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열의 상징’ 조국의 강이 다시 흐른다. ‘치유의 역사’에 생채기를 남긴 윤미향이 귀환했다. 논란의 중심에 섰던 두 사람이 광복 80주년 특사에 이름을 올렸다.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였다. 이변은 없었다. 이재명 정부 출범 두 달여 남짓 만에 이루어진 8·15 특별사면은 감동 없는 각본 그대로의 드라마였다. ‘그들만의 리그’에 ‘모두의 리그’를 잠시나마 생각했던 기대감은 여지없이 무너졌다.  

8·15라는 의미를 무색케 하는 ‘광복절 특사’다. 역사적 의미에 더해 공정과 정의에 대한 잣대마저 형평을 잃었다. 더 나아가 대한민국의 법치에 대한 의구심를 자아내게 한다. 법의 엄중함보다 더할 수 없는 가벼운 권력의 유희에 그저 놀라울 뿐이다.

광복절을 앞둔 지난 11일 국무회의에서 이 대통령은 사면·복권 대상자 83만6687명을 확정했다. 대상자는 정치인을 비롯한 주요 공직자 27명, 경제인 16명, 파업과 시위 관련 노조원·노점상·농민 184명, 운전면허 행정 제재 감면 82만3497명 등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이번 사면 배경에 대해 “국민통합이라는 시대의 요구에 부응하고 민생경제에 온기를 불어넣기 위한 법무부의 이번 사면안에 공감했다”고 했다. 문제는 국민통합과 민생과는 거리가 있어 보이는 조국 전 장관과 윤미향 의원 등 정치인들이 대거 포함됐다는 사실이다. 

   
▲ ‘조국 사태’는 부모의 지위와 인맥을 통한 허위 인턴 경력과 표창장 등으로 ‘공정’ 이슈에 불을 붙이며 청년들을 분노케 했다. 그런 그가 형기의 3분의 1 정도를 채운 채 사면 복권되어 다시 정치 재개의 길을 걷게 됐다. 조 전 대표는 법 앞에, 양심적으로 살아온 국민 앞에 겸허해야 한다. /사진=인터넷매체 공동취재

조국 전 장관과 윤미향 전 의원이 국민 통합의 대상인가? 아니면 민생 회복과 관련이 있는 사람인가. 이번 사면이 가지는 의미는 역대 대통령과 궤를 달리하고 있다. 취임 두 달여 남짓의 대통령이 정치인의 사면을 한 예는 없다. 대부분 첫 사면 대상은 논란과 오해를 부를 수 있는 정치인은 제외하고 민생과 사회적 통합에 방점을 뒀다.

국민 통합은 포용의 정치이지 편 가르기가 아니다. 이번 사면의 가장 극적 장면은 조국 전 장관과 윤미향 전 의원이다. 대통령실이 내놓은 메시지는 “국민통합 시대요구와 대화 정치복원의 계기가 되길 바란다”는 것이었다. 조국 전 장관은 통합보다 청년의 분노와 갈등을 불러일으켰고 윤 전 의원은 위안부 후원금을 횡령한 혐의로 대법원의 유죄 판결을 받았다.

민생과 국민 통합과는 거리가 먼 인사다. 조 전장관은 자녀 입시 비리와 청와대 특별감찰관 감찰 무마 등의 혐의로 징역 2년이 확정돼 지난 해 12월 16일 수감됐다. 전체 형기의 8개월을 채웠다. 67%의 나머지 형기를 남기고 특별사면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자녀 입시 비리는 조 전 장관의 부인 정경심 전 동양대 교수까지 연루돼 청년들의 가슴을 찢었다. '개천에서 용 난다'는 기대감을 짓뭉개며 수많은 이 시대 평범한 청년들의 희망과 꿈을 송두리째 짓밟았다. 개천에서는 아무리 잘 나도 용이 아니라 미꾸라지일 뿐이라는 자조를 불렀다. 사다리를 걷어찼다.

가진 자의 특권 속에 숨어 약자를 위하는 척하는 두 얼굴 조국 사태는 대한민국을 뒤흔들었다. 마녀사냥을 운운하며 법학자의 얼굴로 법을 조롱했다. 그 법을 지키며 살아가는 국민과 그 법으로 법치를 내세운 국가의 신뢰가 무너졌다. 

법은 질서를 유지하고 사회가 유지되기 위해 정의를 실현함을 직접 목적으로 하는 국가의 강제력을 수반하는 사회적 규범 또는 관습이다. 조 전 장관은 숱한 의혹에도 검찰의 부당성을 지적하며 이를 부정했다. 법 앞에 모든 국민은 평등하다. 그걸 가르쳐 온 학자이자 교수가 정치에 몸담으며 송두리째 부정했다. 

