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이용현 기자]HD현대중공업과 현대미포조선의 합병이 단순 외형 확장이 아닌 글로벌 방산·MRO 시장 공략을 위한 전략적 포석이 될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다만 노란봉투법 개정 이후 노조에서 합병을 반대하고 있어 진통이 예상된다.
2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HD현대가 발표한 HD현대미포와의 합병은 오는 12월까지 주주총회와 기업결합 심사를 거쳐 마무리될 전망이다. HD현대 측은 합병의 이유로 "양적·질적 대형화를 통해 시너지를 극대화함으로써 시장을 확대 및 다변화하기 위한 것“이라며 ”동시에 최첨단 기술을 선제적으로 개발해 치열해지는 글로벌 시장에서 절대적인 경쟁 우위를 확보하기 위한 전략적 조치"라고 밝혔다.
HD현대는 이번 합병으로 드라이도크와 MRO 라이선스의 결합, 여유 생산능력 활용 등으로 새로운 성장동력을 확보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노조 측이 우려하는 고용 불안 문제 역시 방산 산업 특유의 고용 안정성과 외국인 근로자 참여 제한 규정을 기반으로 우려를 불식시킬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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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D현대중공업(위)·HD현대미포(아래) 야드 전경./사진=HD현대중공업 제공 |
◆드라이도크 결합으로 MRO 경쟁력 극대화
HD현대는 이번 합병으로 방산 매출 목표를 2035년까지 연 7조 원으로 확대했다. 기존 3조~5조 원 수준에서 대폭 늘어난 수치로 미국을 중심으로 한 글로벌 MRO·방산 수주 확대에 자신감을 내비친 셈이다.
실제로 업계는 이번 합병 효과가 특히 MRO 부문에서 두드러질 것으로 본다. HD현대중공업이 가진 한계, 즉 도크 여력과 인프라 부족 문제를 현대미포조선의 시설을 통해 상당 부분 해소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례로 이달 초 HD현대중공업이 수주한 미 해군 7함대 소속 4만1000톤급 화물보급함 ‘USNS 앨런 셰퍼드’함 정기 정비 사업은 오는 9월부터 울산 HD현대미포 인근 안벽에서 시작된다. 수주 물량이 쌓여있는 만큼 보유한 도크 내 여력이 부족하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다만 안벽 수리 방식은 한계가 있다. 함정을 물에 띄운 상태로 작업하기 때문에 상부 구조물이나 내부 장비 교체에는 문제가 없지만 선체 하부가 수중에 잠겨 있는 탓에 프로펠러, 러더(방향타), 선저(용골) 등 주요 부위에 대한 정밀 점검과 개조에는 제약이 따른다.
하지만 이와 달리 현대미포조선은 안벽 수리에 비해 안정성과 효율성이 높은 드라이도크를 다수 보유하고 있어 이러한 한계를 보완할 수 있다. 드라이도크는 배를 물에서 들어 올려 고정한 상태로 작업할 수 있는 구조다. 물 속에 잠겨 있던 부위까지 정밀 점검과 수리가 가능해 안벽 수리보다 효율과 안전성이 높다.
아울러 현대미포의 도크 규모 역시 미국의 군함·보조함·특수선 수리와 개조에 최적화돼 있다는 평가다. 실제 항공모함을 제외한 미 해군 주요 전력의 크기를 보면 △와스프급 강습상륙함은 253×32m △타이콘데로가급 순양함은 173×17m △알레이버크급 구축함은 155×20m △대형 보급·수송함은 270m 내외다.
현대미포조선이 보유한 370×62m급 드라이도크의 경우 대부분의 함정을 수용할 수 있어 합병 이후 방산 MRO(정비·개조) 분야에서 경쟁력이 크게 확대될 것이란 평가가 나온다.
