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FP배터리 외 저가형 포트폴리오 확장…프리미엄 제품까지 '투트랙' 전략
R&D 및 정부 지원책 절실…본격 반등시점 내년까지 점유율 방어 관건
국내 배터리 산업은 글로벌 시장에서 전례 없는 도전과 변화를 맞이하고 있다. 중국의 강력한 자본력과 가격 경쟁력, 미국 IRA 정책과 현지 인력 문제 등 복합적인 위기에 직면한 가운데 국내 3사는 현지 생산 확대, 기술 혁신, 사업 포트폴리오 다변화 등 각자의 특화된 대응 전략으로 난관을 극복하고자 노력 중이다. 본지는 1~2편의 기획을 통해 국내 배터리 업계가 직면한 현실과 기업별 대응 전략을 살펴보고, 구조적 경쟁력 강화를 위한 저가 및 프리미엄 제품군 확대 및 정부 차원의 지원 필요성 그리고 2026년을 위한 성장 모멘텀 확보 방안까지 다각도로 조명해본다. [편집자주]

[미디어펜=박재훈 기자]글로벌 배터리 산업은 치열한 주도권 경쟁이 한창이다. 이차전지 시장을 주도해온 국내 배터리 기업들은 원가 경쟁에서 비교 우위를 보인 중국산 배터리와 정면으로 부딪히며 지금까지의 생존 전략만으로는 더 이상 미래를 담보하기 어려운 상황에 직면했다. 이제는 단순한 방어가 아닌 게임 체인저 개발 등 새로운 전략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업계 안팎에서 커지고 있다.

   
▲ LG에너지솔루션 미국 애리조나공장 조감도./사진=LG에너지솔루션


10일 업계에 따르면 국내 3사(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SK온)는 저가형부터 프리미엄 제품군까지 아우르는 다층적 전략을 마련하며 재도약의 발판을 준비하는 데 속도를 내고 있다. 이는 단순히 시장 점유율 수성을 넘어 글로벌 산업 질서 속에서 새로운 균형점을 찾아야 한다는 점에서 비롯된 흐름이다.

◆커지는 가격 경쟁력 압박…LFP배터리 수요 계속되나

글로벌 전기차 배터리 시장에서 가장 두드러진 변수는 중국산 LFP(리튬, 인산, 철)배터리다. 중국 CATL과 BYD를 중심으로 LFP배터리는 저비용, 중저가 전기차에 최적화된 설루션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최근 완성차 업체들이 비용 절감을 최우선 과제로 삼으면서 LFP배터리 수요의 폭발적 증가가 이어지는 모양새다.

이 같은 흐름은 국내 배터리 기업들에게 뼈아픈 도전이 되고 있다. 전통적으로 삼원계(NCM·NCMA) 기반의 배터리 기술을 강점으로 해온 국내 3사는 에너지 밀도와 효율성 면에서는 여전히 앞서 있다. 하지만 가격 격차를 메우지 못하면 글로벌 전기차 대중화 흐름에서 소외될 수 있다는 우려가 짙다. 따라서 LFP배터리 분야 진출 확대와 더불어 원가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는 저가형 포트폴리오 전략은 사실상 필수 조건으로 부상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들은 “LFP만으로는 중국 기업을 따라잡기 어렵다”며 “나트륨이온 배터리 등 새로운 저가형 배터리 기술 확보가 병행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실제로 글로벌 시장에서는 나트륨이온 배터리가 LFP배터리의 뒤를 이어 새로운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국내 3사 역시 최근 협업과 투자 확대를 통해 저가형 대체 케미스트리에 대한 대응을 시작했다.

해당 과정에서 주목되는 것은 기술과 원가 외에도 공급망 안정성이다. 원재료 확보 경쟁이 치열해지는 상황에서 특정 금속 의존도를 낮추는 저가형 배터리 라인업은 단순한 가격 전략을 넘어 장기적 지속 가능성을 담보하는 ‘보험’ 역할을 할 수 있다.

◆저가형과 함께 양익으로…프리미엄 전략 병행 필요성

반면 무조건적인 저가형 전환은 오히려 K-배터리만의 정체성을 약화할 수 있다는 지적도 존재한다. 여전히 글로벌 완성차 기업들 상당수는 고급형 전기차 시장에 주력하고 있으며 여기서 요구되는 배터리는 안정성과 고에너지 밀도를 동시에 만족할 수 있는 프리미엄 설루션이다.

