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박준모 기자]최근 산업계 전반에 걸쳐 합병 움직임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글로벌 경영 환경의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합병을 통해 시너지를 극대화하고, 경영 효율성을 높여 위기 대응력을 강화하려는 전략으로 해석된다.
과거 분할을 통해 특정 사업 부문을 독립해 상장하는 방식과는 상반되는 행보다. 최근에는 분산됐던 역량을 한데 모아 경쟁력을 강화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는 판단이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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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D현대 GRC 전경./사진=HD현대 제공 |
16일 업계에 따르면 HD현대 건설기계 부문을 담당하고 있는 HD현대건설기계와 HD현대인프라코어는 이날 임시 주주총회를 열고 합병에 대한 안건을 다룬다. 안건이 통과되면 두 회사는 하나로 합쳐 내년 1월 1일에 HD건설기계로 새롭게 출범한다.
합병 안건은 무난하게 통과될 것으로 예상된다. 건설기계 부문 지주사인 HD현대사이트솔루션이 HD현대건설기계 지분 36.94%, HD현대인프라코어 지분 34.18%를 각각 보유하고 있어 찬성 표가 충분하다는 평가다.
HD현대는 이에 앞서 조선 부문에서도 합병을 단행했다. HD현대중공업과 HD현대미포는 지난달 이사회를 통해 양사 간 합병 안건을 의결했다. 다음 달 임시 주주총회를 개최하고, 기업결합 심사를 거쳐 오는 12월 통합 HD현대중공업으로 새롭게 출발한다.
◆HD현대·SK 등 대기업 중심 합병 추진
SK그룹 내에서도 합병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은 지난해 SK E&S와 합병을 완료해 아시아·태평양 지역 민간 최대 종합 에너지 회사로 도약했다. 이를 통해 석유·가스·전력 등 에너지 전반을 아우르는 통합 포트폴리오를 구축하며 사업 경쟁력을 한층 강화했다.
올해는 SK온과 SK엔무브가 합병을 추진한다. 이사회에서 안건은 의결됐으며, 오는 11월 1일 합병법인이 공식 출범하게 된다.
이처럼 산업계 내에서 합병이 활발하게 추진되고 있는 것은 글로벌 경기 둔화와 관세 리스크 확대 등으로 불확실한 경영환경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경쟁력을 강화하려는 전략적 판단이다.
HD현대는 조선 부문에서 합병을 통해 마스가(MASGA) 프로젝트에 효과적으로 대응한다는 방침이다. HD현대중공업의 건조 경쟁력과 HD현대미포조선의 도크와 설비를 결합해 미국의 함정 시장까지 진출하겠다는 목표다.
제품 포트폴리오를 구성하고, 해외 생산거점은 공동으로 활용해 운영 효율성을 높인다는 구상이다.
SK그룹은 SK이노베이션과 E&S의 합병에서는 시너지를, SK온과 SK엔무부의 합병에서는 재무적 불안전성을 극복하고 안정적인 성장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 목표다. 특히 SK엔무브의 안정적인 현금 창출능력은 SK온의 대규모 투자가 지속되는 상황에서 자금 부담을 완화하고, 유동성 확보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합병을 통한 효과는 한화그룹을 통해서도 드러났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지난 2022년 한화디펜스와 한화방산을 합병했다. 방산 부문을 모아 시너지를 극대화하기 위한 전략이었는데 연구개발부터 생산, 마케팅까지 일원화하며 경쟁력을 크게 끌어올렸다. 글로벌 시장에서도 통합 브랜드 파워를 통해 해외 수주까지 덩달아 증가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통합법인 출범 첫해인 2022년 매출 6조5396억원, 영업이익 3772억 원을 기록했는데 지난해에는 매출 11조2401억원, 영업이익 1조7319억 원까지 성장했다.
재계 관계자는 “합병은 규모의 경제 실현은 물론 재무 구조 개선 차원에서도 유효한 수단”이라며 “단기간의 효과보다는 장기적인 안목을 가지고 추진되는 경향이 강하다”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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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여의도./사진=미디어펜 김상문 기자 |
◆경영 불확실성에는 분할보다는 합병이 주효
이 같은 대기업들의 합병은 2020년대 초반까지 나타났던 기업 분할 트렌드와는 대조적인 흐름이다.
2020년 초반까지는 사업 부문을 물적분할해 상장하면서 기업 가치를 끌어올리는 전략이 주를 이뤘다. 이는 자본금 확보라는 이유도 있다. 대표적으로 LG에너지솔루션이 꼽힌다. LG화학은 2020년 배터리 사업부를 분리해 LG에너지솔루션을 만들었고, 2022년 1월 IPO(기업공개)에 성공했다.
지난 2021년에는 SK이노베이션이 이차전지 소재 사업을 SK아이이테크놀로지(SKIET)로 분할해 상장한 바 있다. SK케미칼은 2018년 백신 등 바이오 사업부문을 분리해 SK바이오사이언스로 물적분할하기도 했다.
기업들은 분할을 통해 특정 사업 부문의 성장 가능성을 부각했고, 상장을 통해 자금을 조달하면서 대규모 투자에도 활용했다. 모 회사와는 별도로 사업을 전개할 수 있어 빠른 시장 대응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분할 전략이 당시에는 주효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불확실한 글로벌 경제 환경과 고금리 기조 속에서 중복된 사업 구조를 통합하고, 자원을 효율적으로 재배치하려는 움직임이 늘어나면서 합병을 통한 내실 강화 전략에 무게 중심이 실리고 있다.
또 분할 과정에서 중복 상장 논란이 일면서 소액주주들에게 피해를 입힌다는 부정적인 인식이 확산됐다는 점도 기업들에게는 부담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재계 내에서는 앞으로도 합병 움직임이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글로벌 복합 위기 상황 속에서 생존을 위한 체질 개선과 경쟁력 강화를 지속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특히 불필요한 비용을 줄여야 하는데 합병은 중복 비용을 줄일 수 있다는 점도 기업들이 합병을 선택하는 주요 배경으로 작용하고 있다.
또 다른 재계 관계자는 “2020년대 초반에는 기업들의 실적도 워낙 좋았고, 이차전지 사업 등 상승세를 타면서 분할을 추진하는 곳이 많았다”면서 “하지만 최근에는 산업 전반적으로 부진해 역량을 결집하는 합병 쪽으로 흐름이 바뀌고 있다. 향후에는 중견기업 등으로 확산될 수 있다”고 말했다.
[미디어펜=박준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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