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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소정 미디어펜 기자 |
[미디어펜=김소정 기자]캄보디아에서 한국인 납치·감금 신고 550건, 이 중 100명 행방 묘연... 캄보디아 내 스캠 범죄 단지에 20만여명 다국적 국민 가담, 이 가운데 한국인 1000~2000명으로 추산... 한국인 64명 국내 송환 이후 57명 무더기 검거... 끝 모를 초국경 범죄와의 전쟁이 시작된 셈이다.
정부는 향후 캄보디아에 남아 있는 한국인 범죄 연루자 및 피해자에 대한 수사를 지속하기 위해 캄보디아 당국과 협력해 공조를 이어간다는 방침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캄보디아를 비롯한 동남아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불법 구인광고’를 삭제하라고 긴급 지시했다. 또 정부의 총력 대응을 위해 외교부, 국정원, 법무부, 금융위 등이 참여하는 ‘초국가범죄 특별대응본부’가 설치된다. 이 대통령은 또 27일 아세안 정상회의에 참석한 계기 훈 마네트 캄보디아 총리를 만나 스캠 범죄 공동 대응을 논의하기로 했다.
한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초국경 범죄는 당초 마약류 생산으로 악명이 높은 골든트라이앵글 경제특구로 불리는 태국과 미얀마, 라오스의 접경지역 등에서 시작됐다. 이후 캄보디아에서 온라인 스캠 범죄가 성행하고 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한국의 발달된 IT인프라, 송금 시스템과 암호화폐를 많이 이용하는 특성이 범죄의 멋잇감이 된 측면이 있다고 한다.
캄보디아 스캠 범죄조직을 비롯해 동남아에 자리잡은 마약·사이버도박 등 범죄조직은 대개 중국에서 넘어간 조폭 출신의 중국인과 조선족이 총책을 맡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본토에서 단속이 강화되자 인근 지역으로 옮겨간 것이라고 한다.
동남아 국가에서 만연해진 마약·스캠 범죄의 또 다른 특성은 ‘풍선효과’다. 한곳을 누르면 또 다른 곳이 튀어나오듯 근절이 어려운 것은 스캠 범죄가 지역의 권력과 유착된데다 2023년 캄보디아 국내 총생산의 절반(125억 달러·17조 원)을 벌어들일 정도로 거대한 산업이 돼버렸기 때문이다.
국내 정치권에선 마침 국정감사 시즌을 맞아 캄보디아 사태를 놓고 외교부를 상대로 난타전이 벌어졌다. 대사관의 부실 대응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외교부 장관의 거취 표명을 촉구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물론 재외공관을 둔 외교부와 해외에 파견된 외교관의 제1 책무는 국민 보호다.
그런데 국민 보호와 국익 수호란 사명감으로 파견된 대사관 직원들이 현실에서 느끼는 건 "위험한 감정노동"이란 호소가 나온다. 사실 ‘월 1000만원 이상 고수익 보장’이란 문구로 사람들을 유인하는 사기 범죄는 대개 조직폭력이 연루돼 있어 그렇다.
이번 사태 이후 한국과 캄보디아를 왔다갔다하는 사업가로 알려진 이창훈 씨가 자신의 SNS와 언론을 통해 실상을 알리고 있다. 그는 페이스북에 올린 ‘캄보디아 이야기’ 글에서 “한국사회에서 누가 한달에 1000만~1500만원을 주겠나. 그런 제안을 받았을 때 보이스피싱 조직일 가능성을 떠올렸어야 하지 않을까. 캄보디아 교민들은 지금 미칠 지경이다. (유인된 사람들이) 막상 와보면 중국 갱단이나 조선족 조직에게 붙잡혀서 실적을 못 내면 짐승처럼 취급받는다. 그래서 탈출해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다. 캄보디아 대사관 직원들도 미칠 지경일 것이다”라고 했다.
이번 사태를 재외공관을 희생양 삼아 책임추궁해 끝낼게 아니라면, 사태를 정확히 파악해서 문제를 해결할 방안을 찾아야 할 것이다. 아직까지 선진국을 제외한 많은 국가에서 외교관 3~5인 대사관을 운영하는 것이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게다가 캄보디아를 포함해 전세계 173개 재외공관 가운데 공관장이 공석인 곳이 25%에 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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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3일(현지시간) 캄보디아 범죄단지인 '태자단지'가 철조망과 높은 벽으로 둘러싸여 있다. 2025.10.23./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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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재외공관 직원 수를 공개하고 있지 않지만, 캄보디아대사관 직원 수는 외교관과 행정직원을 합해서 40여명 이내로 파악됐다. 또 한국인 사건사고가 많은 필리핀대사관에도 40여명의 직원이 있다. 두 곳 모두 외교관과 행정직원의 비율이 절반씩이었다.
