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연지 기자]미·중 무역갈등의 파장이 한국 자동차 업계로 번지고 있다. 미국 정부가 외국산 자동차 운반선에 부과하는 입항 수수료를 대폭 올리면서 이미 높은 관세 부담에 시달리던 국내 완성차 업계가 물류비 상승이라는 이중고에 직면했다. 업계에서는 이번 조치로 한국 자동차의 가격 경쟁력 약화와 수익성 악화가 불가피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13일 업계에 따르면 미국무역대표부(USTR)는 지난 10일(현지시간) 외국에서 건조한 자동차 운반선의 입항 수수료를 톤(net ton)당 46달러로 설정한다고 발표했다. 입항 수수료는 오는 14일부터 적용된다.
앞서 USTR은 지난 4월 외국산 자동차 운반선에 CEU(차 한 대를 운반할 수 있는 공간 단위)당 150달러를 부과하겠다고 밝혔다가 6월 톤당 14달러로 조정한 바 있다. 이번에 톤당 46달러로 다시 인상하면서 사실상 3배 이상 급등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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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쪽)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오른쪽)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사진=연합뉴스 제 |
다만 USTR은 자동차 운반선에 입항 수수료를 부과하는 횟수를 연간 5회로 제한했다. 한국 정부가 제출한 의견서에서 자동차 운반선이 연간 여러 차례 입항하는 점을 들어 부과 횟수에 상한을 설정해달라고 요청한 결과다. 당초 정부는 입항 수수료를 중국으로 제한해 달라는 의견도 냈으나 이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번 조치는 중국 선박에 대한 보복으로 시작됐지만 모든 외국 선박에 동일하게 적용되면서 한국 업계도 타격을 입게 됐다. 연간 5회 제한으로 중국 대비 일부 예외를 인정받았지만, 미국 노선에 투입되는 선박 대부분이 국외 건조선인 데다 완성차 업체들이 미국 수출 차량을 자동차운반선(PCTC)을 통해 운송하고 있어 입항료 인상분이 고스란히 물류비에 반영될 수밖에 없다. 업계는 기존 관세 부담에 더해 상당한 추가 비용이 발생할 것으로 보고 있다.
현대차와 기아는 이미 미국의 25% 관세 부과로 가격 경쟁력이 크게 약화된 상황이다. 일본과 독일 폭스바겐 등 경쟁사 대비 불리한 위치에 놓이면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데 입항료 인상이 추가 타격을 가하는 형국이다. 현대차그룹은 2분기에만 1조6000억 원(현대차 8282억 원·기아 7860억 원)의 관세 피해가 발생했고, 3분기에는 피해 규모가 2조 원 이상으로 더욱 커질 전망이다.
순톤수 1만9322톤인 7000CEU급 선박 기준으로 1회 입항 시 약 89만 달러(약 12억7000만 원)의 수수료가 부과된다. USTR이 한국 정부의 요청을 받아들여 선박당 부과 횟수를 연간 5회로 제한했지만, 선박 한 척당 연간 64억 원의 추가 비용이 발생하는 셈이다. 여기에 선박 보험료 인상, 운송 지연 비용 등 간접비용까지 더해지면 부담은 더욱 커진다.
특히 현대차·기아 차량 운송을 맡고 있는 현대글로비스는 직격탄을 맞을 것으로 보인다. 현대글로비스는 현대차·기아에 2025~2029년 총 6조6699억 원 규모로 5년간 운송 서비스를 제공하기로 한 상태다. 현대글로비스가 운영하는 PCTC 선박 규모를 고려할 때 연간 수백억 원대의 추가 비용이 발생할 것으로 추산된다. 이는 결국 차량당 원가 상승으로 직결돼 현지 판매가 인상이나 수익성 악화를 피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이호근 대덕대 미래자동차학과 교수는 "현대차·기아는 작년 29조 원대의 영업이익을 냈지만, 관세만으로도 올해 10조 원에 달하는 비용 부담이 예상된다"며 "입항료 부담까지 더해지면 엽업이익은 20조 원 밑으로 떨어질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현대차는 그동안 가격 인상을 최대한 자제하며 비용을 자체적으로 흡수하는 전략을 취해왔다. 하지만 관세와 물류비가 동시에 오른 만큼, 일부 가격 인상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업계는 미국의 통상정책이 연쇄적으로 비용을 끌어올리고 있는 만큼 생산·판매 구조를 전면 재검토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당분간 수익성 개선이 쉽지않은 상황인 만큼 통상 환경 변화에 맞춘 전략적 전환이 시급하다는 분석이다.
이 교수는 "관세 장벽에 입항료 인상, 노조 리스크까지 고려하면 미국 현지 생산이 가장 유일한 답일 수 있다"며 "미국 자동차 노조(UAW) 가입 업체는 시간당 인건비가 120달러에 육박하고, 비가입 업체도 50~60달러 수준으로 한국보다 높지만 각종 비용을 감안하면 현지 생산이 최선이다. 관세와 수수료 부담을 피할 수 있다는 점에서 총비용 측면에서는 오히려 유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미디어펜=김연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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