또한 통상 MRO는 선박 건조보다 이익률이 낮은 편이지만 현대미포조선의 연간 건조량은 45척 안팎이며, 실제 생산능력은 최대 70척까지 확보돼 있어 추가 수주에도 무리가 없다는 점도 긍정적인 요인으로 꼽힌다. 여기에 HD현대가 이미 보유한 미 해군 MRO 라이선스 역시 합병 후 별도의 추가적인 인증 절차 없이 현대미포에도 적용되는 것으로 확인됐다.
한국기업평가는 "HD현대미포가 보유한 중소형 드라이 도크(dock)는 석유화학 제품 운반선 등 중형 선박 건조에 최적화돼 있어 이와 유사하거나 소형급인 군함 건조 및 유지 보수에도 효율적인 활용이 가능하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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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D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 전경./사진=HD현대중공업 제공 |
◆방산 특수성, 고용 안정성 확보...노조는 반발
HD현대가 합병 계획을 밝힌 가운데 노동조합 측 일부가 파업 강행 의지를 보이고 있어 노사 관계는 완전히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HD현대중공업과 HD현대미포조선 노조는 지난달 29일 공동 입장문을 발표하며 합병에 대한 반대의사를 표명했다.
이들은 "구조조정, 중복사업에 대한 희망퇴직 등 고용불안과 사측의 일방적인 전환 배치에는 단호하게 맞서 싸우겠다"며 합병 시 발생할 수 있는 우려 사항에 대해 회사 입장을 요구했다.
HD현대중공업 노조가 올해 임금 협상 난항으로 벌써 5번째 부분 파업을 벌인 가운데 이번 합병 계획이 노사 협상의 추가 걸림돌이 된 것이다.
다만 업계의 시각은 다르다. 양 사의 합병에 따라 최대 시너지가 발생하는 방산 특수선 분야에서 노조 측의 우려와 달리 안정성이 확보돼 있기 때문이다. 대법원이 지정한 ‘방위사업법’, ‘군수품 관리법’ 등에 따르면 방산 관련 기술·시설·정보에 대한 접근은 국가보안상의 이유로 외국인 근로자 제한 규정을 두고 있으며 특히 군함·잠수함·첨단 레이더 등 국방 핵심 분야는 원칙적으로 내국인만 허용된다.
합병에 따른 구조조정이나 노사 갈등의 영향을 받을 수 있는 일반 조선·제조 부문과 달리, HD현대의 특수선 MRO 및 방산 관련 업무는 국내 근로자 중심으로 안정성이 확보돼 고용 불안 문제를 완화할 수 있다.
아울러 일반 조선, 제조업과 달리 외국인 고용허가제(E-9)나 전문취업비자(E-7) 역시 방산 현장에서는 허용되지 않는다. 이 때문에 합병이 일자리 축소로 이어질 가능성은 낮다.
여기에 더해 합병 이후에는 조선산업 전반을 뒤흔들어 온 파업 리스크에서도 HD현대중공업이 상대적으로 자유로울 것으로 전망된다. 특수선 부문은 파업 대상에서 제외되기 때문이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제41조 제2항에 따르면 “방위사업법에 의해 지정된 주요방위산업체에 종사하는 근로자중 전력, 용수 및 주로 방산물자를 생산하는 업무에 종사하는 자는 쟁의행위를 할 수 없으며 주로 방산물자를 생산하는 업무에 종사하는 자의 범위는 대통령령으로 정한다”고 명시돼 있다.
즉 국방산업 조선업체로 지정된 HD현대중공업의 특수선 사업부 근로자는 쟁의행위가 금지된다는 것이다.
다만 노동자들이 기존 업무 환경에서 변화를 꺼려하고, 쟁위행위 금지 및 합병에 따른 노조 입지 축소 등의 문제는 노조 관계자들이 수긍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게 업계 관계자의 설명이다.
업계 관계자는 “조선업에는 항상 노사 갈등이 상존해왔으며 향후 파업 여부가 실제 사업 추진 속도에 영향을 줄 수 있다”면서도 “방산 특유의 고용 안정성이 노조 측의 우려를 다소 완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미디어펜=이용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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