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배소현 기자] 구글이 거듭 한국의 정밀 지도 반출을 요구하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정부의 보안 요구 사항을 수용하겠다고 밝혔지만, 국내 서버 설치 등 안보와 직결되는 핵심 조건들에 대해선 사실상 여전히 거부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업계를 중심으로는 한국 안보와 미래 산업 주도권 등이 위협 받을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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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글이 위성 이미지 속 보안 시설을 가림 처리하라는 정부의 요구를 수용한다고 9일 밝혔다./사진=연합뉴스 제공 |
12일 업계에 따르면 구글은 최근 서울 구글 스타트업 캠퍼스에서 지도 서비스 기자간담회를 열고 한국의 정밀지도 반출을 요구하며 '보안 시설을 가림(블러) 처리하라'는 정부의 요구를 수용한다고 밝혔다.
크리스 터너 구글 대외협력 정책 지식 및 정보 부사장은 기자간담회에서 "구글은 지도 데이터 반출 신청과 관련, 그간 제기됐던 우려 등을 해소하기 위해 한국 정부와 협력을 강화한다"며 "위성 이미지 속 보안 시설을 블러 처리하는 것에 더해 한국 영역의 좌표 정보를 구글 지도의 국내외 이용자들에게 보이지 않도록 조치하라는 한국 정부의 요구 사항을 수용하겠다"고 말했다.
앞서 구글은 지난 2011년과 2016년에도 두 차례에 걸쳐 정밀 지도 반출을 요청한 바 있다. 당시 정부는 보안 시설 정보가 담긴 데이터를 해외 데이터센터(서버)에 둘 시 정보 유출 등의 문제가 있을 수 있다며 이를 불허했다. 한국은 '1대 2만5000' 축척보다 자세한 고정밀 지도는 군사나 보안상의 이유로 해외 반출을 금지하고 있다.
정부는 2016년 '국내에 서버를 두고 고정밀 지도 데이터를 활용하라'는 방안을 제시했지만, 구글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후 구글은 지난 2월에도 '1 대 5000' 축척의 정밀 지도를 해외에 있는 구글 서버로 반출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했으며 이 같은 요구는 계속되고 있다.
구글은 이번 기자간담회에서도 한국 내에 서버를 설치하는 것은 수용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터너 부사장은 이 이유에 대해선 "해외에서 한국 여행을 계획하는 사용자를 포함해 동시에 수백만 건의 요청을 실시간으로 처리하기 위해서는 전 세계에 분산된 데이터센터를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부는 오는 11월 11일 구글의 요청을 받아들일지 논의하는 협의체를 구성하기로 한 상황이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들어선 이후 미국의 통상 압박이 거세진 상황 속에서 정밀 지도 국외 반출과 관련한 중장기적 대응전략을 새로 짜려는 것으로 풀이된다.
◆ 업계선 우려 목소리↑… "구글 속내 살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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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픽사베이 제공 |
업계에선 사실상 정부가 지도 반출을 전제로 움직임에 나선 것은 아닌지 우려의 목소리가 제기된다. 그러면서 구글이 정밀 지도 반출을 요구하는 핵심은 국내 지도 서비스 사업자가 국내에 서버를 두고 서비스를 하고 있는 것과 달리, 해외 서버에 지도 서비스를 위한 데이터를 저장하려고 하는 것에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구글이 수용한 듯한 조건인 '보안 시설의 블러처리'를 하기 위해선 여전히 해당 시설의 좌표값이 요구되며, 국내에 서버가 없는 상황에서 해당 좌표값이 해외로 반출될 시에는 국가 보안 시설 위치만 고스란히 노출되는 위험성이 제기된다는 것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지도 데이터가 해외 서버로 반출됨과 동시에 한국 정부의 행정력이나 주권은 행사되기 어렵다"며 "이는 즉각 해외 해커 조직 및 테러 단체 등에 의해 악용될 환경에 노출될 수 있는 대목"이라고 말했다.
뿐만 아니라 정밀 지도 국외 반출 요청 결정에 앞서 국내 공간정보산업이 가진 장기적인 부가가치에 더욱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제언도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구글이 정밀 지도 반출을 요청했던 2011년과 2016년 이후로 공간데이터의 중요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며 "자율주행, 디지털 트윈, 스마트시티 등 관련 기술과 산업이 고도화됨에 따라 공간데이터의 파급효과와 부가가치도 한층 증대된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공간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GPS(위치정보시스템) 관련 기기, AR(증강현실), 드론, 로보틱스 등 산업의 부가가치율은 25.49%로 전체 산업 평균인 24.33%에 비해 높은 수준인 것으로 확인됐다.
또 글로벌 시장조사 기관 그랜드뷰리서치는 글로벌 디지털 트윈 시장 규모를 2023년 기준 약 167억5000만 달러(한화 약 23조 원) 수준으로 내다봤다. 특히 오는 2030년까지는 연평균 35.7%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 가운데 구글이 자사 지도 서비스인 '구글 맵'을 사실상 디지털 트윈화하려는 움직임도 보이고 있는 만큼 업계는 정밀 지도 반출 요청의 저의 역시 이 연장선 상에서 짚어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구글은 지난 2019년 공간을 카메라에 비춘 화면상에서 길 안내를 제공하는 AR 내비게이션 '라이브 뷰' 기능을 출시했다. 또 새롭게 도입한 '이머시브 뷰' 기능은 구글 맵 상에서 세계 주요 도시의 인도, 차로, 건물은 물론 공항, 기차역 등 주요 실내 시설을 3D 모델로 시각화하고 과거 추세를 바탕으로 특정 장소의 미래 모습을 보여준다.
이후 업데이트 된 '이머시브 뷰 포 루트' 기능은 교통 체증과 예상 날씨 등이 반영된 출발지부터 목적지까지의 모습을 시뮬레이션 게임처럼 보여준다. 구글은 작년 7월 올림픽을 맞아 지도 앱에서 파리 랜드마크의 위치를 검색하면 해당 건물의 18세기 모습 등을 시각화하고 상호작용할 수 있는 AR 경험 기능을 선보이기도 했다. 이는 모두 필수가 아닌 오락에 가까운 기능이다.
업계는 한국의 미래 먹거리가 될 수 있는 산업들의 주도권을 구글에 넘겨선 안된다고 경고한다.
한 업계 관계자는 "무엇보다 지도·공간 데이터는 사회 운영과 국가 안보를 위한 기반 인프라"라며 "공간데이터의 중요성은 최근 화두가 된 소버린AI, 즉 AI 주권 이상으로 중요해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미디어펜=배소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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