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유태경 기자] 미국의 관세 인상 여파로 수출 기업들이 전례 없는 부담에 직면한 가운데, 정부가 총력 대응에 나섰다. 이번 대책은 금융 지원부터 무역보험, 물류비 절감, 산업별 맞춤형 지원에 이르기까지 다방면으로 기업 부담을 줄이는 데 초점을 맞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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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업통상자원부 정부세종청사./사진=미디어펜 |
산업통상자원부는 3일 경제관계장관회의 및 산업경쟁력강화 관계장관회의에서 관계부처 합동으로 이 같은 내용의 '美 관세협상 후속지원대책'을 발표했다.
정부는 그간 미국 측과의 협상을 통해 당초 예정됐던 25%의 상호관세를 15% 수준으로 낮추는 데 합의했지만, 이 또한 수출 경쟁력을 저해하고 있다는 현장 의견을 반영해 실질적인 지원책 마련에 속도를 냈다.
정부는 우선 정책자금 13조6000억 원을 긴급 편성했다. 관세로 인해 수익성이 악화된 수출기업들의 유동성 확보를 위한 단기 자금지원이 핵심이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대출한도 상향이다. 산업은행의 '관세피해업종 저리운영자금'은 기업당 최대 대출한도를 중소기업은 기존 30억 원에서 300억 원으로, 중견기업은 50억 원에서 500억 원으로 10배 확대한다. 금리 역시 추가로 0.3%포인트 인하돼, 2~3%대의 저금리 대출이 가능해진다.
수출입은행은 '위기대응 특별 프로그램'의 신용등급 기준을 완화해 기존 P5+에서 P4 이하 등급 기업까지 지원을 확대한다. 신용등급 하락 시에도 추가 가산금리를 면제받을 수 있다.
중소기업진흥공단의 '통상리스크 대응 긴급자금'의 경우, 품목관세 부과 대상이 확대됨에 따라 기존 철강·알루미늄·자동차·부품 업종에서 구리 업종까지 지원 대상을 넓혔다.
기업의 수출 여건 회복을 위해 무역보험공사는 사상 최대 규모인 270조 원 규모의 무역보험 공급을 결정했다. 기존 관세 피해 업종에만 적용됐던 보험·보증료 60% 할인을 모든 관세 부과 업종으로 확대했고, 연말까지 지원 기간도 연장했다.
또한 기업이 수출 계약서를 제출하면 별도 심사 없이 최대 1억 원의 보증 한도를 제공하는 '특별 보증 프로그램'을 신설했다. 이는 초보기업이나 수출 실적이 적은 중소기업들이 미국 외 신규시장에 진입할 때 실질적인 도움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보증요건도 완화된다. 관세로 인해 재무구조가 악화된 기업에 대해서는 특례심사제도를 도입해 기존 보증한도 제한을 유연하게 적용한다. 이 외에도 현지법인의 운영자금 조달을 위한 중장기 보증도 새롭게 마련된다.
복잡해진 통관 절차와 물류 지연 등으로 어려움을 겪는 기업들을 위해 정부는 약 4200억 원 규모의 수출바우처를 2025년 8월부터 2026년까지 집중 지원한다. 물류비 지원 한도는 기존 3,000만 원에서 6,000만 원으로 두 배 상향되며, 지원 항목도 단순 운송비에서 창고보관·포장·배송 등 전체 유통 과정으로 확대된다.
이달부터는 미국 내 55개 공동물류센터 사용료의 90%를 감면하며, 내년에는 K-뷰티 전용 물류센터도 신설한다. 현재 통관 애로 해소를 위해 관세대응 119 통합상담창구도 가동 중이며, 향후 HS코드 분류와 세율 판단 등에 필요한 미국 세관 사전심사 대행도 확대 운영될 예정이다.
철강·알루미늄·파생상품 등 일부 고관세 품목에는 최대 50%의 관세가 부과되는 상황임에 따라 정부는 5700억 원 규모의 특별 지원 패키지를 마련했다.
우선 피해 업종 대상 이차보전사업을 신설해 대출 이자 부담을 줄이고, 무역협회와 협력해 200억 원 규모의 긴급 저리융자자금도 편성했다. 해당 융자에는 1.5%~2.0%의 우대금리가 적용된다.
또한 철강 대기업과 금융기관이 출연하는 수출공급망 강화 보증상품을 신설해 협력업체들의 대출금리와 보증 한도를 동시에 개선한다. 원자재의 경우 긴급할당관세 제도를 적용해 수입 단가를 낮추고, 관세 산정에 필요한 함량가치 산출 컨설팅 및 계산 사례집도 제공된다.
관세로 인한 수출물량 감소를 내수로 흡수하기 위한 정책도 시행된다. 전기차 전환 지원금 신설과 고효율 가전제품 구매환급 확대 등 소비자 대상 인센티브를 통해 자동차·가전 소비를 끌어올린다.
철강, 기계, 이차전지 등 중간재 산업의 경우에는 국산 자재 사용을 의무화하는 건설·인프라 프로젝트 확대를 통해 수요를 창출한다. 노후 기계 교체 및 ESS 보급 확대를 위한 지역 지원책도 병행된다.
불법 우회수출 및 덤핑 차단을 위한 관세청 무역안보특별조사단의 활동도 강화한다. 철강재 수입 시 품질증명서(MTC) 제출 의무화, 우회수출 조사범위 확대 등 제도 개선도 추진한다.
미국 중심의 수출 구조에서 벗어나기 위한 신흥시장 개척도 대책의 핵심 축이다. 정부는 하반기 중 해외전시회, 수출사절단, 한류박람회 참가 기업 수를 3000개사로 확대하고, 지역 특화 전시회도 기존 18개에서 68개로 늘린다.
중장기 수출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정부는 K-콘텐츠, K-뷰티, K-푸드 등 유망 산업에 대한 집중 육성 정책도 병행한다.
K-푸드의 경우 한류를 연계한 마케팅 강화와 함께 활방어·닭고기 등 FTA 간편인정 품목을 확대해 무관세 수출을 늘린다.
정부는 이번 대책과 별도로 주력 산업의 중장기 경쟁력 확보를 위한 세부 방안도 마련 중이다. 하반기에는 AI 미래차, 이차전지, 철강산업 고도화 등 산업별 중장기 전략이 순차적으로 발표될 예정이다. 전략에는 AI 자율주행, 온디바이스 반도체, 차세대 배터리, 저탄소 수소환원제철 등 초격차 기술 개발과 반도체 클러스터 등 인프라 투자 확대 등 내용이 포함될 예정이다.
한편 정부는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가입과 관련해서는 기존의 검토 입장을 유지하고 있으며, 대외 여건과 국내 이해관계자 의견을 반영해 전략적으로 접근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2021년 국무회의 의결 이후 국회 보고 절차 등 관련 절차가 미완료 상태이며, 최근 들어 가입 실익 분석을 다시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관 장관은 “관세 협상은 끝났지만, 현장의 어려움은 지금부터가 시작”이라며 “이번 대책을 계기로 기업들이 통상환경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하고, 새로운 수출 기회를 찾을 수 있도록 정부도 끝까지 함께하겠다”고 밝혔다.
[미디어펜=유태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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