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이재명 정부의 기업 규제와 관련한 법 개정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국회 과반수를 차지한 민주당이 이전 정권부터 기업 규제 법안들을 개정하려는 움직임이 있었지만, 대통령의 거부권으로 실제 성사되진 못했다. 그러나 새 정부가 들어서며 상법부터 노란봉투법이라 불리는 노동법, 법인세까지 개정할 것으로 보여 이재명 대통령이 천명한 친기업 기조와는 정반대의 기류가 형성되고 있다. 특히 이번에 개정을 추진 중인 법안들은 대표적인 반기업 정서를 띄고 있어 경기 불황으로 인한 어려움과 함께 기업 고충이 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미디어펜은 상법, 노동법 및 법인세 등 기업 규제와 관련한 법안의 개정이 재계와 산업계에 미칠 영향을 심층 분석해보고자 한다.<편집자주>
[미디어펜=박준모 기자]더불어민주당이 지난달 1차 상법 개정안을 국회에서 통과시킨 데 이어 이달 4일 열리는 임시국회에서 2차 상법 개정안을 상정할 예정이다. 상법 개정안이 더욱 강력해지면서 기업들의 경영권 방어에 대한 불안감은 한층 더 커지고 있다. 재계 내에서는 기업들의 경영활동이 위축되지 않도록 배임죄 남용 방지 등 안전장치가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이 잇따른다.
상법 개정은 자유시장 경제체제에서 고도의 성장을 지속해온 원동력이었던 오너 체제를 붕괴시킬 우려가 있다는 점에서 경제 8단체의 거센 반발이 일고 있다.
이번 상법 개정으로 이사에 대한 소송 남발이 우려되고 기업의 혁신 의지 저해 등 기업 성장 생태계가 훼손될 우려가 높다는 점에서 고도의 성장을 이끌어온 경제 및 자본시장 발전이 저해될 가능성이 있다. 특히 아무런 대안이나 보완 장치 없이 개정될 경우 매우 큰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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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회 본회의가 진행되고 있다./사진=미디어펜 김상문 기자 |
◆이사 충실의무 확대 시행…소송 리스크 현실화
상법 개정은 지난 7월 초 국회 문턱을 넘었다. 이사의 충실 의무를 기존 회사에서 주주로 확대하는 것이 골자다. 이는 기업의 이사가 직무를 수행할 때 주주의 이익을 보호하고, 전체 주주의 이익을 공평하게 대우해야 한다는 의미다.
이외에도 감사위원 선임·해임 시 최대 주주와 특수 관계인의 의결권을 합산 3%로 제한하는 ‘3%룰’과 상장회사의 전자 주주총회를 의무화, 사외이사를 독립이사로 전환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상법 개정은 지난달 22일 공포돼 이사의 충실의무 확대는 곧바로 시행에 들어갔다. 3% 제한 규정은 공포 1년 뒤부터, 전자 주주총회 의무 개최 규정 등은 2027년 1월 1일부터 시행된다.
상법 개정으로 기업 의사결정이 소송 대상으로 번질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경영진의 소송 리스크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특히 경영상 판단이 의도치 않게 적자를 야기한 경우에도 문제가 될 수 있어 기업의 의사결정 속도와 투자 활동이 위축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로 상법 개정 이후 소송까지 벌어졌다. 롯데웰푸드 소액주주들은 지난 28일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을 비롯한 전·현직 이사 17명을 상대로 273억 원 규모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소액주주들은 빙과류 부당공동행위(담합) 사건에 대한 118억 원 손해배상청구와 신동빈 회장의 보수 154억 원이 손해에 해당한다는 주장이다. 특히 신 회장이 롯데웰푸드 대표이사 외에도 롯데지주와 롯데케미칼의 대표이사, 롯데칠성음료의 사내이사, 롯데쇼핑의 미등기 회장을 겸직하면서 과도한 보수를 받았다는 점을 문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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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제8단체 부회장들이 상법개정 관련 경제8단체 간담회’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사진=대한상공회의소 제공 |
◆2차 상법 개정 강행…“경영권 방어 더 어려워질 것”
상법 개정으로 인한 소송 리스크가 현실화되고 있는 상황에서도 민주당은 2차 상법 개정안을 발의하면서 기업들을 옥죄고 있다.
