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 국내 보안시설 블러처리된 위성 사진 구매 검토
업계에선 '본질 외면한 미봉책'에 불과하단 목소리↑
[미디어펜=배소현 기자]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한국 정부의 정밀 지도 반출 제한을 대표적인 '비관세 무역 장벽'으로 꼽으며 압박에 나선 가운데 구글이 보안처리된 국내 위성사진 구매를 검토하겠다고 밝히면서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업계에서는 타협안으로 포장된 구글의 이번 입장 발표를 두고 '핵심 쟁점을 교묘히 우회한 꼼수'라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 사진=픽사베이 제공.


6일 업계에 따르면 구글은 한국 정부의 정밀 지도 반출 여부 결정 시한을 앞두고 군사기지 등 보안시설이 블러(가림) 처리된 국내 위성 사진을 구매하겠다는 의향을 밝혔다.

크리스 터너 구글 대외협력 정책 지식·정보 부문 부사장은 5일 자사 블로그 게시글을 통해 "필요한 경우 이미 가림 처리된 상태로 정부에 승인된 이미지들을 국내 파트너사로부터 구입해 활용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라고 전했다. 

이어 "구글 지도 내 위성 사진은 다양한 전문 업체가 촬영해 오픈 마켓을 통해 판매하는 이미지"라며 "한국 내 안보상 민감 시설을 가림처리하려면 원본 소스인 이들 사진에서 처리하는 것이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고 덧붙였다.

구글이 정밀 지도 반출과 관련해 공식 입장을 낸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표면적으로 한국 정부에게 안보 우려를 해소하겠다는 뜻을 내비친 것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이면에는 사실상 정밀 지도 반출을 압박 의도가 깔려 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앞서 구글은 지난 2월 국토지리정보원에 '1 대 5000' 축척 지도를 해외에 있는 구글 데이터센터로 반출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구글은 지난 2011년과 2016년에도 두 차례에 걸쳐 정밀 지도 반출을 요청했으나 당시 정부는 보안 시설 정보가 담긴 데이터를 해외 서버에 둘 시 정보 유출과 보안상 문제가 있을 수 있다며 이를 불허했다. 

2016년에는 정부가 구글을 향해 '국내에 서버를 두고 고정밀 지도 데이터를 활용하라'는 방안을 제시했지만, 구글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특히 국내에 서버가 없는 상황에서 해당 좌표값이 해외로 반출될 시에는 국가 보안 시설 위치만 고스란히 노출되는 위험성이 제기된다. 이에 한국 정부는 거듭 신중론을 펼치며 △보안 시설의 블러처리 △보안 시설의 좌표 노출 금지 △국내에 데이터 서버를 둘 것 등 3가지 조건을 정밀 지도 반출 조건으로 내걸었다.

이번에 터너 부사장이 한국 내 안보상 민감 시설을 블러처리 하겠다고 밝힌 것은 이 중 일단 한가지 조건을 받아들인 것으로 풀이된다.

터너 부사장은 "매년 1000만 명 이상의 외국인들이 찾는 매력적인 나라 한국에서는 해외 관광객들이 입국과 동시에 큰 불편을 겪게 된다"며 "구글 지도의 길찾기 기능이 한국에서만 제공되지 않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이 같은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 구글은 한국에서도 해당 기능이 서비스될 수 있도록 한국 정부와 협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 구글, '해외 서버' 고집 여전… 업계선 "이해하기 어려워"

업계는 타협안으로 포장된 이 같은 구글 측의 입장을 '본질을 외면한 미봉책'에 불과하다며 맹비난하고 있다.  한국 정부의 안보가 걸린 민감한 사안에 대해 구글이 마치 양보하겠다는 식으로 왈가왈부하는 것 자체가 부적절하다는 지적이다.

구글이 정밀 지도를 반출을 요구하는 핵심은 국내 지도 서비스 사업자가 국내에 서버를 두고 서비스를 하고 있는 것과 달리, 해외 서버에 지도 서비스를 위한 데이터를 저장하려고 하는 것에 있다.

구글이 수용한 조건으로 풀이되는 '보안 시설의 블러처리'를 하기 위해선 여전히 해당 시설의 좌표값이 요구된다. 이는 지도 데이터가 해외 서버로 반출될 시 한국 정부의 행정력이나 주권이 행사되기 어렵다는 점에서 즉각 해외 해커 조직 및 테러 단체 등에 의해 악용될 환경에 노출될 수 있는 대목이다.

업계 관계자는 "한국은 분단국가로 안보가 무엇보다 중요한 상황"이라며 "지도 정보는 단순한 길찾기나 산업적 가치를 넘어서서 국가안보 치안, 재난관리, 군사전략 관점에서도 중요한 국가 전략 자산이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구글 측의 '해외 관광객들이 한국에서 구글 지도의 길찾기 기능이 제공되지 않아 큰 불편을 겪는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한다. 한국에 최적화된 정보를 제공하는 국내 지도 앱들이 있다는 점에서다.

실제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가 발표한 2023년 '주요 여행 앱 동향 및 이용 현황 조사'에 따르면 여행 중 네이버 지도, 파파고 등 국내 관련 서비스 이용률이 91.7%로 압도적 상위를 차지했다. 한국 여행 시 가장 만족한 앱인 '네이버 지도'를 선택한 비율도 27.8%로 가장 높았으며 이어 파파고(9.9%), 구글맵스(6.3%) 순이었다. 

특히 응답자들은 네이버 지도의 장점으로 하나의 앱에서 여행에 필요한 다양한 정보 검색 가능(54.2%), 이용하기 편리한 화면 구성(52%), 다양한 다국어 지원(43.4%)을 꼽았다. 관광객들이 지도 서비스를 선택하는 기준은 구글이 주장하는 지도의 정밀성이 아닌 편리한 기능에 있다는 방증으로 풀이된다.

업계는 왜 구글이 무리한 주장을 펼치면서까지 국내 정밀 지도 데이터를 요구하는지 의문을 제기하며, 이에 대해 객관적으로 납득할 만한 근거를 제시해달라는 입장이다.

업계 관계자는 "한국 정부는 국내 지도 서비스 사업자와 동일한 기준을 구글에 요청하고 있는 것에 불과한데, 구글이 실질적으론 아무것도 수용하지 않고 있는 것"이라며 "기본적으로는 굉장히 간단한 문제다. 국내에 서버를 설치하면 되는 건데 왜 이렇게 복잡하게 나오는지 (이해하기 어렵다)"라고 말했다.

한편 정부는 오는 8일 관계 부처 협의체 회의를 열고 구글의 '국가 기본도 국회 반출 요청의 건'을 논의할 계획이다. 당초 정부는 11일까지 최종 결론을 낼 예정이었지만 이달 말로 예정된 한미 정상회담 이후로 결론 내는 쪽으로 결정을 미룰 가능성도 제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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