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세훈 건설부동산 부장
건설현장은 북새통이다. 규모에 따라 다르지만 적게는 수십 명에서 많게는 수백, 수천 명의 인력들이 분주히 움직인다. 현장 소장을 필두로 콘크리트공, 철근공, 용접공, 타일공, 미장공, 비계공 등등이 공기에 맞춰 투입되며 크레인이나 굴착기, 레미콘 등 중장비가 상시 붐빈다. 여기에 기능공을 보조하는 일명 조공(보조)들이 따라붙는다. 각자의 역할이 있고 촉박한 일정을 맞추다 보니 시장통이나 다름없다. 그럼에도 일은 전체적으로 규칙과 순서에 따라 진행되어 간다. 무질서 속 질서의 공간이다.

안전관리자는 이 공간을 진두지휘해야 한다. 인부들의 안전교육을 담당하고 개개인의 보호구 착용까지 촘촘하게 살펴야 한다. 항시 위험요소를 점검해야 하고 사고 예방활동에도 나서야 한다. 무엇 하나라도 소홀히 했다가는 인명사고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긴장의 끈을 더욱 조여야 한다.

‘신호수(유도원)’는 안전관리의 첨병이다. 건설현장을 지나다 보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데, 보행자 안전을 위해 경광봉을 들고 수신호를 하는 이들이 바로 신호수다. 등에 ‘신호수’라 큼지막하게 표시돼 있는 붉은 조끼를 입고 있어 누구라도 알 수 있다. 시야 확보가 어려운 굴착기나 덤프트럭 등 중장비를 유도해 정확한 위치와 방향을 안내하고 주변 작업자와 보행자 차량 등의 사고가 없도록 통제하기도 한다. 손짓 하나로 생명을 지키는 ‘안전 소통가’라 할 수 있다. 

신호수가 인기다. 건설기초 안전교육과 신호수 안전교육을 받으면 누구나 할 수 있을 만큼 진입장벽이 낮고 상대적으로 육체적 노동이 덜하고 적정한 일급을 받다 보니 주부나 은퇴자들이 일용직 알바로 선호한다. 규모가 작은 현장은 소장 입김이 작용하기도 하고 일부 대형 건설현장 신호수는 필기와 실기시험을 거쳐 뽑을 만큼 경쟁률도 높다고 한다.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에 따라 건설현장에서 신호수 배치는 필수다. 

현장에선 곱지 않은 시선도 있다. 적당히 시간 때우다 가는 ‘땡보직’으로 인식하는 게 문제다. 실제 휴대폰이나 만지작거리며 종일 시간을 보내는 경우가 있다 보니 현장에서는 이들에게 청소나 주변정리 등의 잔일을 시키는 경우가 발생한다. 이런 찰나의 부재가 사망사고로 이어지기도 하는데, 조끼에 큰 글씨로 ‘신호수’라고 인쇄한 이유도 다른 잔일을 시킬 수 없도록 하기 위해서다. 결국 신호수에 대한 자격과 교육시간, 인원 등에 대한 기준이 허술하다는 지적이 꾸준히 나오다 보니 엄격한 기준 마련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건설현장 사망사고가 줄어들지 않는다. 국회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간 건설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만 1,031건에 달한다. 이 중 10대 건설사 현장에서만 113명의 노동자가 소중한 목숨을 잃었다. 사고는 작은 일터, 큰 일터를 가리지 않았다. 개인의 꿈과 가정의 생계가 무너지고 죽음의 일터라는 오명이 따라붙는다. 신호수의 존재만으로도 살릴 수 있는 목숨이 부지기수지만, 그마저도 지켜지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3년이 훌쩍 넘었다. 규제에 규제가 더해졌고, 현 정부는 더 센 규제를 예고하고 있다. 문제는 규제가 더해질수록 사망사고는 줄어야 하는데 제자리걸음이다. 중처법이 처음 도입됐을 때보다 안전관리 인력이 늘었고 수요도 늘었지만, 그만큼 관련 비용 상승으로 중소 건설사는 타격을 입고, 대형 건설사들은 규제에 대한 피로감을 호소할 정도다. 역효과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이다.

백약이 무효라면 기본으로 돌아가 보자. 건설 현장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 알아보자. 규제는 멈추고 핀셋 점검에 나서보자. 이재명 정부는 완장과 채찍을 잠시 내려놓고 ‘신호수’가 크게 박힌 조끼를 입은 현장의 신호수가 되어보자. 바로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시작이다. 짐은 무겁고 갈 길은 멀다.
[미디어펜=양세훈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