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유태경 기자] 전 세계적으로 재생에너지 사용이 늘어나면서 세계 각국이 전력망 투자에 나서고 있는 가운데, 정부가 '한국형 차세대 전력망'을 구축하는 등 전력망 전환에 본격 착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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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형 차세대 전력망./사진=산업부 |
올해 IEA가 발표한 '글로벌 재생에너지 시장 확대와 전력망 슈퍼사이클 도래'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재생에너지 투자액은 7600억 달러, 전력망 투자액은 3880억 달러, 전력 저장액은 570억 달러로 시장이 커지는 추세다.
한국형 차세대 전력망은 재생에너지와 ESS 등 분산 에너지를 인공지능(AI) 기술로 제어해 전력 생산-저장-소비를 최적화하는 지능형 전력망(마이크로 그리드)을 의미한다. 분산 에너지와 운영 시스템(플랫폼)으로 구성돼 전력 수요량과 발전량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고, 통신으로 수요량과 발전량을 원격 조절하는 시스템이다. 에너지 고속도로가 전국 계통에 필요한 송전망을 구축하는 것이라면 차세대 전력망은 지역 단위의 촘촘한 소규모 전력망을 배전망에 구축하는 것이다.
기존 전력망은 송전망에 연결된 대형 발전기 전력이 전국 수요처로 전달되는 발전-송전-배전의 '단방향' 계통이었다면 차세대 전력망은 배전망에 주로 연결된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 발전이 배전망을 타고 수요처로 보내지고 남는 전기는 송전망으로 다시 전송되는 '양방향' 계통이다. 차세대 전력망은 마이크로 그리드를 통해 그리드 안에서 재생에너지를 효율적으로 관리해 전체 전력망의 안정적 운영에도 도움된다.
AI 기술을 활용하면 재생에너지 발전량과 전력 수요를 정확히 예측할 수 있고, 망에 여유가 있을 때 더 많은 재생에너지를 활용할 수 있어 재생에너지 출력 제어를 낮추고 전력망을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이 늘면서 전력 산업도 변화하는 추세다. 재생에너지로 인해 다이나믹한 수급 패턴이 형성되고, 변화하는 수급 패턴을 기반으로 전력 신산업 비즈니스가 새롭게 등장하고 성장하면서 전체 전력 수급이 조정되는 새로운 시스템이 확산하고 있다. 예를 들어 가상발전소인 VPP(Virtual Power Plant) 사업은 소규모 재생에너지와 ESS 등 분산 자원을 모아 하나의 발전기처럼 전력 시장에 참여하고, 계통 안정화에 기여하고 있다. 전통 유틸리티를 뛰어넘는 에너지 스타트업들도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정부는 한국형 차세대 전력망을 구축해 ▲변동성 자원인 재생에너지에 적합한 전력시스템을 갖추고 ▲지산지소를 통해 지역별 전력 수급의 균형을 도모할 뿐 아니라 ▲전 세계적인 전력망 현대화 추세를 기회로 활용해 차세대 전력망 산업을 수출 산업화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마이크로 그리드 인프라 구축을 확대하면서 분산 에너지가 안정적으로 통합-관리-거래되도록 전력시장 제도 개편을 병행함으로써 차세대 전력망 산업을 빠르게 성장·발전시켜 나갈 계획이다.
먼저 차세대 전력망을 지역에서 실증한 후 전국으로 확대한다. 다양한 마이크로 그리드 실증과 대규모 ESS 보급으로 태양광 잉여 전력을 최대한 이용하면서 계통 문제까지 해소할 수 있는 적합한 지역을 우선 선정한다. 작년 6월부터 제주에서 운영하고 있는 재생에너지 입찰시장 등 전력 시장 혁신 모델을 후보 지역에 적용하고 일정 기간 실증을 거친 후 전국적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차세대 전력망 산업은 대대적인 국내 실증으로 트랙 레코드를 쌓으며 보완 과정을 거쳐 새로운 수출 산업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크다. 이를 통해 전력 신산업 스타트업 등 다양한 혁신형 비즈니스 모델을 창출할 것으로 전망된다.
