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류준현 기자] 한국수력원자력이 미국 웨스팅하우스와 지재권 분쟁 해소 '불공정 합의'를 맺은 배경에 '한국형 원자로 APR1400이 미국 웨스팅하우스 기술을 바탕으로 한 것'이라는 미국 정부의 결정이 컸던 것으로 나타났다.
19일 한수원이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속 허성무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 보고한 내용에 따르면 미국의 원자력 수출 통제 주무 부처인 에너지부(DOE)는 지난해 8월 한국형 원자로 설계가 미국 원천 기술을 포함하고 있다는 내용을 밝혔다.
|
 |
|
▲ 차세대형 원자력 발전소 'APR(Advanced Power Reactor)1400' 모형./사진=미디어펜 |
당시 미 에너지부는 한수원·한전, 웨스팅하우스 등 이해 관계자와 한국 정부 당국자들이 자리한 비공개 회의에서 산하 국립 아르곤연구소의 기술 검증 결과를 발표하며, 이 같은 결정을 통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해당 결정은 한수원이 체코 신규 원전 2기 우선협상자로 선정된 지난해 7월 직후 이뤄졌다.
한수원은 당초 APR1400이 한국의 독자 개발을 거쳐 완성한 모델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미국 수출 통제 대상이 아니라고 주장했는데, 미 정부가 이 같은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사실상 체코 원전 수출 통제권을 가진 미국 정부가 이 판정으로 지재권 분쟁에서 자국 기업의 손을 공개적으로 들어준 것으로 평가된다.
미국 정부는 지난 2023년 4월 한수원이 웨스팅하우스에 의뢰하지 않고 직접 체코 원전 수출 신고를 하자 '미국인이 신청하라'는 취지로 반려하기도 했다. 이에 지난해 8월 이후부터 한국의 체코 원전 수출은 웨스팅하우스의 '대리 신고' 없이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이후 협상은 올해 3월 계약 시한을 앞둔 한수원과 한국 정부 측에 크게 불리해졌다. 한수원·한전은 결국 지난 1월 웨스팅하우스에 원전 1기 수출마다 1조원이 넘는 규모의 물품·용역 구매 계약 및 로열티를 제공하고, 유럽 등 선진 시장 독자 진출을 포기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유효기간 50년의 합의문에 서명했다. 이에 한수원과 한전 이사회는 지난해 11월 이사회에서 이 같은 내용의 합의문에 서명하기로 결정했다.
또 한수원·한전, 웨스팅하우스의 합의 타결 직전인 올해 1월 8일 한국 산업통상자원부와 미 에너지부는 '한미 원자력 수출 및 협력 원칙에 관한 기관 간 약정'에 서명했다. 약정은 한미 양국이 철저한 비확산을 전제로 양국 기업이 세계 원전 시장에 함께 진출하는 것을 독려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올해 집권 이후 웨스팅하우스와 합의를 일종의 '불공정 합의'로 규정하고 강력히 비판해왔다. 하지만 최근 여당 내부에서는 미국이 절대적 주도권을 갖는 원자력 통제 체제의 특수성과 전반적 한미 관계의 안정을 고려해 합의 파기·재협상 주장보다 '전 정권 사태 수습'의 중요성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현 정부도 한미 관계의 민감성 측면에서 이번 문제를 실용적 차원에서 다루겠다는 입장이 강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은 지난 13일 국정감사에서 "어떤 계약이든 아쉬운 부분이 있고, 불가피한 양면성을 다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웨스팅하우스와 관련된 여러 논란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런 한계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온 것이 우리 수출의 역사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미디어펜=류준현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