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선박 점유율 1%, 보복 효과 제한적
한국, 정치 안정성으로 수주 확대 기대
[미디어펜=이용현 기자]오는 14일부터 미국이 중국 선박을 대상으로 ‘항만 진입료’를 부과하기로 하면서 미·중 간 해운 갈등이 본격화하고 있다. 중국 또한 미국 선박에 이에 상응하는 항만요금을 즉각 부과하고 항로 정보 제출 의무 강화 등 맞불에 나섰지만 이러한 글로벌 조선 발주 시장의 흐름은 한국시장에 반사이익을 가져다줄 것으로 전망된다. 

   
▲ 도널드 트럼프(왼쪽)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사진=연합뉴스 제공

13일 해운·조선 분석기관 클락슨에 따르면 지난해까지만 해도 중국 조선소들은 컨테이너선과 탱커류 발주를 독식했지만 올해 들어 대형 선종 위주로 부진을 겪고 있다. 지난 4월 미국 USTR이 중국 선박에 대해 수수료를 부과할 것을 예고하면서다. 이후 실제 중국의 조선 발주량은 지난해 2분기 3800만 톤에서 올해 3분기 1047만 톤으로 급감했다. 불과 1년 새 70% 가까이 줄어든 수치다. 

특히 원유운반선(VLCC)과 LNG운반선의 신규 발주는 지난해 대비 절반 이하로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한국은 같은 기간 413만 톤에서 493만 톤으로 발주량이 증가하며 안정세를 유지했다. 중국의 전 세계 조선 발주 점유율이 지난해 74.5%에서 올해 58.8%로 하락한 반면 한국은 13.3%에서 25.9%로 두 배 가까이 늘었다. 여전히 중국이 절대 규모에서는 세계 1위지만 점유율 격차는 빠르게 좁혀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중국의 대응, 오히려 불안감 키웠다


이 가운데 미국과 중국의 정치적 리스크는 글로벌 선주들이 통상 선박 발주 시 ‘안정성’을 중요한 요소로 고려해왔다는 점에서 국내 조선사에 반사이익을 가져다 줄 것으로 전망된다. USTR은 오는 14일부터 자국에 입항하는 중국 선박에 수수료를 부과하는데, 중국 역시 최근 같은 날부터 자국 항만 당국을 통해 미국 소유·운영·건조 선박에 항만 요금을 부과하겠다고 발표했다. 미국의 정책을 그대로 ‘거울 대응’한 셈이다. 

동시에 외국 선박의 입항 시 항로·화물 정보 제출을 의무화하고 위반 시 입항 제한이나 벌금을 부과할 수 있도록 관련 법규 개정도 추진 중이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이러한 대응이 국제 해운업계의 불안심리를 자극하는 ‘자충수’가 됐다는 평가다. 선박이 어느 나라 자본으로 운용되는지, 또는 어느 조선소에서 건조됐는지에 따라 비용이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이 선주들에게 ‘예측 불가능한 리스크’로 인식된 것이다. 

또한 일각에서는 실제 중국이 미국 선박을 대상으로 수수료를 부과한다 해도 미국 측에는 큰 타격이 없다는 분석도 나온다. 

미국의 국방·안보·외교 전문 분석 매체 ‘War On The Rocks’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세계 해운 시장에서 미국 선박이 차지하는 비중은 1% 남짓에 불과할 뿐 아니라 미국 국적 상선의 전체 운항 톤수 점유율이 0.5~2% 수준에 머물고 있다. 결국 중국이 미국 선박에 항만요금을 부과하더라도 실질적인 보복 효과는 제한적이라는 분석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해운사들이 특수목적법인(SPC)를 이용해 글로벌 리스크를 줄이긴 하지만 정치적 긴장으로 요금이나 통관 절차가 바뀌는 시장은 당연히 꺼려진다”며 “이번 중국의 조치는 실효성보다 상징적 대응 성격이 강하다고 사려된다”고 말했다.

   
▲ HD한국조선해양이 2024년 건조해 인도한 1만 3000TEU급 컨테이너 운반선./사진=HD한국조선해양 제공

한국, 기술·신뢰·정책 3박자 강화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 정부와 조선업계는 이 같은 글로벌 환경 변화에 대응해 경쟁력 제고에 속도를 내고 있다. 그 일환으로 정부는 지난 4월 ‘조선 선수금환급보증(RG) 공급 확대방안’을 발표해 중형 조선사의 자금 조달 환경을 개선했다. 그동안 중소형 조선소들은 은행권 심사 기준 강화로 RG 발급이 어려웠지만, 산업은행과 무역보험공사를 통해 보증 한도를 확대한 것이다.

산업통상자원부 또한 올해 조선·해양 R&D 예산을 전년 대비 40% 늘려 친환경 추진선, 스마트조선소, 자율운항 기술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아울러 대형 컨테이너, LNG선 수주 시장을 한국 3사가 과점하고 있는 점도 국내 조선사들의 신뢰성을 강화할 전망이다. 영국의 조선·해운시황 분석기관 클락슨리서치에 따르면 한국 조선사는 올해 9월 135만 CGT(33척·39%)를 수주했고, 중국은 142만 CGT(69척·40%)를 수주했다.

척당 CGT는 한국이 4만1000CGT, 중국이 2만1000CGT로 집계됐다. 한국이 중국보다 고부가가치 선박을 2배 많게 수주했다는 뜻이다. 반면 중국은 여전히 14만㎥급 이하 중형 LNG선 위주로 수주가 집중돼 있다.

이는 한국 조선업의 ‘3대 경쟁력’으로 꼽히는 △납기 준수율 △품질 신뢰도 △정치적 안정성이 대형 선박을 발주하는 글로벌 선주들에게 매력적인 요소로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라는 평가다. 이에 따라 조선업계는 이번 미·중 갈등이 단기적 수주 유불리를 넘어 한국 조선소의 브랜드 신뢰도를 높이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한 조선업 관계자는 “중국의 대응이 발주 리스크를 높이면서 한국은 기술력뿐 아니라 ‘안전한 선택지’로 인식되고 있다”며 “LNG·암모니아·수소 등 차세대 연료선 수요가 본격화되면 한국 조선업이 시장 주도권을 가져올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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