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박만 하고 간다?’ 구조적 한계 벗고 관광산업 도약
지역 콘텐츠 연계·기항지 체류형 전환이 열쇠
인프라·콘텐츠·제도 개선 3박자 전략 본격화
[미디어펜=구태경 기자] “단순히 들렀다 가는 게 아니라 관광객이 하루 이상 머무르며 지역을 깊이 경험하고 소비하는 체류형 관광지로 전환돼야 합니다” 크루즈 산업의 현장에서 만난 관계자들은 한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기항지마다 화려한 크루즈선이 오가지만 정작 지역에 남는 소비와 경제 효과는 여전히 미미한 수준이라는 현실 인식 때문이다.

   


정부는 이러한 구조적 한계를 벗어나기 위해 ‘크루즈 관광 활성화 전략’을 본격 추진 중이다. 단순한 승객 유치 경쟁을 넘어, 기항지의 정주형 관광 자산을 발굴하고 지역경제에 실질적 활력을 불어넣는 구조로 전환하는 것이 목표다. 해양수산부와 문화체육관광부가 공동으로 추진하는 이번 전략은 인프라 개선·콘텐츠 고도화·제도 정비 등 3박자 전략으로 요약된다.

세계 크루즈 관광 시장은 팬데믹 이후 빠르게 회복하고 있다. 2023년 글로벌 크루즈 관광객은 약 3170만 명으로,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 대비 107% 수준을 회복했다. 같은 해 한국을 찾은 크루즈 관광객은 27만 4000명에 불과했으나, 올해는 109만 명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는 이에 발맞춰 단순 입항 확대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지역 정착형 소비를 유도하는 방향으로 전략을 집중하고 있다. 

현재 인천·부산·제주·여수·속초·서산·포항 등 7대 크루즈 기항지를 중심으로 각 항만별 테마 브랜드를 설정하고 이를 기반으로 한 지역 특화 관광상품 개발을 지원하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앞으로는 크루즈 입항 일정에 맞춰 지역 상권과 관광업계가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기항지 관광상품의 정기화와 패키지 연계화가 핵심 전략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 기항지 부산항에서 하선한 관광객들이 크루즈선으로 돌아오고 있다./사진=미디어펜


부산항만공사 “부산항, 체류형 크루즈까지 아우르는 종합 허브로 발전 중”
부산항은 국내 크루즈 산업의 중심 항만으로 자리 잡고 있다. 올해 200항차 이상, 관광객 24만 명 이상이 방문할 것으로 예상되며, 내년에는 230항차·28만 명을 넘어설 전망이다. 부산항만공사 관계자는 “부산항은 단순 기항지를 넘어 출발과 귀항이 모두 가능한 모항, 일부 승객이 승·하선하는 준모항, 그리고 1박 2일 이상 머무는 체류형 크루즈까지 아우르는 종합 허브항만으로 발전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체류형 크루즈 확대를 위해선 관광객이 언제든 자유롭게 승·하선할 수 있는 24시간 CIQ(출입국·검역) 체계 구축이 필요하다”며 “자율적 이동이 가능해야 숙박·식음·쇼핑 등 다양한 산업으로 경제효과가 확산된다”고 강조했다.

공사는 지역 연계형 관광 프로그램 발굴에도 힘쓰고 있다. 어묵 만들기, 막걸리 빚기, 한지 공예 등 체험형 프로그램을 지자체·관광공사와 협업해 추진 중이며 감천문화마을 자전거 투어와 자갈치시장 어묵 체험 등 부산 고유의 생활문화 콘텐츠도 확장하고 있다.

또한 지자체·관광공사·여행업계 등과 협력해 터미널과 주요 관광지를 연결하는 무료 셔틀버스, 관광통역, 환영행사 등을 운영하며 관광객 편의와 환대 서비스를 강화하고 있다. 관계자는 “부산은 외국인 관광객에게 한국의 첫인상을 주는 도시이므로 교통질서와 서비스 문화 개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 인공 파도타기 플로우라이더(Flow Rider)를 즐기는 관광객./사진=로얄캐리비안


업계 “다수 정부기관이 얽혀있는 구조적 제약... 현장에 맞는 제도 개선 시급”
국내 크루즈 업계 역시 정부 정책 방향에 공감하면서도 현장 중심의 제도 개선 필요성을 강조했다. 

