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해운 인수 무산…HMM, 신조선 발주로 선대 확장 가속
국내 조선사 도크 포화…가격·일정 경쟁 불가피
신조선가지수 고점 속 ‘시장 수용성’ 반영한 제안 필요
[미디어펜=이용현 기자]국내 해운업계의 ‘빅딜’로 기대를 모았던 HMM의 SK해운 인수가 결국 무산됐다. SK해운이 보유한 선단을 한꺼번에 품에 안을 절호의 기회가 사라진 것이다. 이에 따라 HMM이 추진 중인 ‘2030 중장기 계획’을 안정적으로 수립하기 위해서는 보유 현금자산을 활용한 적극적인 신조선 발주가 불가피하다는 관측이 나온다.

   
▲ HMM의 컨테이너선./사진=HMM

◆SK해운 인수 협상 결렬…벌크선 확대 기회 무산

8일 업계에 따르면 HMM의 SK해운 인수 협상이 최종 불발됐다. HMM 측은 “SK해운 일부 자산 인수와 관련해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돼 거래상대방과 협상을 진행해 왔으나, 4일 인수 협상이 결렬됐다”고 밝혔다.

SK해운은 벌크선 중심의 선단을 보유한 중견 해운사로 글로벌 장기 화물 계약과 노선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지난 2월 HMM이 SK해운 일부 사업부 매각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되자, 해운업계는 HMM이 SK해운 선박을 흡수해 컨테이너선 위주 포트폴리오를 벌크 및 원자재 운송으로 다각화하며 선복 규모를 단기간에 두 배 이상 늘릴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양측은 협상 결렬 사유에 대해 공식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그러나 HMM과 SK해운의 최대주주인 한앤코 측 간 인수 가격에 대한 입장 차이 때문이라는 것이 업계의 중론이다. 

HMM은 2030 중장기 계획상 선대 확장을 위해 SK해운 인수를 단순한 ‘선복 확보 수단’으로 인식했을 가능성이 크다. 이에 따라 시장 가격 대비 프리미엄을 지불하기는 어렵다는 계산이 작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또한 SK해운은 대부분의 선박이 중고선이거나 장기계약 선박이라는 점에서 가치 평가에 할인 요인으로 작용했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실제로 SK해운은 즉시 가동 가능한 중고선을 활용하는 한편, 장기 운송계약 기반의 선대 운용 구조를 강화해 왔다. 

한국신용평가에 따르면 SK해운은 2019년부터 지난해 9월까지 우량 화주와의 장기계약이 체결된 신조선 25척을 인도받은 바 있다. 이러한 선대 운용 방식은 인수자 관점에서 가치 평가 시 부정적인 요인이 됐을 것으로 예상된다.

◆시장 수용성 반영한 전략 발주 필요해

협상이 무산되면서 HMM의 선복 확장 계획에 차질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SK해운 벌크선단 인수를 통한 단기간 선복 확대 기회가 사라지면서 HMM은 신조선 발주를 통한 선대 확장에 더욱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전망도 나온다.

HMM은 2030 프로젝트를 위해 선대 확장이 필요한 상황이었으나, M&A가 무산으로 인해 신조선 발주 움직임이 가속화될 것이라는 관측도 업계에서 나오고 있다. 

조선 해운 전문 매체 트레이드윈즈와 조선업계에 따르면 최근 HMM은 SK해운 인수 실패 이후 약 21억 달러(약 2조9085억 원)를 투입해 1만3000TEU급 LNG 추진 컨테이너선 12척을 국내 조선 3사에 발주하는 등 자체 선대 확장에 속도를 내고 있다. 

하지만 HMM 선박 발주 전략이 보수적이라는 점에서 선대 확보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최근 iMARINE 등 외신에 따르면 1만3000TEU급 LNG 이중연료 컨테이너선의 평균 신조 가격은 1억8100만 달러로 집계됐다. HMM이 국내 조선3사에 발주한 컨테이너선의 척당 평균 가격이 1억7500만달러인 것을 감안하면 HMM이 보수적인 가격 제안을 내놓은 것으로 평가된다.

지난 3월에는 SK해운의 VLOC 매각에서 HMM이 제시하는 가격이 시장 평균 대비 낮아 중견 선사인 우양상선에 뒤쳐져 고배를 마시기도 했다. 

특히 국내 조선사들은 고수익 중심 수주 전략을 고수하고 있어 낮은 가격을 제시하는 오너사와는 계약 체결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조선업계 한 관계자는 “선박 가격이 과거 대비 급등하긴 했지만, SK해운과의 협상이 결렬된 상황에서 계획된 중장기 전략을 실행하려면 HMM도 일정 수준 이상의 ‘시장 수용성’을 반영한 제안을 내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현재 선박 시장은 고부가가치 선형과 친환경 사양을 중심으로 선가가 높은 수준을 보이고 있다. LNG 이중연료 추진 시스템, 탈황설비, 고효율 선형 등 복합 기술 수요가 늘어나면서 벌크선 역시 단가가 크게 올랐다. 

영국 조선·해운시황 분석기관인 클락슨리서치에 따르면 지난 6월 기준 신조선가지수는 187.11포인트로 전월보다 0.42포인트 상승했으며, 2021년 저점(127포인트) 이후 줄곧 고점을 유지하고 있다.

이에 따라 업계에서는 HMM이 국내 해운사 중 최대 수준의 현금성 자산과 안정적인 재무구조를 보유하고 있는 만큼 전략적 발주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린다. 시장에서 선박 확보에 주어진 시간이 길지 않은 만큼 HMM이 더 이상 '가격 저울질'만으로는 선대 확장을 실현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예상도 나온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벌크 부문의 선복 확충은 단기간 내 불확실성이 크기 때문에 M&A 실패 이후에는 선제적 신조 발주가 그나마 현실적인 대안”이라며 “시장 흐름을 감안해 과감한 결정을 내려야 조선업계와도 다시 윈윈 구도가 가능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미디어펜=이용현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