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소정 기자]한미 정상회담 및 관세협상을 위해 방미했던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이 나흘간의 일정을 마치고 24일 귀국했다. 하지만 위 실장은 미국에서 루비오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국무부 장관 겸직)을 직접 만나지 못한 채 전화로 유선 협의를 가졌다.
위 실장과 루비오 장관 간 만남이 예정됐었으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그 시간에 루비오 장관을 급하게 호출하는 바람에 만남이 불발됐다고 한다.
여기에 미국 워싱턴DC에서 개최될 예정이던 ‘한미 2+2 고위급 관세 협의’가 이날 오전 갑자기 취소됐다. 방미를 위해 인천공항에 도착한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출국을 불과 1시간여 앞두고 미국 측이 이날 오전 9시쯤 이메일로 통보한 일정 취소를 전해들었다. 기재부는 스콧 베센트 재무장관의 긴급한 일정 때문에 이 일정이 취소됐다고 밝혔다.
여기에 지난 21일 취임한 조현 외교부 장관이 이날까지 루비오 미국 국무장관과 통화하지 못하고 있다. 통상 외교장관이 취임하면 미 국무장관부터 통화해온 것이 관례였지만 조 장관은 이날 먼저 이와야 다케시 일본 외무대신과 첫 통화를 가졌다.
다만 이미 미국에 머물고 있던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과 여한구 산업부 통상교섭본부장이 대미 협의를 수행하고 있다. 하지만 한미 간 통상 협상이 공전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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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미 관세 협상을 지원하기 위해 지난 20일 미국을 방문했던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이 24일 인천국제공항 제2여객터미널을 통해 귀국하고 있다. 2025.7.24./사진=연합뉴스 [공동취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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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블룸버그 통신은 소식통을 인용해 “미국과 한국이 무역 협상의 일환으로 미국 내 프로젝트에 투자기금을 조성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라고 보도했다. 미국 측은 협상에서 수천억 달러에 달하는 투자 약속을 요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일본이 최근 미국과 체결한 협정과 유사하다. 앞서 일본은 5500억 달러 대미 투자 등을 약속한 협상을 미국과 체결했다. 대신 상호관세는 25%에서 15%로 인하됐으며, 품목 관세인 자동차 관세도 15%로 인하됐다.
마침 이재명 대통령은 이날 저녁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을 만나 만찬 간담회를 가졌다. 이 대통령은 그동안 재계 인사들과 잇따라 만남을 지속해왔다.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은 이날 늦은 시간에 문자 공지를 통해 “이 대통령은 지난주에 이어 이번주에도 재계 수장들을 잇따라 만났다”고 밝혔다.
강 대변인은 “이 대통령은 21일 한화그룹 김동관 부회장, 22일 SK그룹 최태원 회장, 24일에는 삼성전자 이 회장과 만찬 간담회를 진행했다”면서 “별도의 의제 선정없이 자유롭게 폭넓은 의견을 나눴다”고 설명했다.
한편, 이날 위 실장과 루비오 장관의 만남이 불발됐다는 언론보도가 나간 직후 대통령실은 언론 대응 입장(PG)을 내고 위 실장과 루비오 보좌관 간 유선 협의가 있었다고 밝혔다. 대통령실에 따르면, 위 실장은 지난 21일 오후 루비오 보좌관과 협의를 위해 백악관 웨스트윙에 약속된 시간에 방문했고 이 자리에 미국 NSC(국가안전보장회의) 내 고위인사인 베이커 국가안보부보좌관 겸 부통령 국가안보보좌관과 니담 국무장관 비서실장이 동석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다만 면담 직전 트럼프 대통령이 루비오 보좌관을 긴급 호출해 위 실장은 다른 동석자들과 의견 교환 및 입장을 전달했다고 한다. 그리고 결국 이 자리에 참석하지 못한 루비오 보좌관과 추가 협의를 진행하기로 하고, 시간과 방식을 조율했다. 하지만 22일 위 실장은 루비오 보좌관 측으로부터 그날 미-필리핀 정상회담 행사 등으로 대면 협의가 어려워서 유선 협의를 진행하자는 연락을 받고 유선으로 추가 협의를 했다고 한다.
대통령실은 “유선 협의는 충분히 진행됐으며, 루비오 장관은 위 실장에게 세 차례나 사과했고, 위 실장관 협의한 내용을 트럼프 대통령 및 관계장관과 충실히 공유하겠다고 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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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미 간 '2+2 통상협상'을 위해 미국으로 출국하려던 구윤철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이 24일 인천국제공항 제2여객터미널에서 굳은 표정으로 나오고 있다. 2025.7.24./사진=연합뉴스 [공동취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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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위 실장은 이날 귀국길에 취재진과 만나 “지금 한미 간 현안 협상이 막바지에 중요한 국면에 있다”며 “경제부처 각료 워싱턴에서 분야별 세부 협상을 하고 있다. 저는 이 국면에서 한미관계 전반, 무역·통상·안보·동맹 전반에 걸쳐서 총론적인 협의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갔다. 경제 관료가 하는 세부 협상을 지원하는 취지였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루비오 보좌관과 베이커 국가안보부보좌관, 러트닉 상무장관, 그리어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 등을 만나서 협의를 충분히 했다. 앞으로 경제부처 관료들이 세부 협상 진행할 것이기 때문에 협상 진행 중이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재명 정부 들어 한미 관세협상 와중에 위 실장이 미국을 방문한 것은 지난 7일 이후 이번이 두 번째다. 위 실장이 지난번과 달리 루비오 장관을 만나지 못한 것과 관련해 한국에 대한 압박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특히 2+2 한미 고위급 관세 협의를 갑작스럽게 취소한 것은 외교적 결례라는 지적도 있다.
일각에선 일본과 관세 협상을 타결한 미국이 다음 순서로 중국, 유럽연합(EU)으로 눈을 돌리면서 한국이 협상의 우선순위에서 밀리고 있다는 분석도 내놓았다. 이 역시 트럼프 대통령 특유의 협상전략으로 상대방의 불안감을 유도하면서 압박하는 방법으로 해석된다.
이번에도 위 실장은 한미 정상회담 일정을 잡지 못한데다 갑작스럽게 취소된 한미 2+2 협상의 다음 일정도 정해지지 않았다. 따라서 미국이 한국에 대해 25%의 고율 관세를 부과하기로 한 8월 1일 데드라인을 넘길 가능성이 커졌다.
이런 가운데 조현 신임 외교부 장관이 다음주 방미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전해져 마지막 협상 퍼즐이 어떻게 맞춰질지 주목된다.
[미디어펜=김소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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