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이용현 기자]최근 박상진 신임 산업은행 회장이 HMM 매각에 긍정적인 태도를 보이며, 그동안 매번 좌초됐던 회사의 매각 가능성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다만 이해관계자들의 시각차가 커 매각이 순탄치 않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12일 업계에 따르면 해양수산부는 국내 해운산업의 안정성과 영속성을 내세우며 매각에 소극적인 입장을 고수하고 있고, 정부는 부산 이전이라는 별도 정책과제를 추진하며 사실상 매각을 늦추려는 신호를 보내고 있다. 여기에 해운협회가 유력한 인수자인 포스코를 정면으로 반대하면서 향후 구도는 더욱 복잡하게 꼬이는 모양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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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MM 컨테이너선./사진=HMM 제공 |
◆ 이해관계자 입장 엇갈리는 HMM 매각
지난 11일 이재명 대통령은 박상진 신임 한국산업은행 회장에 대한 임명안을 재가한 바 있다. 금융위원회가 9일 박 전 산은 준법감시인을 임명 제청함에 따른 것이다.
이에 따라 지난 3개월간 공석이었던 자리가 채워지면서 산은의 HMM 매각 추진 역시 속도를 낼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업계에서 제기된다. 박상진 회장은 “HMM의 민영화가 필요해진 시점으로 매각에 속도를 낸다는 방침”이라고 말한 바 있다. 현재 산은은 HMM의 지분 36.02%를 쥔 최대주주로 명실상부 매각의 키를 쥐고 있다.
다만 35.67%의 지분을 갖고 있는 한국해양진흥공사는 지분 매각에 소극적이라는 평가다. 당초 산업은행은 국민의 세금이 투입된 만큼 지분 매각을 통해 투자금을 회수하는 데 방점을 찍어왔으나, 이에 반해 한국해양진흥공사는 해운산업의 지속가능성을 중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전재수 해양수산부 장관은 최근 포스코그룹의 HMM 인수 가능성에 대해 “HMM 지배구조 문제는 단순히 하나의 해운선사 매각 문제가 아니다”라며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국적선사로서 지배구조 문제를 봐야 한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HMM 매각을 둘러싼 이 같은 시각차가 단순한 금융 논리를 넘어 국가 기간산업 관리 문제와 직결돼 있다는 분석을 내놓는다. 이재명 대통령이 후보 시절부터 공약으로 내세운 HMM 본사의 부산 이전 역시 이러한 맥락에서 추진되는 사안이다.
해수부가 매각에 소극적인 태도를 고수하는 배경에도 이 같은 정책 기조가 자리하고 있다. 정부가 해운산업의 거점을 부산으로 집중하려는 전략을 펴는 상황에서 섣부른 매각은 신중해야 한다는 신호를 업계에 보내고 있는 셈이다.
◆포스코의 인수 검토… 해운업계는 반발
이러한 움직임 속 포스코는 산은의 매각 의사에 발맞춰 인수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철강 원자재 해상 운송에서 HMM과의 시너지가 크기 때문이다. 특히 HMM은 5조6000억 원을 투자해 원자재 운반에 특화된 벌크선을 2030년까지 110척 규모로 확대할 방침이다.
현재 HMM 매출의 80% 이상이 컨테이너선에서 발생하지만 벌크선 비중이 늘어나면, 포스코는 안정적인 원료 수송망을 확보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글로벌 물류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다는 것이 업계의 중론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포스코와 HMM이 당장의 시너지 효과는 적을 수 있어도 중장기적인 관점에서는 벌크 부문 등 일부 사업에서 투자 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에 더해 매각이 본격화될 경우 포스코의 단독 참여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한진이나 하림 등도 잠재 후보군으로 거론되지만, 한진은 최근 아시아나항공과의 합병 과정에서 재무적 부담이 커진 상황이라 추가 투자 여력이 부족하다는 평가가 뒤따른다. 하림 역시 과거 우선협상대상자에 선정된 전례가 있으나 이후 별다른 구체적 움직임을 보이지 않는 것으로 확인됐다.
그러나 이 역시 무풍지대는 아니다. 해운협회가 포스코의 인수를 “해운 주권 침해”라며 정면으로 반발하면서다. 조선·철강 분야와 긴밀히 연결된 포스코가 해운사 지분을 보유할 경우 특정 산업 논리에 종속돼 해운산업의 독립성이 훼손될 수 있다는 이유다.
실제 지난 11일 해운협회는 “철강산업을 주력으로 하는 포스코에 HMM이 편입될 경우 자칫 해운 전문기업에 대한 투자보다는 주력 산업의 보조 기업으로 전락할 수 있는 위험이 있다”며 “철강산업이 어려워질 경우 해운재건 5개년 계획에 의해 정부와 업계가 어렵게 회생시킨 HMM이 희생될 수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포스코의 경우 인수 시 철강 원자재 수송 효율화, 글로벌 물류 경쟁력 강화, 해상 물류 안정성 확보 등 긍정적 효과들이 예상된다. 대규모 원자재를 안정적으로 수송할 수 있는 체계를 확보하면 생산·조달·운송의 전 과정을 통합 관리할 수 있어 그룹 차원의 비용 절감과 시너지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해운업계는 고객사인 포스코가 HMM을 인수할 경우 산업의 독립성이 침해돼 산업 생태계의 ‘균형’이 무너질 것이라고 주장한다. 반면 공정위가 제 역할을 하고 가격 공정성을 유지한다면 포스코가 인수하더라도 큰 문제는 없다는 주장도 있다.
해운업계가 주장하는 논리의 경우 과거 거론됐던 현대자동차그룹이 인수를 하더라도 똑같은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반면 하림이나 동원 같은 중견 그룹이 인수하는 경우 그룹 규모가 크지 않다고 반발했던 점을 감안하면 애초에 산업은행 품을 떠나길 바라지 않는다고 봐야 한다는 게 관계자의 설명이다.
업계 내 한 관계자는 “궁극적으로 HMM 매각은 ‘속도’가 아닌 ‘합의’가 관건”이라며 “빠르게 매각 추진해 자본시장에서 불확실성을 해소해야 한다는 금융 논리도 일리가 있지만, 장기적 관점에서 국내 해운산업의 지속가능성을 지키려면 충분한 협의와 조율이 선행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미디어펜=이용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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