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이재명 정부의 기업 규제와 관련한 법 개정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국회 과반수를 차지한 민주당이 이전 정권부터 기업 규제 법안들을 개정하려는 움직임이 있었지만, 대통령의 거부권으로 실제 성사되진 못했다. 그러나 새 정부가 들어서며 상법부터 노란봉투법이라 불리는 노동법, 법인세까지 개정할 것으로 보여 이재명 대통령이 천명한 친기업 기조와는 정반대의 기류가 형성되고 있다. 특히 이번에 개정을 추진 중인 법안들은 대표적인 반기업 정서를 띄고 있어 경기 불황으로 인한 어려움과 함께 기업 고충이 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미디어펜은 상법, 노동법 및 법인세 등 기업 규제와 관련한 법안의 개정이 재계와 산업계에 미칠 영향을 심층 분석해보고자 한다.<편집자주>
[미디어펜=박재훈 기자]불안정한 대외환경으로 인해 산업계가 어려운 시기를 맞이한 가운데 노란봉투법으로 인해 시름이 더욱 깊어질 우려가 커진다. 오는 4일 개정을 노리고 있는 노란봉투법은 제조업 기반 기업들에겐 더욱 부정적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또 각 산업계에서도 노조를 비롯해 하청 업체들의 목소리가 커질 것으로 보여 기업들이 위축될 것으로 보인다.
1일 업계에 따르면 노란봉투법이 기업에 부과하는 과도한 부담과 불확실성은 한국 제조업의 경쟁력을 크게 훼손할 것을 우려된다. 재계와 산업계에서는 법안의 신중한 검토 및 보완책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노란봉투법은 2014년 쌍용자동차 파업 이후 노동자에게 과도한 손해배상 책임이 부과되면서 노동권 보호 필요성에 따라 입법 논의가 시작됐다. 해당 법안은 파업 등 정당한 쟁의행위에 따른 법적·재정적 위협을 제한하고 하청·특수고용 노동자도 원청과 직접 교섭할 수 있도록 사용자와 쟁의 대상 범위를 넓히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이에 따라 임금 뿐 아니라 해고·근로조건 등 다양한 문제에 대해 집단행동이 가능해지고 노동권 사각지대 해소가 기대된다.
하지만 제조업계를 중심으로 산업계는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자동차, 조선, 철강 주요 산업 단체들은 “원·하청 관계 붕괴와 경영 불확실성, 글로벌 경쟁력 약화”를 우려하며 공동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하청노조와의 상시적 교섭과 파업 가능성으로 경영상 부담과 비용이 늘어나고, 기업에 과도한 요구가 늘어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진다. 외국계 투자업체들 역시 투자 매력 하락과 철수 가능성을 언급하고 있으며, GM 등 외국계 기업의 철수 우려와 함께 국내 기업들의 해외 공장 이전 추진 등 산업 전반에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 새정부의 친기업 행보…실상은 달라, 기업 부담↑·법적 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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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원식 국회의장이 26일 서울 국회에서 열린 제418회국회(정기회) 제9차 본회의에서 '방송4법·노란봉투법·민생회복지원금법' 재표결 부결을 알리고 있다/사진=미디어펜 김상문 기자 |
정부가 내세우고 있는 핵심 명분은 노동자의 권리 보장과 과도한 손해배상으로 인한 노조 활동 위축 완화다. 하지만 손해배상 청구 제한을 비롯해 간접고용, 하청노동자, 특수노동고용자까지 교섭 및 쟁의가 가능하도록 범위를 확대하는 것이 문제점으로 거론된다.
기업 입장에서는 경영상의 권리와 법적 방어권을 제한받게 된다. 법안이 개정될 경우 사용자 범위가 원청, 계열사, 발주회사 등으로 넓어지면서 기업의 책임이 커지고 수많은 하청노조와의 교섭 요구에 모두 대응해야 한다. 가령 현대차와 기아의 경우 1차 협력사만 해도 수백에서 수천개인데 2,3차까지 포함할 경우 5000여 업체와 복잡한 공급망 구조를 갖게 되는 것이다.
특히 손해배상 청구권이 사실상 제한된다는 점도 기업 입장에서는 골칫거리다. 정당한 쟁의행위로 발생한 손해에 있어서는 배상 청구가 원칙적으로 불가능할 뿐 아니라 불법행위라 하더라도 개별 노동자의 비중, 기여도 재정상황 등을 모두 입증해야 하기 때문에 소송 부담이 늘고 실질적인 배상 인정이 어려워진다.