크루즈 선사들을 대신해 공식 총판 해운대리점을 운영하고 있는 한 업계 대표는 “크루즈 항만과 터미널은 보안 구역으로서 출입국·세관·검역(C.I.Q) 등 여러 기관이 관여하는데 이들 기관이 각각 법무부, 관세청, 질병관리청 등 서로 다른 부처의 법령과 규정을 적용 받아 실제 현장 운영 단계에서는 다수의 부처와 복잡한 법규 협의 절차를 거쳐야 하는 구조적 제약이 존재한다”며 “해양수산부가 해외 선사와의 세일즈 활동을 통해 성과를 거두고 있음에도, 선사들이 요구하는 실질적인 운영 환경 개선은 부처 간 조율 한계로 인해 반영이 지연되는 어려운 실정”이라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이어 그는 “특히 모항형 크루즈가 활성화되면 선용품·보급품·운항 인력 등 다양한 산업이 부산·여수 등 연안도시로 확산될 수 있다”며 “현재는 출입국·검역·보안 절차가 지역별로 달라 운항 효율성이 떨어지는 만큼, CIQ 절차의 표준화가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 로얄캐리비안의 ‘스펙트럼 오브 더 씨즈’./사진=로얄캐리비안


비유하자면, 항공산업의 경우 공항마다 노선은 달라도 운영 절차와 기준은 일관돼 있는 반면, 국내 크루즈 항만은 아직 업무 표준화와 운영 일관성이 충분히 정립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물론 크루즈 산업의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이러한 제도적·운영적 구조의 개선이 이뤄져야 국내 크루즈 산업이 안정적이고 지속가능한 성장 기반을 구축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는 △터미널 시설이 충분하지 않은 항만의 경우, 출입국심사관들이 마지막 출항지에서 선박에 직접 승선해 출입국 심사를 사전에 진행하는 방식인 출장선상심사제도 △크루즈 승선 외국인이 비자 없이 최대 3일간 국내 체류할 수 있도록 허용한 크루즈 개별관광객 관광상륙허가 시범사업 △입출항이 빈번한 크루즈선의 특성을 고려해, 최초 입항 후 3개월 이내에 재입항하는 선박 중 환자발생이 없고 감염병 전파위험이 낮은 경우, 승선검사를 생략하고 서류심사로 대체하는 제도인 크루즈선 검역 시범 사업 등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정책에 대해서는 호평했다. 

이같은 현장 친화적 제도 개선으로 크루즈선의 기항 확대에 매우 실질적인 도움을 주고 있다는 것. 시범 사업의 경우, 향후 재도입 또는 제도화가 추진된다면 개별 관광객 유치 확대와 크루즈 산업 성장에 큰 파급력을 가질 것으로 기대된다.

   
▲ 고품격의 선상 뷔페./사진=미디어펜


또 다른 업계 대표는 “지금의 정책이 단기 이벤트 중심에서 벗어나 장기적 수요를 키우려면 정기 운항 루트와 체류형 상품을 안정적으로 운영할 제도적 기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외국 선사뿐 아니라 국내 중소형 연안 크루즈 사업자들도 진입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돼야 한다”며 “정기 항차 운영, 세제지원, 선박 계류비 감면 등이 병행될 경우 지역 체류형 관광이 산업 전환의 마중물이 될 것”이라고 제안했다.

정부는 ‘크루즈 산업을 통한 지역경제 활성화’라는 큰 목표 아래, 인프라·콘텐츠·제도 개선을 병행하며 산업 전반의 체질 개선에 나서고 있다. 현장과 업계의 목소리가 함께 반영될 때, 크루즈 관광은 단순한 입항 산업을 넘어 ‘지역이 반기고, 관광객이 머무는 산업’으로 도약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기사는 해양수산부와 공동기획으로 제작한 기사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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