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정부는 실용적 시장주의 정부가 될 것입니다. 통제하고 관리하는 정부가 아니라 지원하고 격려하는 정부가 되겠습니다. 창의적이고 능동적인 기업 활동을 보장하기 위해 규제는 네거티브 중심으로 변경하겠습니다. 기업인들이 자유롭게 창업하고 성장하며 세계 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도록 든든하게 뒷받침하겠습니다."
지난 6월 5일 이재명 대통령이 국회 로텐더홀에서 한 취임 선서의 내용이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12·3 비상계엄 선포로 파면된 후 치러진 21대 대통령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21대 대통령에게 당선됐다.
이 대통령은 당시 진보 진영의 후보라는 프레임에서 벗어나 실용주의 노선을 강조했다. 이념적, 정치적으로 반기업적이고 반시장경제적인 조류에서 벗어나 경제 성장을 제1목표로 친기업, 친시장 정책을 천명했다. 이는 이 대통령의 당선에 한 몫을 담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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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스피 5000‘ 시대는 현재 집권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의 폭주를 보면 회색빛이다. 폭주하는 반기업 법안은 세재개편안에 이어 줄줄이 악재로 작용할 것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31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6차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
‘코스피 5000 시대’에 대한 이 대통령의 자신감은 침체일로를 걷고 있던 한국 경제에 새 희망의 불씨를 던졌다. 계엄과 탄핵 정국으로 인한 극심한 정치적 피로감과 불확실성이 걷혔다. 일정 부분 기업인들을 중용하는 인사에서 이 대통령의 실용주의는 신뢰를 얻었다. 주식 시장은 코스피 3000을 넘어서면서 호응했다.
하지만 여기까지였나. 한 달 남짓 보였던 허니문 랠리는 이후 반기업 법안의 폭주와 증세 논란에 빠져들면서 급속히 냉각됐다. 이 대통령은 ‘가짜 성장’을 벗어나 ‘진짜 성장’을 강조했다.
지속가능한 성장, 체감할 수 있는 성장, 초격차 첨단기술이 주도하는 성장을 내세웠다. 이를 바탕으로 경제 대도약, 진짜 성장의 시대를 열겠다고 했다. 하지만 두 달이 채 못돼 이 대통령의 핵심 기조였던 경제 정책에 물음표가 달리기 시작했다.
올 4월까지 9개월 연속 한국 주식을 팔아치웠던 외국인은 5월 이후 석 달 연속 바이코리아의 행진을 벌였다. 금융감독원이 지난 7일 발표한 ‘외국인 증권투자 동향’에 따르면 올해 7월 말 외국인이 보유한 국내 상장주식은 921조6090억원(시총)이었다. 전체 시총에서 27.7%를 차지하면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이 같은 효과로 지난달 말 코스피는 3245.44까지 올랐다.
장밋빛 기대감을 실망으로 바꿔 놓은 것은 지난달 31일 정부가 발표한 세제개편안이었다. 시장의 냉각과 함께 글로벌 투자은행들의 비관적 비판이 쏟아지면서 후폭풍은 쉽사리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세제개편안 발표 다음날 외국인은 코스피에서만 6540억원 순매도했다. 코스피는 하루 사이 4% 가까이 급락했다.
정부는 주식 양도소득세 대주주 기준을 50억원에서 10억원 이상으로 강화하겠다고 했다. 여기에 배당 소득 분리과세 최고세율, 증권거래세율 인상 계획 등도 악재로 작용했다. 세수 부족분을 얼마라도 채워보겠다는 책상머리 정책에 시장은 분노했다. 소비 쿠폰은 민심 달래기용이 아니라 포퓰리즘이었다는 반사적 민심이다.
동학개미들의 세제개편 반대 청원이 봇물을 이뤘고 국민 10명 7명이 증시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여론조사가 속속 발표됐다. 투자자들이 집단적인 불만을 표출하는 이유는 양도세 때문만은 아니다. 윤석열 정부에서 추진한 감세 조치를 대거 무효화하는 것 자체가 전 정부 그림자 지우기란 비판도 헤어나기 어렵다.
