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실무 협의 막바지 조율…3500억달러 투자 패키지 '변수'
관세 여파로 대미 수출 25% 급감…15% 인하시 영업이익률 회복 기대
[미디어펜=김연지 기자]다음 주 경주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가 한국 자동차 업계의 운명을 가를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한국 완성차 업계는 현재 25%의 고율 관세가 15% 수준으로 인하될지 여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번 APEC 정상회의는 한미 양국 간 자동차 관세 인하 논의가 공식 문서에 담길 수 있는 중요한 기회로 평가된다.

24일 업계에 따르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오는 29일 방한해 이재명 대통령과 회담을 갖는다. 이 대통령이 취임 후 트럼프 대통령과 만나는 것은 지난 8월 워싱턴에서 열린 첫 정상회담 이후 두 번째다.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 협상 진전에도 '명문화'는 아직

한미 양국은 지난 7월 실무 협상을 통해 관세를 15% 수준으로 낮추는 방향에 잠정 합의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명령이 내려지지 않아 후속 조치가 지연되고 있다. 

그동안 한국산 자동차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따라 무관세 혜택을 받아왔다. 일본·유럽연합(EU)산 차량에는 2.5%의 기본 관세가 적용돼 상대적으로 가격 경쟁력이 높았다. 

그러나 올해부터 미국이 한국산 차량에 25%의 고율 관세를 부과하면서 한국산 완성차는 일본·EU 대비 10%포인트가량 높은 세율을 적용받고 있다.

이 같은 불이익을 해소하기 위해 정부는 한·미 고위급 채널을 총동원해 관세 인하 협상에 속도를 내고 있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과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최근 워싱턴DC를 방문해  하워드 러트닉미 상무부 장관 등과 고위급 협의를 가졌다. 

김용범 실장은 협의에 대해 "쟁점이 한두 가지 남았지만 일부 진전이 있었다"고 밝혔다.

남은 쟁점에는 약 35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 패키지 구성, 현금 비율과 자금 공급 기간 조정 등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관 장관은 이날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국정감사에 출석해 "(대미 투자 3500억 달러 중 현금 비중을 두고) 적절한 수준인가를 놓고 양측이 대립하고 있다"며 "한국은 (현금 비중) 규모가 지금보다는 작아져야 한다, 미국은 좀 더 많아야 한다는 입장차가 있다"고 설명했다.

업계는 이번 정상회담에서 관세 인하 합의가 명문화돼야 15% 관세 적용이 앞당겨지고, 이에 따라 관세 부담을 최소화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윤곽이 잡히지 않을 경우 연말 가격 전략과 내년 물량 계획을 전면 재조정해야 하는 것은 물론, 수익성 방어를 위한 현지 인센티브 정책과 마케팅 전략에도 차질이 불가피하다.

업계 관계자는 "관세율 인하 자체에는 한미 간 공감대가 형성됐지만, 세관 적용을 위해서는 법적 문서화가 필수"라며 "이번 정상회담이 실질적인 명문화로 이어져야 수출 경쟁력 회복의 계기가 마련될 것"이라고 말했다.

◆ 관세 충격에 수출도 급감…대미 전략 리셋 분수령

관세 부담은 수출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 관세청에 따르면 이달 1일부터 20일까지 전체 수출은 전년 대비 7.8% 줄었고, 대미 수출은 24.7%나 급감했다. 특히 자동차는 25%, 자동차 부품은 31.4% 감소해 업계가 관세 영향을 고스란히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나이스신용평가는 한국의 대미 자동차 수출 관세율이 현행 25%로 유지될 경우 현대차그룹이 부담해야 할 연간 비용이 8조 원을 넘어설 것으로 내다봤다. 이 경우 영업이익률은 지난해 9.7%에서 올해 6.3%로 떨어질 전망이다. 

반면 관세율이 15%로 인하되면 연간 부담은 약 5조3000억 원 수준으로 줄고, 영업이익률은 7.5%까지 회복될 것으로 예상했다.

관세가 완화되면 가격 경쟁력 회복뿐 아니라 미국 내 소비자 판매가 안정, 브랜드 이미지 개선, 글로벌 시장 대응 여력 확대 등 간접 효과도 기대된다. 완성차 업계는 이번 합의가 현실화될 경우 미국 현지 생산 및 전동화 투자 부담을 상쇄하고, 하반기 이후 실적 방어에도 숨통이 트일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이번 경주 회담의 성패가 한국 자동차업계의 '대미 전략 리셋' 시점을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업계 관계자는 "이번 협상은 단순히 세율을 조정하는 수준이 아니라, 향후 수익 구조와 시장 경쟁력을 좌우할 분기점이 될 것"이라며 "관세 인하 여부에 따라 기업의 투자 방향과 글로벌 공급 전략까지 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관세 인하가 현실화되더라도 후속 리스크는 남는다. 운송비 상승, 현지화 요구, 추가 투자 등 구조적 비용이 여전한 만큼 단기 효과만으로는 수익성 회복을 담보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관세 완화가 장기 체질 개선으로 이어지려면 비용 구조 개편과 공급망 다변화가 병행돼야 한다는 게 업계 내 중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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