특히 원청업체가 하청업체의 파업에도 손해배상 청구를 하지 못하게 될 수 있어 과도한 원가 및 비용상승과 무리한 요구가 빗발칠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결국 이는 노사 간 갈등과 경영상 불확실성 증가로 이어지게 된다. 제조업 전반의 실제 업계에서는 쟁의행위(파업 등)가 늘어나고 파업이 심화되면서 생산 차질, 사회적 비용, 기업경쟁력 약화 등 경제 전반 리스크가 커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실제로 외국인 투자자·글로벌 기업까지 현행 제도의 불확실성에 대한 경계심을 드러내고 있는 상황이다.
이번 노란봉투법은 친기업 기조를 강조해왔던 이재명 정부의 메시지와는 다른 행보라는 점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정부는 기업과 노동 모두를 위한 균형 잡힌 실용주의라고 설명하며 “노사 현장의 의견을 충분히 들어 보완책 마련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현재 관세와 중국의 제조업 전반에서의 성장세 등으로 어려움으로 기업이 경영에 난항을 겪고 있어 실효성 있는 보완책을 내놓을지는 의문이다.
최근 미국 행정부는 리쇼어링으로 해외 기업의 자국 투자를 늘리고 있으나 되려 정부는 국내 기업들의 내부적인 투자 의지를 꺾는다는 반응도 나온다. 업계에서는 국내 일자리 감소라는 결과로도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제조업 전반은 물론 다른 산업도 우려 커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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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MMI 아이오닉5 조립라인. 사진은 현대차 직원이 차량하부에 배터리 등을 장착하고 있다./사진=현대자동차 |
완성차, 철강, 조선업 등 제조업 전반의 경우 사용자 범위를 무분별하게 확대해 원·하청 산업생태계 붕괴, 산업경쟁력 심각한 저하를 유발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완성차, 조선, 철강 산업은 한국 제조업의 중추로 수많은 1차, 2차, 3차 협력사와 복잡한 공급망을 보유하고 있다. 이번 법의 시행으로 하청노조가 원청 기업에 직접 교섭 및 파업을 요구할 수 있게 될 경우 산업 현장에 상당한 충격일 것으로 전망된다.
완성차의 경우 현대차, 기아 등은 1차 협력사만 수백에서 수천개에 달한다 2·3차까지 포함하면 5000여 업체와 복잡한 공급망 구조를 가지게 된다. 철강업계 역시 비슷한 구조로 이뤄져 있으며, 최근에는 현대제철이 노조의 과도한 요구에 직장폐쇄까지 갈 정도로 강수를 두기도 했다.
조선업계는 과거 원청인 조선사와 하청인 중견기업 간 문제가 심각했다. 조선업이 깊은 불황을 겪으면서 하청에서 다소 불합리해 보이는 처우를 받은 것도 사실이다. 다만 이번 법 개정으로 하청업체의 과한 요구에 반등 중인 산업의 성장세가 꺾일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노란봉투법 통과 시 하청·부품업체의 노조가 원청에 직접 교섭을 요구할 수 있어 주요 산업과 기업의 본사는 지속적인 노조 요구와 파업 위험에 노출된다. 실제 현장에서는 기존 임단협 난항, 글로벌 관세 부담 등과 겹쳐 △파업 리스크 △조업 중단 △생산 차질 △수익성 악화 등의 문제가 커질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특히 각 통합노조가 아닌 각 지역별 노조가 따로 있는 기업과 수많은 하청을 갖고 있는 기업들의 경우 무분별한 요구와 파업에 직면해 1년 내내 시달릴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는 실정이다.
차부품업체 등 중견기업들의 경우 대기업보다 경영 체력이 약해 불확실성 증대와 고용 축소(자동화와 비정규직 활용 증가) 등 부작용이 현실화될 가능성도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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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D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 전경./사진=HD현대 제공 |
또 생산현장에서 하청업체의 비중이 높은 조선업계도 노란봉투법이 국회 문턱을 넘을 시 단체교섭 증가로 인해 생산 차질이 발생할 것을 우려하고 있다.