조국 전 장관 사태는 2019년 8월 문재인 대통령이 민정수석에서 법무부 장관 후보로 지명하면서 시작됐다.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이 지휘한 ‘조국 수사’는 검찰개혁과 공정 담론이 맞물리며 정치·사회적 갈등으로 한국사회를 혼란으로몰아 넣었다. 사모펀드 투자 의혹에서 자녀 입시 비리, 웅동학원 관련 의혹 등으로 확산되면 전방위로 번졌다.

당시 검찰개혁에 대한 보복수사라는 논란도 있었지만 이 수사로 조 전 장관의 부인 정경심 전 교수는 징역 4년형을 선고받았다. 3년3개월여를 복역한 뒤 2023년 9월 가석방됐다. 딸 조민씨는 고려대와 부산대 의학전문대학원 입학이 취소됐다. 조 전 장관은 임명 35일 만에 물러났고 지난해 12월 징역 2년형이 확정돼 수감됐다. 

일각에서는 정치적 희생양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조국 사태’는 부모의 지위와 인맥을 통한 허위 인턴 경력과 표창장 등으로 ‘공정’ 이슈에 불을 붙이며 청년들을  분노케 했다. 그런 그가 형기의 3분의 1 정도를 채운 채 사면 복권되어 다시 정치 재개의 길을 걷게 됐다. 또 다른 갈등의 불씨를 짚이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나온다. 조 전 대표는 법 앞에, 양심적으로 살아온 국민 앞에 겸허해야 한다.

악법도 법이다. 말과 법은 인간이 만들었기에 완전무결할 수는 없다. 다만 국가의 질서 유지를 위해서는 법이 불리하더라도 제정된 이상 지켜야 한다. 그것이 공동체 존속을 위한 최소한의 약속이자 법 제정의 목적이다. 악법이라면 합리적인 절차와 과정을 거쳐 고쳐나가면 된다. 그것이 입법부가 해야 할 일이다.

   
▲ 윤미향 전 의원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후원금을 횡령한 혐의로 지난해 11월 대법원에서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이 확정됐다. 그는 이재명 정부 출범 두 달여 남짓만에 이루어진 8·15 특별사면에 포함됐다. /사진=연합뉴스

조 전 장관에 이어 또 다른 논란의 핵심은 윤미향 전 의원이다. 윤 전 의원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후원금을 횡령한 혐의로 지난해 11월 대법원에서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이 확정됐다. 윤 전 의원은 위안부 할머니 돈 횡령 등 8가지 혐의로 2020년 9월 기소됐지만.4년이나 지나 대법원의 확정 판결이 나왔다.

늑장 판결로 그는 국회의원 임기 4년을 모두 채웠다. 이 때문에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라는 비판까지 등장했다. 뿐만 아니라 위안부 후원자측의 후원금 반환 소송을 맡은 서울서부지법 재판부가 올 1월 ”원고들이 반환을 청구한 기부금을 모두 돌려주라“는 내용의 화해 권고 결정을 내렸지만 지키지 않고 있다.

사건 원고 2명이 윤 전 의원 등에게 청구한 후원금 총액은 120만 원이다. 윤 전 의원 측은 ”후원금을 돌려줄 수 없다“며 재판부에 이의 신청을 내 반환 소송은 6년째 이어지고 있다. 윤 전 의원 측은 ”받은 후원금은 모두 목적에 맞게 썼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사실상 대법원의 판결마저 부정하는 것이다. 광복 80주년이자 그 피해 당사자와 연루되어 법의 심판을 받은 자가 과연 이번 특사에 포함됐어야 했는지에 대해 여론은 심상치 않다. 

8·15광복절이 국민정서와 엇갈린 대통령 특사로 인해 또 다른 갈등의 불씨가 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국민 대통합‘ 명분을 내세웠지만 정치인의 중대 범죄에 면죄부를 줬다는 논란까지 비껴가기에는 아쉬움이 있다. 

이외에도 뇌물 수수, 횡령, 성추행 등을 저지른 홍문종, 정찬민, 심학봉 전 국민의힘 의원, 뇌물수수 등의 혐의로 징역 2년형 은수미 전 성남시장, 현직 법무부 차관으로 택시 기사 폭행 이용구 전 차관, 해직 교사 부당 특채 조희연 전 교육감, 조 전 장관 아들에게 허위 인턴 확인서를 발급한 최강욱 전 의원,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 윤건영 민주당 의원, 백원우 전 청와대 민정비서관…

사면권은 대통령의 고유권한이지만 사법부의 판단을 뒤흔드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사법부의 독립 침해는 물론 법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에 잘못된 신호를 보낼 수 있다는 점을 깊이 들여다보아야 한다. 이런 법이라면 누가 지키려 하겠는가.  
[미디어펜=문상진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