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청노조 "원청이 사용자" 주장…법적 해석 충돌
HD현대중공업, 3350개 협력사 ‘도미노 교섭’ 우려

[미디어펜=이용현 기자]HD현대중공업이 올해 임금·단체협약을 노조와 타결하며 한숨을 돌렸으나 또 다른 파업 변수가 등장했다. 이번에는 사내 하청업체 노동조합이 원청을 상대로 직접 교섭을 요구하면서다.

   
▲ HD현대중공업이 건조해 지난 2024년 인도한 LNG운반선./사진=HD현대중공업

26일 업계에 따르면 전국금속노동조합 산하 HD현대중공업 사내하청지회는 ‘원청이 직접 교섭하라’는 문구가 적힌 현수막을 내걸고 삭감된 일당 회복과 임금 인상, 복지 및 고용 안정 보장을 요구하고 있다. 일부 하청업체가 지난 5월부터 임금을 삭감했다는 이유로 회복과 추가 인상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이번 파업에는 울산조선소 내 여러 협력업체 근로자들이 참여하고 있다. 이들은 지난 5월부터 개별 하청업체와 단체교섭을 진행해왔으나 지난 3일 교섭이 결렬되며 집단 행동에 돌입했다. 주요 협력업체로는 태영엔지니어링, 경일기업, 금농산업, 나드마린, 대호기공, 선진기업 등이 포함된다.

하청 노조의 핵심 주장 중 하나는 HD현대중공업이 작업 일정과 방식, 근로시간 등을 사실상 통제하고 있어 ‘사용자성’을 가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업계 시각은 다르다. 법마다 해석은 다를 수 있지만 노조 측이 주장하는 사용자 정의는 현재 법적으로 인정되지 않는다는 이유다.

실제 금속노조는 2017년 HD현대중공업을 상대로 단체교섭 청구 소송을 제기했으나 1·2심 모두 원청의 사용자성을 인정하지 않았다. 현재 이 사건은 대법원에 계류 중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대법원 판결에서 하청 노조가 주장하는 ‘사용자’를 인정하지 않은 상태”라며 “원청에서 직접 교섭에 나설 의무는 없다”고 말했다.

문제는 이번 사안이 최근 정치권에서 논란이 되는 ‘노란봉투법(노조법 2·3조 개정안)’과 맞닿아 있다는 점이다. 

해당 법안은 원청의 사용자성을 폭넓게 인정해 하청노조가 원청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제한, 단체교섭 요구 등을 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노조는 이를 통해 교섭력을 확대할 수 있지만 기업 입장에선 ‘원청 책임을 무한대로 확장시키는 과도한 입법’인 셈이다.

이에 따라 실제 업계에서는 이번 파업 역시 노란봉투법으로 인해 원청에 대한 하청업체의 사용자성 인정 범위가 넓어지면서 노조 측이 원청에 교섭을 요구하게 된 것으로 판단하는 분위기다.

물론 법적으로 ‘사용자’ 개념은 법마다 다르게 해석될 수 있다. 근로기준법은 사업주나 경영담당자, 근로자에 관한 사항을 위임받아 처리하는 자를 사용자로 보며, 주로 임금 지급·근로조건 관리 등 인적 종속 관계를 기준으로 한다. 

반면 노조법은 단체교섭권 보장을 위해 근로계약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근로조건을 실질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지위라면 사용자로 인정한다. 최근 통과된 노란봉투법은 이러한 기준을 법 조문에 반영해 원청 책임을 확대했다. 다만 교섭 범위와 책임 주체가 어디까지인지 불명확한 상황이다.

HD현대중공업이 하청 노조의 교섭 요구를 수용하기 어려운 이유에는 구조적 요인도 있다. 협력업체 수가 3350여 개에 달하고 이 가운데 1차 협력사만 1400여 개에 이른다. 특정 하청과의 교섭에 응하면 다른 협력업체에도 같은 기준을 적용해야 하는 ‘도미노 효과’가 발생할 수 있다.

아울러 업계에서는 노란봉투법이 시행되더라도 교섭 대상과 범위를 명확히 규정하지 않으면 이번 사례처럼 현장에서 혼란이 반복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원청이 사용자로 인정될 경우 수천 개 협력업체와 사실상 무제한 교섭을 해야 하는 상황이 현실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근로기준법상 사용자 개념은 이미 확립돼 있지만, 노란봉투법이 이 범위를 더욱 넓힌 것”이라며 “교섭 책임이 어디까지 미치는지 명확하지 않은 상태에서 원청에 과도한 부담만 전가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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