업계에서는 “국내 배터리의 경쟁력은 단순한 가격이 아니라 기술력”이라며 “고성능 전고체 배터리 등 차세대 프리미엄 제품 개발을 지속해야만 한다”고 강조한다. 특히 전고체배터리의 경우 에너지 밀도와 안전성에서 획기적 혁신을 가져올 수 있어 글로벌 시장의 ‘게임체인저’로 이미 꼽히고 있다.

따라서 저가형 확대와 동시에 프리미엄 기술 투자를 병행하는 ‘투트랙 전략’은 선택이 아닌 필수로 자리 잡고 있다.

정부도 이에 대한 필요성에 공감해 지원에 나선다. 지난 5월 정부는 2028년까지 고분자계, 황화물계, 산화물계 등 차세대 전고체 배터리 상용화에 총 1824억 원을 투입한다고 밝혔다.

◆중국과 한국의 이차전지 경쟁…정책적 지원 절실함

국내 업계의 반등에 있어 가장 큰 문제는 기업들의 재정적·인적 투자 여력만으로는 중국과 대등한 경쟁을 펼치기 어렵다는 점이다. CATL이 앞세운 대규모 R&D(연구개발) 투자는 이미 국가적 차원의 지원과 맞물려 있으며 한국과는 규모 자체가 다르다.

업계 안팎에서는 “정부 차원의 전략적 지원 강화 없이는 한국 배터리의 경쟁력 격차 해소가 불가능하다”는 지적이 끊임없이 제기된다. 특히 연구개발 투자 세제 혜택 확대, 인력 양성 프로그램 강화, 공급망 안정화 정책 등 다방면의 지원이 동시에 추진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미국과 유럽에서 배터리 자급률 강화를 위한 지원책이 쏟아지는 가운데 한국 역시 국가 산업의 핵심 축으로서 배터리를 바라보고 장기적 안목의 정책을 세워야 한다는 주장이다.

실제 정부는 최근 5년 간 이차전지 분야에 정책금융 38조 원 이상의 예산을 책정하고 지원하고 있다. 이른바 한국형 IRA를 만든다는 방침이다. 세액 공제, R&D 지원, 특허 심사 단축 등이 이에 포함된다. 하지만 주요 배터리 기업들에 대한 대규모 직접 현금 보조금은 없는 실정이다.

   
▲ 베이징 국제 오토모티즈 전시회에 설치된 CATL 부스./사진=로이터

중국의 경우 2009년 이후 전기차와 배터리 산업에 300조 원에 달하는 대규모 보조금과 세제 감면, 인프라 투자, R&D 프로그램 등을 집중 투자하고 있다.

글로벌 1,2위를 차지하고 있는 CATL, BYD 등 대표 기업에는 설립 초기부터 현금 보조금, 연구개발 특별자금, 인프라 공동구축 등 직접 지원이 이뤄지고 있다. 정부 주도하의 기업 경쟁력 육성에서부터 규모가 크게 뒤쳐진다는 평가다.

현재 국내 업계가 대외적인 환경과 캐즘(수요정체현상)으로 인해 경영 난항을 겪는 만큼 더욱 적극적인 지원책이 필요하다. 

한편 전문가들은 2026년을 글로벌 전기차 시장의 새로운 분기점으로 보고 있다. 2026년은 지금까지의 보조금 의존적 성장에서 벗어나 본격적인 수익성 구조가 정립되는 시점으로 평가된다.

이에 따라 올해 하반기에는 국내 기업들이 실적 방어에 성공하는 것이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단기적으로 시장 신뢰를 유지하면서 동시에 중장기적 성장 로드맵을 구체화하지 못한다면 2026년 반등의 기회를 선점하기 어려울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하반기에는 계절적 성수기 및 신차 효과가 맞물리면서 출하량이 늘어날 전망으로 국내 3사의 공장 가동률이 올라갈 것으로 보인다. 북미 시장의 현지 공장을 중심으로 생산 및 출하량 확대는 당장의 실적 개선은 물론 캐즘 종료 시점의 반등의 초석이 될 전망이다.

업계 관계자는 “올해를 버티지 못하면 내년과 내후년의 기회는 없다”며 “2025년은 단순한 과도기가 아니라 판을 다시 짜는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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