2차 개정안에는 자산 2조 원 이상의 상장회사를 대상으로 집중투표제를 의무화하고 감사위원 분리 선출을 확대하는 내용이 담겼다.
집중투표제는 소수 주주가 이사를 선임할 때 1주당 선임할 이사의 수만큼 의결권을 부여해 특정 후보자에게 집중적으로 투표할 수 있는 제도다. 또 감사위원 분리 선출을 1명에서 2명 이상으로 확대하는 방안도 추진된다.
두 방안 모두 기업들의 경영권 방어를 어렵게 한다는 점에서 재계의 반발을 사고 있다. 소액주주들이 권한이 강화되고, 대주주를 견제할 수 있다는 장점은 있다. 하지만 오히려 외국계 펀드 등 투기 세력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경영권을 흔들 수 있고, 기업의 중장기 전략에도 차질이 생길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특히 기업들이 글로벌 경영 환경 불확실성이 높아진 만큼 경쟁력 제고를 위한 전략 수립, 체질 개선 등에 집중해야 하는 시점이다. 하지만 정부와 민주당은 상법 개정을 더욱 강화시키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기업들의 혁신 의지를 꺾고 있다.
경제계 내에서도 2차 상법 개정에 반대하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경제 8단체는 최근 ‘경제계 대국민 호소문’을 통해 “상법이 추가로 개정될 경우 외부 세력의 경영권 공격이 급증하고, 이 과정에서 기업 기밀의 유출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며 “이번 상법 추가 개정은 심각한 경영혼란을 초래하여 급속한 산업 패러다임 전환에 대한 대응을 어렵게 할 우려가 있다. 이는 기업의 펀더멘털을 약화시키고, 장기적인 성장을 어렵게 함으로써 주주가치의 훼손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전했다.
박일준 대한상공회의소 상근부회장은 지난 31일 ‘위기의 한국경제 진단과 과제’ 세미나에서 “지난 22일 이사 충실 의무를 주주로 확대하는 상법이 시행되면서 기업의 의사결정 불확실성이 그 어느 때보다 커진 상황”이라며 “이런 가운데 기업에 대한 규제가 강화되면 우리 기업들의 성장 의욕은 크게 위축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소한의 보호장치 마련부터 선행돼야”
기업들은 최소한의 보호장치 마련이 시급하다는 입장이다. 2차 개정을 서두르기보다는 ‘배임죄 남용 방지’가 선행돼야 한다는 것이다.
배임죄 남용 방지가 적용되면 경영진이 기업의 투자나 신사업 추진에 대한 부담을 낮춰 중장기 성장전략을 위해 보다 과감한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정부와 민주당에서도 배임죄에 대해 개선하려는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최근 “배임죄가 남용되며 기업활동을 위축시키고 있는 점에 대해 제도적 개선을 모색해야 할 때”라고 밝혔고, 곧바로 경제형벌 합리화 태스크포스(TF)가 구성되며 방안 논의에 들어갔다.
TF에서는 배임죄에 대해 ‘경영판단 원칙’에 해당하는 행위를 경영진의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보호하고, 불필요한 소송 리스크를 줄이려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재계는 이러한 움직임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기업들이 안심하고 경영할 수 있도록 추가적인 방어 수단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재계 관계자는 “대기업은 물론 중소·중견기업까지 상법 개정으로 인한 경영 불확실성에 노출돼 있다”며 “중소·중견기업은 해외 투기 자본에 더 취약할 수 있고, 대응 역량도 제한적이기 때문에 최소한의 방어 수단은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미디어펜=박준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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