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연지 기자]한국과 미국 양국이 협의 끝에 한국산 자동차에 대한 관세를 15%로 조정하기로 최종 합의했다. 일본·유럽연합(EU)과의 관세 조건이 동일해지면서 국내 완성차 업계는 일단 안도의 숨을 쉬는 분위기다. 다만 그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통해 무관세 혜택을 누려온 만큼 경쟁력 타격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31일 업계에 따르면 한미 양국은 자동차를 포함한 주요 품목 관세를 기존 25%에서 15%로 낮추기로 합의했다. 이는 4월부터 적용됐던 25% 관세보다는 10%포인트 낮은 수준으로 업계 최악의 시나리오는 피했다는 평가다.
한국자동차모빌리티산업협회(KAMA)는 이날 입장문을 내고 "지난 4월부터 적용돼 온 25% 고율의 자동차 관세가 일본, EU 등 경쟁국가와 동등한 15%로 감소된 것에 대해 다행스럽게 생각한다"며 "미국시장은 우리나라 수출 278만 대 중 50% 이상 차지하는 주력시장으로 이번 관세 협상 타결로 자동차 수출 환경의 불확실성이 없어진 데 대해 매우 긍정적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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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사진=연합뉴스 제공 |
◆ 日·EU와 동일한 15%…'무관세 시대' 종료
미국은 자국 무역적자 축소와 산업 부활을 목표로 주요 교역국에 일괄 관세 인상을 추진해 왔다. 이번 합의로 한국산 자동차는 일본·EU와 동일하게 미국 시장에서 15%의 관세를 부담하게 됐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8월 1일부터 적용될 상호 관세율을 25%에서 15%로 낮췄고, 자동차에도 동일한 15%가 적용된다"고 밝혔다. 이어 "대미 관세 15%는 과거와는 다른 교역 환경이자 도전인 것이 사실"이라며 "기업들이 경쟁력을 키우고 수출 시장을 다변화해 나갈 수 있도록 정부가 적극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한국은 기존 한미 FTA에 따라 자동차 관세가 0%였다. 반면 일본·EU는 기존에 2.5%의 관세를 적용받아왔다. 이번 결정으로 한국산 자동차는 실질적으로 15%포인트의 관세 인상을 감수하게 된 셈이다. 이에 전문가들은 단순히 동일한 수치의 관세율이 적용됐다고 해서 동등한 조건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김필수 대림대 미래자동차학부 교수는 "트럼프 정부의 일괄 관세 전략에 사실상 끌려간 모양새"라며 "숫자상으로는 동등해 보이지만 FTA 혜택을 잃은 것은 분명한 손실"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결국 일본보다 2.5% 관세를 더 부담하는 셈이다. 같은 15%라도 출발점이 다르기 때문에 체감 충격은 한국이 가장 클 수 있다"고 덧붙였다.
정부도 FTA 기반 경쟁력을 잃은 현실을 인정했다. 김 실장은 "FTA를 감안하면 12.5%가 맞고, 정부는 마지막까지 12.5% 적용을 주장했다"며 "이번 협상은 기존 WTO나 FTA 체제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전개됐고, FTA 자체가 흔들리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고 밝혔다.
◆ 현지 경쟁력 약화 불가피…국내 생산 축소 우려도
업계는 최악의 상황을 피했지만 무관세 혜택이 사라지면서 국내 자동차 수출 경쟁력이 약화될 수 있다는 우려를 내놓고 있다. 경쟁 브랜드 대비 평균 5% 낮은 가격이 한국차의 주요 경쟁력이었던 만큼 관세 부과로 인해 가격 메리트가 크게 줄어들 수 있다는 분석이다.
또 미국의 자국 산업 보호 강화로 GM·포드 등 현지 기업에 유리한 구조가 형성되면서 전체적인 시장 수요 자체가 축소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호근 대덕대 미래자동차학과 교수는 "미국 내 수입차 전반이 GM·포드 등 자국 기업 대비 불리해지고, 전체적인 파이 자체가 작아질 것"이라며 "현대차·기아 역시 무관세에서 15%로 전환된 만큼 수익성 악화와 매출 감소가 불가피하다"고 설명했다.
미국의 관세 정책으로 현지 생산 비중을 확대해 관세 영향을 최소화하는 전략이 필요한 시점이다. 현대차그룹은 미국 조지아주 '메타플랜트 아메리카(HMGMA)'를 연간 50만 대 규모로 증설 중이며, 완공 시 미국 내 판매 차량의 약 70%를 현지에서 조달할 수 있게 된다.
반면 국내 생산 축소 우려와 함께 산업 공동화에 대한 경고의 목소리도 나왔다. 김 교수는 "현대차그룹 입장에서는 미국 내 생산 물량을 늘릴 수밖에 없다"며 "북미 현지 생산이 확대된 만큼 결국 국내 생산이 줄어들게 된다. 장기적으로는 더 큰 규모의 생산 감소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여기에 국내 제도적 환경까지 기업에 부담을 주고 있는 상황이다. 노란봉투법, 상법 개정 등으로 기업 환경이 악화된 상황에서 산업 공동화가 현실화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 현대차·기아 "관세 영향 최소화…품질·브랜드 경쟁력 강화"
고율 관세가 적용된 2분기 현대차는 매출 48조2867억 원, 영업이익 3조6016억 원을 기록했다.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7.3% 증가했지만, 영업이익은 15.8% 감소했다. 같은 기간 기아는 매출 29조3496억 원, 영업이익 2조7648억 원을 올렸다. 매출이 6.5% 늘었지만 영업이익은 24.1% 줄었다. 현대차와 기아의 관세 영향에 따른 손실액은 각각 8282억 원, 7860억 원으로 총 1조6000억 원에 달했다.
미국은 지난 4월부터 한국산 자동차에 25% 관세를 부과해 왔다. 양국의 합의가 결렬돼 관세가 25%로 유지될 경우 현대차·기아의 연간 영업이익 감소폭은 최대 9조~10조 원에 이를 것으로 우려돼 왔다.
다행히 이번 합의로 손실 규모는 절반 수준으로 완화될 것으로 보이지만 증권가에서는 여전히 수조 원대 손실이 불가피하다는 전망이 나온다. 한화투자증권은 현대차·기아의 연간 영업이익이 약 5조6000억 원 감소할 것으로, 유진투자증권은 최대 7조5000억 원까지 손실이 확대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현대차 관계자는 "관세 협상 타결로 불확실성이 없어졌다는 점에 의미가 있다"면서도 "관세 25%라는 최악의 상황은 면했지만 여전히 15%에 대한 손실이 있다"고 말했다.
현대차그룹은 이날 공식 입장문에서 "15%라는 관세가 적용됨에 따라 한국산 자동차의 경쟁력 제고가 중요한 상황이다. 현대차·기아는 다각적 방안을 추진해 관세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면서 "관세 영향 최소화를 위해 다각적 방안을 추진하는 동시에 품질 및 브랜드 경쟁력 강화와 기술 혁신 등을 통해 내실을 더욱 다져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미디어펜=김연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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