재외공관 직원 수가 가장 많은 국가는 중국과 미국으로 주중대사관과 주미대사관엔 각각 외교관 80여명과 행정직원 60여명이 있다. 주일대사관엔 외교관 60여명과 행정직원 100명이 있다. 이 밖에 영국, 프랑스 등 유럽의 선진국 공관엔 외교관 20~30명, 행정직원 20~30명이 있다고 보면 된다.
대사관 직원은 외교부 공무원뿐 아니라 행정직원과 경찰영사 등으로 구성된다. 대사관 업무는 여권·비자 등 민원 처리부터 사건사고 시 영사조력 외에도 개발 협력, 취업 및 고용 협력, 경제 협력, 문화 협력, 동포 교류 등이다.
이처럼 현황을 파악하다보니 재외공관에서 사건사고를 담당할 전문가인 경찰영사는 3명 남짓인 곳이 많은 것으로 보였다. 아예 경찰영사가 없는 공관도 있었다. 따라서 한인 대상 사건사고가 많은 곳엔 발빠르게 경찰영사를 대폭 확충하는 탄력적인 운영이 시급해 보인다. 이번에 캄보디아대사관에 인근 국가 공관 직원들을 차출해 보강한다고 하는데, 경찰영사 보강이 어느 정도일지 궁금하다.
또한 외교부의 173개 재외공관 중 현재 대사 공석이 25곳, 총영사 공석은 17곳으로 총 42개 공관에 공관장이 부재한 현실도 되돌아봐야 하겠다. 캄보디아의 경우 지난 14일 뒤늦게 ‘캄보디아 취업 사기·감금 피해 대응 태스크포스’를 발족하고 박일 전 레바논 대사가 TF 팀장으로 급파됐다.
김건 국민의힘 의원실에 따르면, 공관장이 부재한 곳엔 재외동포 30만명을 관할하는 뉴욕 총영사관과 12만명을 관할하는 오사카 총영사관도 포함된다. 한 해 한국인 관광객이 160만명 이상 찾고 있는 다낭 총영사관도 대행 체제다. 한국인이 몰리는 삿포로, 후쿠오카 등 총영사도, 워킹홀리데이 인원과 유학생이 많은 호주 대사 자리도 비어 있다.
결론적으로 이재명정부 들어 새로 임명한 공관장은 강경화 주미대사, 이혁 주일대사, 노재헌 주중대사, 차지훈 주유엔대표부 대사뿐이다. 북러 밀착으로 민감 이슈가 산적한 주러시아대사도 공석인데, 이석배 전 러시아 대사가 현재 내정된 상태라고 한다.
캄보디아 사태의 후유증은 캄보디아 교민들과 한국에 사는 캄보디아인들의 분노로 확산될 기미를 보이고 있다. 이창훈 씨는 페이스북에서 “관련 언론기사와 댓글을 보면 캄보디아는 위험한 나라, 교민들은 마치 동포를 등치는 사람들로 오해받는다”고 분개해했다.
그는 “기사에서는 대사관이 자국민 구출에 소홀했다며 비판하지만, 실상은 불법을 저지르러 온 자들을 그래도 자국민이라 최선을 다해 구출하고 송환하는 중이다. 대사관 경찰영사와 담당 주무관들은 밤잠 못자고, 주말도 없이 구출 작업을 한다”며 “작년에만 400여명, 올해만 150여명을 구출해 본국으로 돌려보냈다. 한인회장, 대사관 직원, 뜻있는 교민들이 자비로 도왔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한탕 노리는 사람, 이미 벼랑 끝에 몰린 사람, 무지한 사람 등이 뒤섞여 캄보디아 사태를 만들어냈다. 그 가운데 예천 출신 20대 대학생처럼 안타까운 사람도 포함돼있다. 그런데 그 배경엔 중국계 범죄조직과 그 지역 권력층 간 단단한 유착과 추악한 돈거래가 있었다.
캄보디아 범죄단지 운영자는 중국계 프린스그룹 천즈 회장으로 현재 행방이 묘연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정부는 최근 사이버 사기와 인신매매 등 범죄에 연루된 캄보디아 정치 거물 리용팟 의원을 금융제재 대상으로 지정한 사실이 있다. 국정원 출신 채성준 서경대 군사학과 교수는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범죄조직이 재벌형으로까지 진화돼있다. 뿌리도 깊고, 미얀마도 심각하다”면서 “국정원이 나서 역할을 더 많이 해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미디어펜=김소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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