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성준 기자] 인천공항공사가 법원의 임대료 인하 강제조정을 거부하면서, 면세점 업계는 ‘소송’과 ‘철수’라는 극단의 기로에 몰렸다. 막대한 위약금과 재입찰 불이익까지 짊어져야 하는 만큼, 이번 갈등은 단기간 해소되기 어려운 장기전 양상으로 흘러갈 공산이 크다.
|
 |
|
▲ 인천국제공항 제2터미널 내 신라면세점과 신세계면세점./사진=미디어펜 김성준 기자 |
10일 업계에 따르면 인천지방법원은 지난 5일 공사와 신라면세점 측에 “인천공항공사가 신라면세점의 인천공항 면세점 임대료를 25% 인하하라”는 강제조정안을 송달했다. 신라면세점과 비슷한 시기 임대료 조정 신청을 한 신세계면세점에 대해서도 조만간 비슷한 조정안이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앞서 신라·신세계 면세점은 운영 적자 등을 이유로 공항 면세점 임대료를 40% 인하해 달라며 법원에 조정신청을 냈다. 실제로 지난 2분기 신라면세점은 113억 원, 신세계면세점은 15억 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두 면세점은 면세업 불황과 인천공항 사업장 수익성 악화 등 영향으로 지난해 3분기부터 줄곧 적자 상태에 빠져 있다. 하지만 공사 측이 조정 기일에 불참하면서 합의는 불발됐고, 결국 법원이 강제조정 결정을 내렸다.
법원에서 임대료 조정 필요성을 인정하며 면세점의 손을 들어줬지만, 정작 신라·신세계 면세점은 표정을 풀지 못하고 있다. 공사 측이 강제조정을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법원의 강제조정 결정에는 법적 구속력이 없다. 공사 측이 이의제기를 할 경우 조정안은 무효화되고 본안 소송을 통해 다퉈야 한다. 소송이 상고심까지 이어지면 통상 2~3년 이상의 시간이 소요되고, 소송 비용은 물론 임대료 부담도 계속 짊어져야 한다. 면세 사업권을 반납하고 인천공항에서 철수하는 선택지도 출혈이 크긴 마찬가지다. 막대한 위약금을 지불해야 할뿐더러, 향후 인천국제공항 면세 사업권 입찰시 정성평가 항목 등에서 감점을 받는 부담이 있다.
신라면세점 관계자는 “아직 공사 측에서 법원의 강제조정안에 대한 공식 입장을 밝히지 않아 이를 기다리고 있다”라며 “공사 측 입장을 확인한 후 구체적인 대응 방향을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신세계면세점 관계자도 “법원 결정이 아직 나오지 않았고 공항에서도 이의제기 여부를 결정하는 데 어느 정도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본다”면서 “현재 여러 선택지를 두고 다각적으로 고민하고 있지만, 일단 공사 측 판단을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신라와 신세계 면세점 입장에서는 공사 측이 임대료 조정에 응하는 것이 최선의 결과다. 실제로 싱가포르 창이 공항과 중국 상하이 공항 등 해외 주요 거점 공항은 임대료 감면을 통해 면세점 사업자 부담을 낮춰준 바 있다. 인천국제공항이 이들 공항을 벤치마킹해 ‘객당 임대료’ 방식을 도입한 만큼, 임대료 조정도 가능하다는 시각이다.
하지만 공사 측은 임대료와 관련해 ‘조정 불가’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임대료가 국제경쟁입찰을 통해 결정된 만큼, 당시 입찰에 참가했던 다른 업체들에 대한 형평성 문제가 불거질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만약 공사가 법원 강제조정에 따라 신라면세점 임대료를 25% 인하할 경우, 신라면세점에는 지난 면세 사업권 입찰에서 CDFG와 롯데면세점이 써낸 금액보다 낮은 임대료가 적용된다.
현재로선 신라·신세계의 선택지가 소송과 철수로 좁혀지는 양상이다. 다만 면세업계에서는 두 기업이 당장 어느 한 선택지를 고르기보단 ‘버티기’에 나설 것으로 보고 있다. 먼저 소송의 경우 시간과 비용을 제쳐두고라도 승소 가능성을 낙관하기 어렵다. 두 면세점이 임대료 인하를 요구하는 배경은 객단가 하락에 따른 경영 악화인데, 과거 사드 사태나 코로나19 팬데믹 등과 달리 이는 사업자가 ‘예측할 수 있는’ 변수로 해석될 수 있다. 과도한 임대료는 결국 면세점의 ‘입찰 전략 실패’라는 시각이다.
철수 역시 약 1900억 원에 달하는 위약금을 물어야 할 뿐 아니라, 롯데와 현대 등 경쟁 면세점에 사업장 내줄 수 있어 고르기 어려운 선택지다. 면세업계에서는 적정한 임대료 수준에서라면 현재 여행객수 연동 방식에서도 충분히 수익을 낼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과도한 임대료가 문제일 뿐, ‘한국의 관문’이라는 상징성을 포함해 인천공항 면세 사업장이 지닌 매력이 떨어진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인천공항에서 현대면세점이나 중소면세점 등은 흑자를 거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만약 사업권을 반납한다면 향후 재입찰에서 패널티를 안고 롯데면세점, 현대면세점 등과 다시 경쟁해야 한다.
면세업계 관계자는 “한국면세점협회 자료에 따르면 인천 지역 매출은 약 20% 전후 수준으로 나타나는데, 시내면세점 매출 비중이 약 75% 이상을 차지한다는 것”이라며 “시내면세점 실적 개선으로 공항 면세점에서의 적자를 충분히 만회할 수 있는 만큼, 신라나 신세계가 당장 소송이나 철수 등을 선택할 가능성은 낮다고 본다. 향후 시내면세점 운영 성과에 따라 인천공항 면세점의 향방도 결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미디어펜=김성준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