글로벌 투자은행(IB)들은 이번 세제개편안은 한국 증시 저평가(디스카운트) 해소에 나선 정부의 노력과 반대되는 정책이라고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개편안은 시장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고 평한 JP모건은 ”한국 기업의 실적 개선 또는 추가적인 자금 유입이 있어야만 주가가 재평가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씨티은행도 ”최근 코스피는 증시 활성화 대책 기대에 올랐기 때문에 (이번 세재개편으로) 추가 하락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지금 대한민국 기업은 기로에 서 있다. 대표 기업인 삼성전자는 정치에 발목이 잡혀 오너 사법 리스크로 수년 간 제자리가 아니라 뒷걸음질 쳤다. 1등 기업이 발목이 잡힌 그 순간에 세계의 기술 전쟁은 판세를 바꿔 놓았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 몫이자 국가 경쟁력 저하다.
삼성전자가 사법 리스크 속에 오너 리더십 공백과 조직 위축을 겪는 사이 반도체 주도권은 TSMC에 넘어갔다. 미래 투자는 지연되고 기술 혁신의 동력은 약화했다. 이는 단지 ‘한 기업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경제 생태계 전반에 엄청난 연쇄 충격을 안겼다. 정치는 바뀔 수 있어도 기업은 유지돼야 한다. 그곳에 일자리가 있고 국가 미래의 먹거리가 달린 것이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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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스피 5000 시대’에 대한 이 대통령의 자신감은 침체일로를 걷고 있던 한국 경제에 새 희망의 불씨를 던졌다. 하지만 여기까지였나. 한 달 남짓 보였던 허니문 랠리는 이후 반기업 법안의 폭주와 증세 논란에 빠져들면서 급속히 냉각됐다./사진=미디어펜 김상문 기자 |
정부의 세재개편안은 진정성을 의심받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말한 성장과 실용주의가 아니라 아직도 엄습하게 웅크리고 있는 밑바닥의 이념적 저항이 문제다. 반대만을 외치며 누구보다 그걸 이용하는 세력. 그 이용가치가 상실되면 기댈 곳이 없는, 선동적 정치에 기대 살아온 생산적이지 못한 비생산적 기생 세력이 문제다.
세제개편안은 과거가 아니라 미래의 양지에서 바라봐야 한다. 2023년 반도체 불황으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2024년 법인세는 0원이었다. 두 기업이 우리나라 전체 법인세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0% 내외이다. SK하이닉스의 영업이익이 좋다지만 아직 응원해야 할 입장이지 순위를 따질 수는 없다. 트럼프 발 관세 등 글로벌 경제는 여전히 안갯속이다.
법인세는 결국 세율보다는 세수 증대로 이어질 수 있는 영업이익 증대를 고양하는 쪽이 바람직하다. 세수 증대는 세율 인상보다는 기업의 영업이익 증대를 이끌어 내는 정부의 정책이 중요하다. 근로와 기업 의욕을 저해하는 정책의 말로는 결국 모두의 빈 곳간을 부른다.
’코스피 5000‘ 시대는 현재 집권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의 폭주를 보면 회색빛이다. 폭주하는 반기업 법안은 세재개편안에 이어 줄줄이 악재로 작용할 것이다. 일명 파업 조성법이란 불리는 ‘노란봉투법‘ 재추진은 산업 생태계 자체를 뒤흔들 것이 자명하다. 이미 국내 기업은 물론 주한유럽상공회의소와 주한미국상공회의소 등 외국 기업 단체들까지 한국 투자 축소 가능성을 경고하고 나선 것에 그 답이 있다.
’코스피 5000 시대‘를 열려면 기업이 자유로워야 한다. 기업의 자율성과 투자자의 신뢰가 맞물릴 수 있는 정책이 뒷받침 돼야 한다. 앞에서는 소비 쿠폰을 뿌리고 뒤로는 증세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이번 세제개편안이 딱 그 모양세다. 우는 아이 떡 하나 주고 곳간 털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다
’진짜 성장‘을 위한다면 과거와의 결별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글로벌 경제 환경을 직시해야 한다. 나라 곳간 지키겠다고 온갖 가렴주구를 짜내는 이 정부에 대한 신뢰도는 몇 점일까? ’작심삼일‘은 넘겼지만 ’작심 2개월‘만에 경고음이 울리고 있다. 거대(?)의 오만일까? 실용정부(實用政府)가 될지 실용정부(失用政府)가 될지는 오롯이 그들의 선택에 달렸다. 라이벌 없는 독주의 가장 무서운 적은 도태라는데.
[미디어펜=문상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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