이 같은 우려는 대표적으로 중국이나 유럽 등 글로벌 경쟁사들과 수주를 놓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 상황에서 불리하게 작용할 전망이다. 글로벌 수주에서는 기술력도 중요하지만 생산 안전성 역시 핵심 경쟁 요소로 평가받는다. 노란봉투법으로 인해 노사 갈등에 따른 불확실성이 커지면 글로벌 발주처의 신뢰도 저하로 이어져 향후 수주 경쟁력까지 타격을 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밖에 철강업계도 노사 갈등으로 인한 작업 중단이나 일정 지연 등으로 생산성이 떨어지는 것을 걱정하고 있다. 철강 생산현장은 24시간 연속 공정으로 운영되는 곳이 많기 때문에 노사 갈등은 작업 중단 시 큰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
아울러 철강제품은 자동차, 조선, 건설 등 수요산업의 필수 소재로 활용된다는 점에서 생산 차질이 연쇄적인 공급망 불안으로 확산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제조업의 경우 공장가동률 확보가 무엇보다 중요한데, 잦은 파업과 잡음은 기업들이 공장가동률 유지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또 공장가동률 확보를 위해 파업 뒤 잔업이나 추가 근무가 발생할 경우 비용이 추가 발생하게 돼 기업 부담도 커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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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측의 성과급 제도 변경에 항의하며 쟁의에 들어간 넥슨 자회사 네오플 노동조합 조합원들이 지난달 18일 서울 강남구 서울지사 사옥 앞에서 집회 시작 전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제조업 외에도 산업 전반에 노란봉투법이 영향을 미치는 만큼, 게임업계에서도 우려 섞인 시선을 보내고 있다. 게임업계는 대규모 프로젝트 진행 시 외주 개발사, 하청 업체, 프리랜서 등 다양한 노동력과 협업하는 구조가 일반적이다.
노란봉투법이 시행되면 외주·하청 업체 소속 노동자(외주 개발자, QA, 그래픽디자이너)들도 원청 게임사와 직접 단체교섭을 할 권리가 생긴다. 게임사가 교섭을 거부할 경우 형사처벌 위험도 뒤따르게 되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 6월 넥슨 자회사 네오플 노동조합이 국내 게임업계 최초로 전면 파업에 돌입하는 등 노조의 조직화·집단행동이 확산되는 추세다.
넥슨, 넷마블, 엔씨소프트 등 주요 게임사에도 이미 노조가 설립돼 있다. 게임업계에서는 이번이 첫 사례인만큼 섣부른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또한 매번 큰 이벤트를 기획할 때마다 유저들에게 피해를 남길 수 없어 선례를 남길 수도 없다는 입장이다.
◆경총, "노동계 요구만 반영 매우 유감…산업 현장 혼란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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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회장이 31일 서울 마포구 경총에서 노동조합법 관련 긴급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
지난 31일 한국경영자총협회(이하 경총)도 노란봉투법에 대한 우려의 반응과 함께 입장을 밝혔다. 제조업 전반에 있어 현장의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날 손경식 경총 회장은 기자 회견을 통해 "노동조합법 제2조, 제3조 개정안까지 통과되면서 산업현장의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며 "지금까지노동조합법 개정은 (기업의) 노사관계에 혼란을 가져올 수 있는 중대한 변화인 만큼 사회적 대화를 통한 노사간의 충분한 협의가 필요함을 강조해 왔다"고 말했다.
노란봉투법은 불법파업에 대한 손해배상액이 많고 급여를 압류해 근로자 생활 유지가 어려워 이를 개선하기 위해 발의된 법안이다.
손 회장은 기업들과 논의해 대안을 마련하고 국회에 적극적으로 제시해왔다고 설명했다. 취지를 감안해 손해상액의 상한을 시행령에서 별도 지정하고 급여도 압류하지 못하는 대안을 만들어 제안했다는 것이다.
또한 손 회장은 "가장 문제가되는 원청자를 노사 교섭대상으로 하는 사용자 범위 확대, 기업의 경영전략까지 쟁의대상으로 하는 노동쟁의 개념 확대를 내용으로 하는 노동조합법 제2조 개정에 대해서는 우리 제조업의 근간을 흔들 수 있어 현행법을 유지해달라고 호소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럼에도 환경노동위언회에서 경영계의 제안에도 심도 있는 논의 없이 노동계 요구만 반영한 것은 매우 유감이라고 말했다.
손 회장은 "수십, 수백 개의 하청업체 노조가 교섭을 요구한다면 원청사업주는 건건이 대응할 수가 없어 산업현장은 극도의 혼란상태에 빠질 것으로 우려된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번 개정안은 기업의 투자 결정이나 사업장 이전, 구조조정 등 사용자의 고도의 경영상 판단사항까지 쟁의행위 대상이 될 수 있어 사용자의 경영권을 침해할 소지가 크다"고 우려했다.
원청기업을 대상으로 한 하청노조의 파업이 빈번해질 경우 원청기업은 협력업체와 거래를 단절하거나 해외로 사업체를 이전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손 회장은 이로 인한 피해는 중소·영세업체 근로자들과 미래세대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경고했다.
마지막으로 손 회장은 "지금이라도 국회는 노동조합법 개정을 중단하고 사회적 대화를 통해 노사 간의 충분한 협의가 이뤄지도록 해야한다"며 "최소한의 노사관계 안정과 균형을 위해서라도 경영계의 대안을 국회에서 심도있게 논의해 수용해 줄 것을 바란다"고 촉구했다.
[미디어펜=박재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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