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이소희 기자] 인삼은 서기 500년경부터 원기 회복과 혈액 순환 개선 등에 널리 이용돼왔다.
고대 약물학서 ‘신농본초경집주’에서는 인삼을 오래 복용하더라도 해가 없고 장수를 누릴 수 있다는 ‘상약(上藥)’으로 분류했다. ‘동의보감’에서도 인삼은 몸과 마음에 고루 효능이 있는 약재(심신양면, 心身兩面)로 쓰임새가 다양한 ‘주약(主藥)’으로 기술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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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공된 흑삼./자료사진=농진청 |
◆ K-흑삼의 새 기준 마련…안전성·품질 동시에 확보
우리나라에서는 인삼을 가공 방식에 따라 수삼, 홍삼, 흑삼, 태극삼, 백삼 등으로 분류해 통용하고 있다. 수삼은 수확 후 말리지 않은 그대로의 인삼이고, 홍삼과 흑삼은 수삼을 증기로 쪄서 말린 것이다. 또한 태극삼은 수삼을 익혀서 말린 것이고, 백삼은 수삼을 익히지 않고 말린 것이다.
그중에서도 홍삼은 우리나라 가공인삼의 대표 품목으로, 건강기능식품 원료 가운데 가장 큰 매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수삼을 1~2회 찌고 말려 제조하며, 담적갈색, 담황갈색, 다갈색을 띠는 것이 특징이다.
반면에 흑삼은 찌고 말리는 과정을 3회 이상 반복해 특유의 담흑갈색 또는 흑다갈색을 띤다. 다만, 식품 관련 규정에서는 ‘수삼을 쪄서 건조한 인삼’을 통칭해 ‘홍삼’으로 보기 때문에, 흑삼 역시 홍삼의 한 유형으로 분류돼왔다. 이로 인해 시장에서는 홍삼과 흑삼 간의 구분이 불명확하게 인식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이에 흑삼의 산업적 필요성과 기능성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농림축산식품부와 농촌진흥청은 2018년부터 2022년까지 흑삼의 표준화 및 실증 연구를 추진했으며, 업계 의견을 수렴한 끝에 2023년 흑삼에 대한 성분 기준을 새롭게 설정했다.
특히 제조 과정에서 벤조피렌 등 유해물질의 생성을 최소화하기 위해 건조 온도를 60℃ 이하로 제한하는 제조 기준도 함께 마련했다. 이는 흑삼의 안전성과 품질을 동시에 확보하기 위한 조치다.
농진청은 새 제조 기준에 따라 생산된 흑삼의 기능성을 입증하기 위해 지표 성분 분석과 동물실험을 수행했다. 그 결과, 흑삼은 인삼류의 주요 유효성분인 진세노사이드 Rg3, Rk1, Rg5 함량이 특히 높게 나타났다. 이는 반복적인 열처리 과정에서 생성되는 특이 사포닌으로, 기존 홍삼과의 기능성 차별성을 입증하는 과학적 근거로 평가된다.
이에 농진청은 흑삼의 기능성을 보다 명확히 입증하기 위해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산업체인 알피바이오와 함께 인체적용시험을 공동 수행했다.
◆ 유의미한 연구 결과…동물·인체적용시험서 건강 소재 효과 뚜렷
농진청에 따르면 호흡기 불편을 호소하는 성인 100명을 두 집단으로 나눠 각각 1일 0.5g의 흑삼 추출물과 위약(가짜 약)을 12주간 섭취하게 한 결과, 흑삼 섭취군은 대조군에 비해 △삶의 질 총점 54.76% 향상 △활동력 지수 123.2% 증가 △체내 염증 수치 186.73% 개선 등 유의미한 호흡기 건강 개선 효과를 보였다.
또한 흑삼은 전립선 건강 개선 효과도 동물실험을 통해 확인됐다. 전립선비대증(BPH)을 유도한 동물모델에 4주간 매일 흑삼 추출물을 경구 투여한 결과, 흑삼을 투여하지 않은 대조군에 비해 전립선 무게가 최대 16.9% 감소했다는 연구 결과다.
전립선에서 생성되는 전립선특이항원(PSA) 수치는 최대 48.6% 감소했고, 비대증 유발 주요 인자인 디하이드로테스토스테론(DHT) 농도는 최대 31.4% 감소하는 등 전립선비대증 억제 효과가 뚜렷하게 나타났다.
이는 전립선비대증 치료제로 사용되는 5-알파 환원효소 억제제의 PSA 감소율(37.4%) 및 DHT 감소율(2%)과 비교했을 때, 흑삼이 기능성 건강 소재로 활용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하는 결과다.
흑삼의 생리활성은 미생물에 의한 염증 반응 억제 측면에서도 확인됐다. 흑삼 추출물을 황색포도상구균(S. aureus) 배양액에 처리한 결과, 적혈구를 파괴하는 독소인 용혈소(α-hemolysin)와 장내 독소(enterotoxin A 및 B)의 분비가 억제됐으며, 이로 인한 체내 염증 유도인자인 TNF-α의 발현이 대조군 대비 최대 59.3%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흑삼이 단순 건강기능 소재를 넘어, 염증 매개 반응을 조절하는 항염 생리활성 소재로서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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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공 중인 흑삼./자료사진=농진청 |
◆ 가공인삼 산업의 새 활로…천연의약 소재 분야까지 확장 기대
농진청은 흑삼의 기능성을 과학적으로 입증하고,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건강기능식품 소재로서의 시장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연구를 추진하고 있다.
K-흑삼의 독자적인 제조 기준과 성분 특이성을 확립하고, 다양한 생리활성 효과를 입증하는 연구는 홍삼에 편중된 국내 가공인삼 산업의 새로운 활로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아울러 흑삼 소비가 건강기능식품 원료와 천연의약 소재 분야까지 확장된다면 국내 인삼 시장의 저변 확대는 물론, 세계 시장에서 고려인삼 위상 제고에도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김명수 농진청 국립원예특작과학원장은 “최근 국내 인삼 산업은 소비 둔화로 인한 재고 누적과 가격 하락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라며, “전체 인삼 생산량의 77.2%가 홍삼 제조에 집중된 현 구조에서 벗어나, 흑삼과 같은 차세대 기능성 소재 개발과 제형 다양화를 통해 인삼 산업의 체질을 개선하고 새로운 수요를 창출할 수 있도록 기술 보급과 산업 연계를 강화해 나가겠다”라고 밝혔다.
[미디어펜=이소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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