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평균 14배 사망률… 어선원안전법 시행 원년
“안전벨트처럼 구명조끼 착용 정착돼야” 단속 강화 예고
사고 예방 넘어 건강 관리까지… 보건서비스 사각지대 해소
HDPE·전기·수소 선박으로 친환경 해양·안전 미래 모색
[미디어펜=구태경 기자] 가을철 성어기를 맞아 어선들이 분주하게 출항 준비를 하는 목포 북항 부두 앞, 어선 사이로 어선원안전감독관이 오르내리며 구명조끼와 소화기를 점검했다. 종이 위 규정으로만 보던 어선안전조업법이 현장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 어선안전감독관이 어선에 부착돼있는 안전 관련 스티커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사진=미디어펜 구태경 기자


2025년은 어선원의 안전·보건 환경 개선을 위한 ‘어선안전조업법’ 전면 시행의 첫해다. 산업 평균보다 14배 높은 사망률을 기록해온 어선원 안전 문제는 이제 법 시행 원년을 맞아 제도적 실효성과 현장 체감도를 동시에 시험받고 있다.

최근 5년간(2020~2024년) 어선어업에서 발생한 사망·실종 사고는 연평균 93.4건으로, 전체 산업 평균보다 약 14배 높다. 매년 약 2000건의 어선사고가 발생하며 100명 안팎의 어선원이 목숨을 잃는다.

육상 산업재해와 달리 바다 위 사고는 사회적 관심에서도 소외돼 왔다. 해양수산부 직원은 “어선원 안전은 ‘잊힌 재해’로 남아 있다”며 “법 시행 원년인 올해는 현장에서 안전이 제대로 작동하는지 점검하는 것이 핵심 과제”라고 말했다.

   
▲ 어선을 점검하고 있는 감독관들./사진=미디어펜 구태경 기자


북항 부두 현장에서 본 어선 안전의 최전선
11일 목포 북항 부두에서는 어선원안전감독관이 조업을 앞둔 어선을 점검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감독관은 △관리감독자 선임 △위험성평가 시행 여부 △안전보건표지 부착 △매뉴얼 비치 여부를 꼼꼼히 확인하며, 구명조끼·소화기·작업 공간 위생까지 점검했다.

선장과 선원과의 대화도 이어졌다. “안전수칙은 평소 어떻게 지키고 있나”, “조업 중 불편한 점은 없나”를 묻고 즉시 개선 가능한 사항은 권고했다. 올해까지 고위험군 어선 1000여 척을 대상으로 진행된 ‘위험성평가 특화점검’에도 동일한 방식이 적용됐다. 중대재해 발생 시 현장 조사와 기술검토서 작성으로 어업인의 권익 보호까지 담당한다.

   
▲ 정부가 보급하고 있는 팽창식 구명조끼 종류./사진=미디어펜 구태경 기자


구명조끼 보급 정책 호평... 선원 안전 의식 개선 필요
부두에서 인근에 위치한 수협 어선안전조업국 목포지사로 이동해 더 자세한 현장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정재덕 어선원안전감독관은 “입항 직후 어획물을 분배하고 위판 준비를 하는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위험을 줄이기 위해 고위험 업종으로 분류하고 점검한다”며 실제 점검 과정을 상세히 설명했다.

그는 컨베이어 벨트에서 부딪힘, 접촉, 미끄럼 등 위험 요소를 선원들이 인지하고 있는지 확인하고, 교육이 충분히 시행됐는지도 평가한다고 했다.

특히 팽창식 구명조끼는 이번 법 시행 이후 적극 보급되고 있다. 정부는 한시적으로 팽창식 구명조끼를 지원하며, 10월 19일부터는 2인 이하 선박에도 의무화된다. 정 감독관은 “올해 안에 전국 어선원의 100% 구명조끼 보급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현재까지 높은 참여율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제주 성산, 전남 양식장 등에서는 조합과 지자체가 자발적으로 자부담을 지원하며 보급을 완료한 상태다. 그럼에도 정 감독관은 “선원들의 안전 의식 개선이 최우선”이라며 “현재는 계도 기간이지만, 법 시행일부터는 단속과 과태료 부과를 통해 구명조끼 착용을 정착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팽창식 구명조끼 보급 사업은 정책적으로 호평을 받고 있지만, 선원 안전 확보와 더불어 안전 의식 제고와 홍보가 동시에 필요한 시점임을 보여준다.

   
▲ 한국해양교통안전공단 직원이 선질 강도를 검사하고 있다./사진=미디어펜 구태경 기자


사고 예방 넘어 건강 관리까지... 사고 예방 교육과 검사 서비스도
한국해양교통안전공단은 챗봇 기반 위험성 평가 플랫폼과 매뉴얼 고도화 등 지원 사업으로 자율 안전·보건 관리 체계를 구축하도록 돕고 있다. 

장기간 해상 근무로 인해 건강검진이나 치료가 어려운 어선원은 전체의 16.2%에 달한다. 외국인 선원 증가로 맞춤형 보건 관리 체계가 시급하다. 이에 공단은 대한결핵협회와 협력해 전국 15개 지역에서 총 25회 건강검진을 실시한다. 내국인 1000명과 외국인 1160명을 포함해 총 2160명이 대상이다.

또한 공단은 VR 기반 어선사고 예방 교육 콘텐츠를 개발, 기관실·갑판·조리실 사고 유형을 체험형으로 제공하고 있다. 한국어·영어·인도네시아어·베트남어로 제공돼 외국인 선원 교육에도 활용된다. 서남권 스마트선박안전지원센터에서는 검사 완료 후 당일 증서 발급과 ECIS 전자증서 활용으로 어업인의 시간과 비용 부담을 줄였다.

   
▲ 고밀도 폴리에틸렌 소재로 제조되고 있는 친환경 선박./사진=미디어펜 구태경 기자


HDPE·전기·수소 선박로 친환경 해양 미래 모색
공단은 국내 최초 HDPE(고밀도 폴리에틸렌) 선박 용접 교육과 시제선 건조를 통해 친환경 선박 상용화 기반 마련에도 힘을 쏟고 있다. HDPE 선박은 재활용 가능하고 내구성이 뛰어나 FRP를 대체할 친환경 선질로 주목받는다. 전기추진·수소연료전지 선박 검사를 통해 온실가스 배출 없는 해상 운항 실증도 지원한다. 민간 조선사와 협력해 배터리·연료전지 추진 시스템 개발과 형식승인 시험을 진행하며, 국내 친환경 해양모빌리티 실현을 앞당기고 있다.

현장의 감독관은 행정명령만 내릴 수 있을 뿐, 불법 행위가 적발돼도 직접 수사 전환 권한은 없다. 현재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는 감독관에게 특별사법경찰권을 부여하는 ‘어선안전조업법 개정안’이 계류 중이다. 통과되면 행정조사 과정에서 즉시 수사 전환이 가능해져 제도 실효성이 크게 강화된다. 

하지만 고령 근로자와 외국인 선원이 많은 현실에서 법적 처벌만으로 안전·보건 체계를 구축하기 어렵다는 의견도 있다. 

법 시행 원년 목포 현장은 단순한 규정 확인이 아니라, 어선원 생명을 지키는 현장 행정의 중요성을 확인할 수 있는 곳이었다. 안전·보건·친환경 선박이라는 세 가지 축이 맞물리면서 바다는 단순한 조업터가 아닌 지속가능한 해양 생태계와 산업, 지역 사회의 연결점으로 거듭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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