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민서 기자] '연기 참 잘하네'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매일 속도전처럼 흘러가는 일일드라마, 그 속에서도 감정 하나 허투루 넘기지 않고 보란 듯 꼭꼭 씹어 내보인다. 끝없는 질문이 만들어낸 산물이자, 30년 세월이 빚은 내공이다.
'베테랑'이란 말이 꼭 어울리는 배우 강경헌. 그는 지난 19일 인기리에 종영한 KBS 2TV 일일드라마 '여왕의 집'에서 강미란 역으로 열연했다.
최근 미디어펜과 만난 강경헌은 "정말 안 끝날 것 같았는데 끝났다. 후련할 줄 알았다. 그런데 끝날 때가 되니 하루 하루가 아쉽더라. 꼭 이별하는 것처럼 허전한 마음이 들었다"고 드라마 종영 소회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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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배우 강경헌. /사진=마스크스튜디오 제공 |
'여왕의 집'은 완벽한 삶이라고 굳게 믿었던 여자가 인생을 송두리째 강탈당한 뒤 벌어지는 인생 탈환 복수극이다. 100부작인 이 작품은 최고 시청률 11.9%를 기록하며 큰 사랑을 받았다.
"작품 인기가 정말 실감이 났어요. 길을 걷다 보면 누가 저를 쫓아와요. 그리고선 '너무 재밌다' 하세요. 소리 지르면서 저를 부르시는 분도 계셨어요. 옆에 오셔선 '잘 보고 있다' 하시더라고요. 더 열심히, 잘 하고 싶은 마음이 들 수밖에 없었어요.(웃음)"
강경헌은 '여왕의 집' 악역의 한 축을 담당했다. YL그룹 상무이자, 강재인(함은정 분)의 고모인 강미란은 가족과 회사를 위해서라면 냉정한 선택도 망설이지 않는 인물이다. 과거 사랑했던 남자와 헤어지고, 자신이 낳은 아들마저 오빠 강규철(남경읍 분)의 자식으로 보내야만 했던 아픔을 가지고 있다.
강경헌은 강미란의 끓어오르는 욕망과 욕심을 잘 보여주고자 했다. 그는 "강미란은 조카들에게 쿨하고 친근한 고모였다. 하지만 자신의 아들이 집에서 안 좋은 취급을 받는단 사실을 알고 돌변한다. 아들에게 회사를 물려 주겠다는 다짐까지 하며 안에 쌓여있던 에너지, 모성애가 튀어나온 것"이라며 "욕심 있는 고모이자 사업가로 변화하는 과정이 있었기에 일적으로 부딪히게 될 땐 불같은 느낌으로 보이길 바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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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배우 강경헌. /사진=마스크스튜디오 제공 |
하지만 강미란을 끝까지 미워할 순 없다. 그는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바로잡으려 노력하는 '갱생 가능한 악역'이었다. 종반에는 조카 강재인의 든든한 조력자가 돼 속 시원한 전개에 힘을 보탰다.
"어느 작품이나 그렇잖아요. 100회짜리 작품이라도 역할마다 모두의 서사를, 인생을 다 담을 수 없어요. 결국 빈 곳은 배우가 채워 넣어야 해요. 내가, 강미란이 이렇게 행동하는 이유가 타당할 수밖에 없는 이유 100가지를 찾아내야 하는 거죠. 생각해보고, 써보고, 읽어보고."
'여왕의 집' 강미란을 향한 시청자들의 주목도는 회차가 넘어 갈수록 상승세를 탔다. 강미란의 서사가 풀릴수록 역할에 대한 애증과 연민의 후기가 쏟아졌다.
수상할 정도로 찰떡 같은 별명들이 등장한 것은 이러한 관심의 방증이다. 극 중반부까지 조카 강재인과 갈등을 빚고 있을 땐 '고모'와 '쓰레기'를 더한 '고모레기'라는 별명이 강미란의 이름을 대신했다.
아들 강승우(김현욱 분)의 친부인 정오성(김현균 분)과 재회 후 완경 증상을 임신으로 착각한 에피소드가 전파를 탄 뒤엔 '완경 고모'란 별명이 붙었다.
이렇다 보니 '여왕의 집'이 아니라 '고모의 집'이 아니냐는 시청자들의 반응도 흘러나왔다.
강경헌은 "어쩌다 한 번 댓글을 보게 됐는데 재밌더라. 처음엔 별명이 너무 나쁜 의미라 낯설기도 했다. '나를 너무 싫어하네' 싶은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그게 다 저에 대한 관심이지 싶더라. (시청자들의) 관심을 끄는 역할이었구나 싶어서 기분 좋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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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배우 강경헌. /사진=마스크스튜디오 제공 |
정오성과 강미란의 중년 로맨스에도 즉각적인 반응이 터졌다. 사랑 앞에서 달라지는 강미란의 연약하고 허술한 면모가 작품의 또다른 재미로 떠올랐다.
강경헌 역시 이 로맨스가 참 반가웠다고 했다. 그는 "어른들이 저희 중년 멜로를 정말 좋아하시더라. 피부로 느껴졌다"며 "스태프 분들도 우리 로맨스를 두고 '더 가도 좋은데 아쉽다' 하셨다"며 미소를 보였다.
상대 배우 김현균(정오성 역)의 열정적인 연기에 웃음을 참지 못한 적도 많았다. 강경헌은 "김현균과 멜로 연기가 참 재밌었다. 김현균이 연기를 정말 재밌게 한다"며 "그래서 저도 웃기고 싶은 욕구가 올라와 참느라 너무 힘들었다"고 말했다.
'불타는 청춘' 등 예능에서 보여준 그의 사랑스럽고 다정한 성격과도 결이 맞는다. 그는 "다음엔 코미디를 얹은 중년의 로맨틱 코미디(로코) 작품을 해보고 싶다"며 의지를 불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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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배우 강경헌. /사진=마스크스튜디오 제공 |
일일드라마는 전개가 빠르고 다양한 역할이 공존해 배우와 역할이 모두 주목 받기 쉽지 않은 특성이 있다. 하지만 강경헌은 장르의 한계를 넘어 '배우 강경헌'을 시청자들에게 다시금 각인시켰다. 다양한 장르, 새로운 역할 속 그의 모습이 궁금해지는 이유다.
이는 단순히 30년차 배우의 저력으로만 볼 순 없다. 강경헌은 아직도 "현장에 가면 떨리고 긴장된다"고 했다. 다만, 연기에 대한 질문을 멈추지 않을 뿐이다.
"새로운 작품에서 새로운 인물을 만난다는 건 언제나 쉽지 않은 일이에요.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인물을 창조하는 것이기에 확신을 갖기 힘들죠. 그래서 전 아직도 현장에 가면 선생님들께 '이 느낌이 맞나요' 하고 물어봐요. 자연스레 묻고, 의지하고, 조언 받으며 끊임없이 배우는 것 같아요."
[미디어펜=김민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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