차세대 전력망 실증사업은 전남에서 우선 추진할 계획이다. 전남은 국내 최대 재생에너지 자원을 보유하고 있으나 계통 한계로 출력제어가 빈번하다. 또 차세대 전력망 관련 연구기관과 한전 등 공기업 등이 밀집해 혁신 역량을 보유하고 있으며, 철강·화학·조선 등 지역 주력사업과 연계한 대규모 실증에 유리한 여건을 보유하고 있다.
정부는 차세대 전력망 실증이 유망한 광역 단위 지역을 분산에너지 특화지역으로 지정해 전기사업법과 전력시장에 대한 규제특례를 과감히 적용할 계획이다. 이를 통해 전력 신산업 비즈니스를 활성화하고, 지역 발전사와 수요기업 간 전력 직접거래를 허용해 다양한 전기요금제 출현을 유도할 방침이다.
또 지능형 전력망 시스템과 장주기 ESS 개발, 마이크로 그리드 기술개발 등 차세대 전력망 핵심 기술개발 사업을 신설한다. 국가 R&D 투자를 통해 차세대 전력망 기술개발 속도를 높여 글로벌 시장 선도를 위한 경쟁력을 빠르게 키워 나갈 계획이다.
차세대 전력망 구축은 유연성 자원을 늘려 지역의 계통 부족 문제를 해소한다. 재생에너지 입찰시장을 후보지에 개설해 VPP 사업 활성화와 재생에너지 발전량 예측 가능성을 제고해 나간다. 아울러 출력 제어에 대한 사업자 부담을 완화하고 배전망에 대규모 ESS를 구축해 재생에너지 접속 대기 물량을 신속히 해소한다.
아울러 산업단지, 대학캠퍼스, 공항, 군부대 등에 맞춤형 마이크로 그리드를 구축하고 다양한 마이크로 그리드 기술을 폭 넓게 실증할 예정이다. 철강 업종이 주력산업인 산단에 재생에너지 단지를 조성하고 잉여 전력으로 그린수소를 생산해 수소환원제철 등 탈탄소 공정에 활용하는 식이다. 석유화학 업종이 많은 산단은 공장 유휴 지붕에 태양광을 구축하고 태양광 잉여 전력을 열로 변환하거나 공정 폐열을 활용한 전력 생산을 실증한다.
한국에너지공대는 에너지 기업과 연구기관, 스타트업이 협업하는 오픈 캠퍼스로 운영하고, 에너지공대-광주과기원-전남대는 공동연구와 연구장비 공동 활용, 기술 창업 협력을 통해 에너지신산업 창업 인큐베이팅의 산실로 거듭난다. 이를 통해 청년이 창업에 전념하고 에너지 스타트업이 에너지 기업, 대학과 협업하는 'K-GRID 인재‧창업 밸리'를 조성해 나갈 계획이다.
이와 함께 차세대 전력망으로 지역 에너지 분권화도 속도를 낼 계획이다. 유럽에서 마을 협동조합이 마이크로 그리드를 공동 설치하고 지역 발전에 활용하는 것처럼 주민참여형 재생에너지 보급과 이익공유 시스템을 마련해 에너지취약지역 마을을 RE100 마을로 전환하는 사례도 다수 출현할 구상이다.
정부는 차세대 전력망 구축의 경우 다양한 산업‧분야를 망라하고 전력시장 제도 개편의 국가적 과제를 담고 있는 만큼, 정부와 민간의 긴밀한 협력 추진 체계가 필요하다는 점을 인식했다. 이에 이호현 산업부 2차관을 단장으로 해 산‧학‧연‧관 협력으로 관계부처, 지자체, 유관기관, 외부 전문가 등이 참여하는 '차세대 전력망 추진단'을 구성해 로드맵과 세부 추진방안 마련에 바로 착수할 계획이다.
[미디어펜=유태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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