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연지 기자]미국 정부가 유럽연합(EU)과 일본에 대해 자동차 품목 관세율을 15%로 확정하면서 한국과 미국 간 관세 협상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일본과 EU는 대규모 대미 투자를 조건으로 관세를 낮춘 반면 한국은 아직 협상을 마무리하지 못한 상황이다. 향후 관세율이 그대로 유지될 경우 국내 완성차 업계가 미국 시장에서 가격 경쟁력을 잃게 될 것이란 우려도 확산되고 있다.
28일 업계에 따르면 트럼프 행정부는 EU산 수입품에 대한 상호 관세율을 당초 예고한 30%에서 15%로 낮춰 적용하기로 합의했다. 자동차 품목에 대한 관세도 15%로 인하된다. EU는 일본에 이어 여섯 번째로 미국과 관세 협상을 타결한 국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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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사진=연합뉴스 제공 |
◆ 일본·EU, 자동차 관세 15%… 한국, 아직 협상중
미국은 당초 EU에 통보한 상호 관세율 30%를 15%로 낮추기로 하고, 자동차는 일본과 마찬가지로 15%로 합의했다. 일본이 미국과 자동차 관세 15%로 합의한 사례가 사실상 가이드라인이 됐다는 분석이다.
EU산 자동차에는 기존 2.5% 기본 관세에 트럼프 대통령이 부과한 25%의 추가 관세가 더해져 총 27.5%가 적용돼 왔다. 그러나 이번 합의로 자동차에 한해 관세가 대폭 낮아졌다. 다만 철강·알루미늄에는 여전히 50%의 고율 관세가 유지된다.
앞서 일본은 지난 4월부터 적용된 25% 관세를 절반인 12.5%로 낮추고, 기존 2.5%를 더한 총 15% 관세율로 최종 조정됐다. 일본 정부는 이를 위해 5500억 달러(약 760조 원) 규모의 대미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EU 역시 미국산 에너지 구매(7500억 달러)와 신규 투자(6000억 달러, 약 830조 원)를 약속하며 같은 수준의 관세 인하를 이끌어냈다.
반면 한국은 아직 미국과 협상을 타결하지 못했다. 블룸버그통신은 미국이 한국에도 4000억 달러(약 554조 원) 규모의 투자를 요구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에 앞서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지난 3월 미국 백악관을 방문해 4년간 210억 달러(약 31조 원)에 달하는 미국 내 투자 계획을 직접 발표한 바 있다.
◆ 현대차, 25% 적용시 연간 관세 부담만 10조원
관세 격차가 고착화될 경우 한국산 자동차의 가격 경쟁력은 급속히 약화될 전망이다. 실제로 현대차와 기아는 지난 2분기 미국발 관세 여파로 각각 15.8%, 24.1%의 영업이익 감소를 기록했다. 관세가 계속 유지될 경우 차량 1대당 평균 835만 원에 달하는 추가 부담이 발생할 것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송선재 하나증권 연구원은 "현행 25% 관세가 계속된다면 한국 완성차 업체는 대당 6000달러(약 825만 원)의 부담을 지게 된다"며 "멕시코산 포함 시 총액은 9조1000억 원까지 늘어난다. 최악의 시나리오에서는 현대차·기아의 연간 총 관세 부담이 10조5000억 원으로 기존 영업이익 추정치 28조 원의 37%에 해당하는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미국 수입 시장에서 우리나라 최대 경쟁국인 일본보다 고율의 관세가 부과되면 한국산 제품의 가격 경쟁력 약화가 불가피하다. 한국은 한미 FTA로 대부분 품목에서 관세가 면제되지만, 자동차에는 여전히 25%의 고율 관세가 적용되고 있다. 지금까지는 일본·유럽 브랜드보다 평균 5% 저렴한 가격이 한국차의 경쟁력이었지만 관세 구조가 불균형해질 경우 이점은 무력화될 수 있다.
일부 분석에 따르면 관세 인하 이후 일본산 차량은 한국산보다 대당 약 3000달러(약 400만 원) 저렴해졌다는 평가도 있다. 한국이 25% 관세를 피하지 못할 경우 현대차·기아는 일본·EU 브랜드 대비 10%p 높은 관세를 고스란히 감당해야 한다.
◆ 미국 시장 판도 흔드는 관세 변수…현대차 점유율에 제동
고율 관세로 인해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의 미국 내 차량 가격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전망이 나오는 가운데, 현대차·기아는 당분간 가격 인상을 최대한 자제할 방침이다. 점유율 하락을 우려해 가격 전략에 신중을 기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랜디 파커 현대차 북미권역본부 최고경영자(CEO)는 최근 미국 오토모티브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하반기 녹록지 않은 시장 환경을 고려할 때, 합리적인 가격대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급격한 가격 조정 가능성을 일축했다.
작년 미국 내 자동차 판매 1~3위는 GM, 토요타, 현대차·기아(제네시스 포함) 순으로 나타났다. 올해 상반기 기준으로는 GM(143만2516대), 토요타(123만6739대), 포드(110만7640대), 현대차·기아(89만3152대), 혼다(73만9151대) 등이다.
올해 상반기 기준으로 일본은 13.0%, 한국은 11.5%의 수입차 점유율을 기록하며 팽팽한 경쟁을 이어가고 있다. 미국 시장 내 점유율을 꾸준히 끌어올렸던 현대차지만 관세에 따른 가격 불리 구조가 지속된다면 3강 구도에서 뒤처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기아는 이미 지난달 재고가 소진된 것으로 알려졌으며, 현대차 역시 이번 달 안으로 재고가 바닥날 것으로 예상된다. 추가 관세가 본격 반영되면 현대차그룹도 결국 가격 인상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
김필수 대림대 미래자동차학과 교수는 "관세는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 산업 구조상 조속히 해결해야 할 선제적 과제"라며 “자동차 산업은 부품사 등으로 얽힌 복잡한 생태계를 형성하고 있기 때문에 한 번 무너지면 회복이 어렵다. 안전망 마련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미디어펜=김연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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