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봉투법으로 불리는 노조법 2·3조, 더 센 상법으로 불리는 2차 상법 개정안에 이어 또 다른 시한폭탄 ‘초기업 단위교섭’이 온다. 고용노동부는 최근 공공부문 초기업 단위 교섭 모델 개발과 집단적 노사관계 발전 방안 마련 등 과제를 연구용역으로 발주했다.
글로벌 시장과 역행하는 기업을 옥죄는 법안들이 줄을 잇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4일 취임 후 한국노총·민주노총 위원장과 첫 만남을 가졌다. 이 대통령은 "노동 존중 사회, 기업 하기 좋은 나라는 상호 대립적인 게 아니고 충분히 양립할 수 있다"며 "첫 출발점은 노사가 마주 앉아 대화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 대통령은 대통령 직속 경제사회노동위에 양대 노총의 참여를 촉구했다. 민주노총은 1999년 이후 경사노위에 참여하지 않고 있다. 이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노동계의 금기어로 통하는 '고용 유연성'을 언급했다. 고용 유연성은 경제계의 오랜 숙원이다. 하지만 양노총은 청구서만 잔뜩 내놓고 확답을 회피했다.
앞서 민노총은 지난 3일 중앙위원회를 열어 하반기 핵심 추진 의제로 '초기업 교섭 활성화 및 단체협약 효력 확대', '특수고용직 등의 노동자성 보장', '작업 중지권 실질 보장' 등을 의결했다. 민노총은 조만간 이를 제도화하기 위한 노조법 등 개정을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 대선공약인 주 4.5일 근로제 도입, 정년연장 등도 뜨거운 감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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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명 대통령이 4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양대노총 위원장과의 오찬 간담회에 참석해 김동명 한국노총 위원장(왼쪽),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과 기념촬영을 하며 손을 잡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기업 발목을 잡는 규제가 쓰나미처럼 몰려오고 있다. 특히 경제계가 긴장하는 것은 노란봉투법만큼이나 피해가 우려되는 초기업 단위교섭이다. 초기업 단위 교섭은 산별노조처럼 직종, 산업 단위로 결성된 노조가 주도하는 노사 협상이다. 노조의 일방적 주장으로 흐를 가능성이 높다.
노동계는 원·하청 임금 격차 완화 등을 위해 필요하다고 주장하지만 기업들은 통합 교섭안을 따를 수 없는 영세 기업이 큰 피해를 볼 수 있다고 우려한다. 복합적인 상황을 고려해 정부는 공공분야부터 우선 적용을 검토하고 있다. 이후 교섭 방식을 지켜보면서 공기업, 민간기업으로 확산이 예상된다. 정부는 2026년 말까지 관련 법 개정을 마무리하겠다는 목표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초기업 단위교섭은 산업 전체에 적용되는 과정에서 개별 기업의 사정과 기업별로 다른 경영 환경을 제대로 반영할 수 없다. 기업들은 이로 인해 파업 등 노사 간 충돌이 잦아질 것을 걱정한다. 특히 기업마다 다른 근로 조건, 임금 수준을 하나로 묶는 것은 아예 문을 닫는 경우로 비화될 수도 있다. 결국 기업 입장보다 노조의 손을 들어주는 일방통행에 가까운 법이다.
관세전쟁 통에 기업의 손발을 묶는 법안들이 이재명 정부 들어 친노조반기업 집권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에 의해 자행되고 있다. 원풀이 하듯 밀어 붙이는 노란봉투법, 상법, 초기업 교섭은 기업의 혁신을 가로막고 부담을 늘리는 기업 죽이기와 다름없다. 일자리는 줄어들고 기업은 해외로 발길을 돌릴 것이다.
초기업 단위 교섭은 이해가 큰 만큼 글로벌 국가들도 지양하고 있다. 유독 한국만 거꾸로 가고 있다. 뿐만아니다. 대리기사 배달기사 등도 법적 보호를 받도록 하는 특수고용직 등의 노동자성 보장, 노동자가 사업주에게 작업 중지를 요구할 수 있는 작업 중지권 등은 산업 현장 환경을 뒤흔들 만큼 파급성이 크다.
