 요청을 두고 검토를 진행 중이다. 

앞서 구글은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출범한 이후인 지난 2월 18일 국토부 국토지리정보원에 '1 대 5000' 축척의 국내 고정밀 지도를 해외 구글 데이터 센터로 이전할 수 있게 해달라고 신청했다.

구글은 지난 2011년과 2016년에도 두 차례에 걸쳐 정밀 지도 반출을 요청했으나 당시 정부는 보안 시설 정보가 담긴 데이터를 해외 서버에 둘 시 정보 유출과 보안상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이유로 불허했다. 2016년에는 정부가 구글을 향해 '국내에 서버를 두고 고정밀 지도 데이터를 활용하라'는 방안을 제시했지만, 구글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올해 다시 문을 두드린 구글은 정부가 요구하는 가림(블러) 처리를 하겠다며 보다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면서도, 블러 처리를 위해 보안 시설의 좌표값까지 요구하고 나섰다. 국내에 서버가 없는 상황에서 해당 좌표값이 해외로 반출될 시 국가 보안 시설 위치만 고스란히 노출되는 위험성이 제기된다.

이 가운데 과거 사례를 비춰봤을 때 해외 기업의 지도 서버에 대한 실질적인 보안 통제는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볼 수 있다. 실제 국방부는 지난 2021년 구글의 위성지도 서비스인 구글 어스에 노출된 국가 주요 안보시설에 대해 '저해상도 처리 요청'을 했지만 현재까지도 별다른 조치가 이뤄지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또 구글이 국내에 자체 구축 서버를 두지 않으려는 것은 '법인세는 내지 않으면서 데이터는 확보하려는 전략'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김우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지난해 구글이 낸 법인세는 172억 원으로, 네이버(3842억 원)나 카카오(1571억 원)에 비해 턱 없이 적은 액수다. 네이버와 카카오는 국내 고정밀 지도 데이터를 사용하고 있다.

애플도 국내에 고정밀 지도 반출 신청서를 제출한 상황인 만큼 이를 허용할 시 해외 기업들의 유사 요청이 뒤따를 우려도 제기된다. 이 경우 국제 형평성 관점에서 더욱 거부하기 어려워질 것이란 분석이다.

◆ 업계선 우려 쏟아져… 학계서도 "디지털 주권 고려해야"

   
▲ 사진=픽사베이 제공.


이에 업계에서는 글로벌 빅테크들의 국내 영향력이 커지는 데 대한 우려가 쏟아진다.

우선 '망 무임승차' 문제와 관련해 업계에선 통상 마찰 등 부작용을 최소화하면서도 공정한 망 이용 체계를 구축할 수 있는 구체적 대책을 마련해 국내 기업들을 보호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업계 내 한 관계자는 "해외 빅테크의 망 무임승차 문제가 아무래도 통상 문제와 얽혀 있다 보니 어려운 문제다. 정부와 국회에서도 조심스러울 것"이라면서도 "국내 기업들이 더욱 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조치가 시급한 상황인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어 "망 이용 대가를 법제화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그보다도 국내 관련 기업들에 대한 규제를 완화하는 것이 (문제 해결의) 첫 출발이 될 수 있을 것"이라며 "글로벌 플랫폼과 원활히 잘 경쟁할 수 있도록 완화도 아닌 '규제 혁파' 수준의 제도 개선이 필요한 때"라고 덧붙였다.

고정밀 지도 반출 문제와 관련해서도 업계에선 몸서리를 치는 분위기다.

업계 내 한 관계자는 "최근 디지털 주권과 관련된 국제 정세나 각 국가의 빅테크 의존 탈피 전략을 미뤄볼 때 이번에 구글이 요청한 정밀지도 반출 문제는 지난 2016년 때보다도 상황을 더 엄중하게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예를 들어 구글이 고정밀 지도를 반출해간 뒤 글로벌 구글 앱에서 '동해'를 '일본해'로 표기하거나 '독도'를 '다케시마'로 표기할 수 있는 문제도 있다"며 "이때 한국 정부의 수정 요청이나 입장을 구글이 받아들일지는 미지수인 것"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국가별 표기 분쟁이 있는 경우 해외 빅테크는 중립 혹은 글로벌 스탠다드를 우선시할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또 고정밀 지도 반출 결정에 앞서 지난 2016년 미국에서 제정된 CLOUD Act를 고려할 필요도 있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업계 관계자는 "CLOUD Act는 미국 정부가 빅테크 클라우드 기업이 보유한 타국 국민의 데이터를 확보할 수 있는 법적 기반"이라며 "한국 지도 데이터가 반출된다면 관련 정보 주권이 미국 정부의 관활권 아래에 놓이게 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정부는 다음달 11일까지 구글이 요청한 '1 대 5000' 축척의 국내 고정밀 지도 반출에 대한 허가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이 같은 상황과 관련해 학계에서는 디지털 통상 정책을 외교 협상의 대상으로 보는 것은 한국의 디지털 주권 침해와 직결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신민수 한양대학교 교수는 "한국 지도로 사업 중인 업체가 네이버와 카카오 뿐만 아니라 중소 정보 업체들도 많다"며 "한국의 고정밀 지도가 구글이나 애플에 반출된다면 그런(중소) 업체들에서도 타격이 클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런 산업적인 면으로 부정적인 것도 있지만 핵심은 '안보 차원에서 어떻게 문제를 다룰 것이냐'다"라며 "또 기본적으로 망 사용료 문제나 고정밀 지도 반출 문제는 '디지털 주권'에 직결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디지털 주권이 과연 통상 협력의 수단으로 쓰일 수 있는 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라며 "이것이 안보 이슈고 디지털 주권에 관한 것이라면 어떤 이슈의 협상 도구로 삼기에는 한계가 있지 않나. (정부는) 일정한 원칙을 갖고 협상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미디어펜=배소현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