주 4.5일 근로제나 정년연장도 경제계에 던질 파문은 예측불허다. 청년층의 일자리가 줄어들고 기업의 비용 덤터기는 결국 모두의 몰락을 부른다. 성장률 0%대라는 엄혹한 현실 앞에서 미래보다는 자기 밥그릇 챙기기에 급급한 암울한 현실이다.
이 대통령은 최근 "새는 양 날개로 난다. 기업과 노동이 둘 다 중요하다"며 "쇠뿔을 바로잡으려다 소를 잡는 교각살우의 잘못을 범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표면적으로는 실용주의를 앞세운 정부 입장을 대변하는 듯한 발언이다. 현실은 정반대의 횡보를 보이고 있다. 오랜 노조의 숙원을 풀어 주려는 듯 여당은 밀린 숙제하듯 과제를 밀어붙이고 있다.
저성장 늪에 빠지는 고착화를 막기 위한 성장전략을 얘기하면서 성장을 막는 법안을 줄줄이 의결한다. 오른쪽 깜빡이를 켠 채 핸들을 왼쪽으로 돌리는 말과 행동이 다른 당정에 기업들은 혼란스럽다. 트럼프의 관세 폭풍을 1500억 달러라는 미국 투자로 소방수 역할을 한 기업들의 보국은 금새 잊혀졌다.
일명 '소송남발법'으로 불리는 상법 개정안과 '파업조장법'이라 불리는 노란봉투법은 경제계 모두가 나서 강력히 반대해 온 법안이다. 주한미국상공회의소(암참)까지 나서 우려를 전할 만큼 후폭풍이 예상되는 법안이지만 당정은 우이독경이다. 상법 개정안은 1년 뒤, 노란봉투법은 6개월 뒤 시행에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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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D현대중공업 노조 파업 현장./사진=HD현대중공업 노조 |
상법과 노란봉투법의 후폭풍은 이미 현실화 되고 있다. 현대자동차 노조는 법안이 공포되자 곧바로 부분파업에 돌입했다. 7년만에 파업에 나선 현대차 노조는 성과급 외에 최장 64세까지 소득 공백 없는 정년 연장, 주 4.5일 근무제 도입 등을 요구하고 있다. 노조와 근로자의 손해배상 책임을 제한한 노란봉투법의 보이지 않는 힘이다.
HD현대의 조선 3사 노조는 계열사 합병 등에 반발해 2일 오후부터 4일까지 부분 동맹파업을 벌였다. 임금 인상 요구뿐 아니라 미국 조선시장 진출을 위한 HD현대중공업과 HD현대미포 합병에도 반대하고 있다. 한국 철수설이 나오는 한국GM 노조도 고용 보장을 요구하며 부분파업을 벌였다.
현대제철 하청 노조원 1890명은 원청인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을 집단 고소했다. 네이버와 손자회사 6곳 노조는 교섭 결렬에 원청인 네이버에 책임을 묻겠다고 집회를 열고 있다. 건설노조는 SK에코플랜트에 민노총 조합원을 협력사에 추가 고용토록 하라고 압박했다. 구조조정이 불가피한 석유화학·철강, 불황의 늪에 빠진 건설업 위기에 기름을 부은 셈이다.
경제계의 우려를 외면한 결과가 현장을 혼란과 갈등으로 몰아넣고 있다. 노동계는 법이 통과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추투'에 가세하고 있다. '교각살우'를 우려했던 이 대통령의 걱정은 이미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이 대통령의 발언이 믿음을 주지 못한 까닭이다. 말과 행동이 따로 놀아서다.
무신불립(無信不立:믿음이 없으면 일어설 수 없다)이라 했다. 믿음과 의리가 없으면 국가나 개인이나 존립하기 어렵다. 서로 신의를 지켜 믿고 의지할 수 있어야 한다. 실용주의와 성장을 얘기하면서 기업의 애로는 귓등으로 흘린다. 국민이 아니라 일부 강성 노조의 대선 청구서 처리에 목을 맨다. 믿음을 주지 못하면 기업은 떠나고 민심은 등을 돌린다. 정부와 여당이 친노동정책을 착착 실행시키는 만큼 그 시간도 앞당겨진다.
[미디어펜=문상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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