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과 23일 류블랴나와 이스탄불 대학교서 특별 강연 열어
현지 한국어 전공 학생 등 대상으로 한국 문학 이야기 꽃피워
[미디어펜=이석원 문화미디어 전문기자] 배우이자 소설가 차인표가 유럽 2개국에서 자신의 소설을 주제로 한 강연을 가졌다. 

지난 해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소설 ‘언젠가 우리가 같은 별을 바라본다면’으로 강연을 하고 옥스퍼드 내 43개 칼리지 도서관에 비치되는 등 해외에서 먼저 소설 작품에 대한 관심을 이끌었던 차인표 작가가 이번에는 동유럽의 슬로베니아와 튀르키예에서 각각 ‘언젠가 우리가 같은 별을 바라본다면’과 ‘인어사냥’을 가지고 강연에 나선 것. 

‘언젠가 우리가 같은 별을 바라본다면’은 차인표 작가가 2009년에 처음으로 썼던 소설 ‘잘가요 언덕’을 개정한 것으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문제를 청소년들이 접근하기 쉽게 아름다운 동화의 언어로 풀어내 화제가 된 작품이다. 

   
▲ 지난 해 소설 '언젠가 우리가 같은 별을 바라본다면'으로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특강을 진행했던 배우 겸 소설가 차인표가 이번에는 슬로베니아 류블랴나 대학교와 튀르키예 이스탄불 대학교에서 또 다시 특강을 했다. 사진은 이스탄불 대학교에서 강연하는 모습. /사진=이스탄불 대학교 한국어문학과 제공


지난 2022년에 출간된 ‘인어사냥’은, 동해안 전설 속에 등장하는 인어와 그 인어를 잡아서 기름(어유)을 짜 영생을 얻으려는 인간의 욕망과 이기심이 빚어낸 환경 파괴에 대한 문제 의식을 드러낸 작품이다. 차인표 작가에게 지난 9월 제14회 황순원 문학상 신진상을 안겨주기도 했다. 

발칸 반도 슬로베니아서 일본군 위안부의 아픈 역사 이야기 

지난 21일 오후 1시(현지시간) 차인표 작가가 슬로베니아의 수도 류블랴나에 있는 류블랴나 대학교 인문대학 5층 블루룸에서 특별 강연을 가졌다. 

류블랴나 대학교는 1810년 처음 설립된 245년 전통의 슬로베니아 최대 규모 종합대학교다. 교원 수가 3500여 명, 학생 수가 5만 6000여 명에 이르는 유럽에서도 손꼽히는 규모의 대학으로 동유럽에서 가장 유명한 명문 대학으로 알려졌다. 

올해로 설립 30주년을 맞는 류블랴나 대학교 아시아학부에 한국학과가 설치된 것은 지난 2023년. 현재 1, 2학년 각각 15명씩 30명의 학생들이 한국학을 전공하고 있다. 

이날 열린 차인표 작가의 특강에는 류블랴나 대학교 한국학과 학생 30명과 다른 학과에서 한국학과 관련된 과목을 공부하는 학생 20명, 그리고 교직원과 류블랴나에 거주하는 한국 동포, 그리고 크로아티아, 이탈리아, 프랑스, 체코 등 다양한 국가에서 온 60여 명이 참석했다. 

특강의 주제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동화의 감각으로 쓴 자신의 소설 ‘언젠가 우리가 같은 별을 바라본다면’. 북 토크 형식으로 진행돼 차 작가의 강연과 학생들의 질의응답으로 진행됐다. 

차인표 작가는 이날 강연에서 ‘용서를 구하지 않는 사람을 우리는 어떻게 용서할 수 있을까?’,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그들에게 사과를 받으려는 것은, 그들에게 복수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들을 용서하고 싶어서가 아닐까?’ 등의 내용으로 약 한 시간 가량 강연을 이어갔다. 

   
▲ 차인표가 21일(현지시간) 슬로베니아 최대 류블랴나 대학교에서 한국학과 학생 등에게 소설 '언젠가 우리가 같은 별을 바라본다면'을 가지고 특강을 하고 있다. /사진=류블랴나 대학교 한국학과 제공

강연 후 이뤄진 학생들의 질문도 그 어떤 전공 과목 수업에서보다 뜨거운 분위기를 자아냈다. 

강연을 마친 후 한국학과 2학년에 재학중인 마야 베고비치(Maja Begovic)의 “작품이 처음 출간되고 오랜 시간이 흘러 최근 주목을 받고 있는데,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냐?”는 질문에 대해 차인표 작가는 “한국에서 일본군 위안부 사건은 오랜 시간이 지난 일임에도 전혀 잊혀진 과거가 아니고, 오히려 더 많은 관심이 생기고 있는데 바로 공감(empathy)의 힘 때문이라고 생각한다”고 대답했다. 

또 한국학과 2학년 카트카 프란야 슬로사르(Katka Franja Slosar)는 “전세계적으로 K-컬처가 붐을 일으키고 있다. 그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고 질문을 던졌고, 차 작가는 이 질문을 한국학을 전공하는 그들에게 되돌렸다. 그러자 학생들은 ”이것은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K-컬처는 앞으로 그 저변을 더 넓혀갈 것“이라고 대답해 한국 문화의 세계적인 확대에 큰 관심을 보였다. 

이날 강연에 참석한 사람들은 하나같이 ”너무 감동적인 강의였다“고 입을 모았다. 그러면서 ”차인표 작가를 다시 모셔서 더 많은 사람들이 강연을 듣게 하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다. 

강연을 주최한 강병융 류블랴나 대학교 한국학과 교수가 ”(차인표 작가를) 다시 모시고 싶다면, 차 작가님의 작품을 슬로베니아어로 번역해야 한다“고 농담처럼 말하자, 몇몇 학생이 자신들이 그 일을 하고 싶다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이미 일본군 위안부 피해는 특정 국가와 지역의 ‘사건’이 아니라 전 세계 모든 여성들에 대한 성범죄, 전쟁 인권의 문제로 인식되고 있는 상황. 그래서 이날 강연에 참석했던 학생들은 그 어떤 강연을 들을 때보다도 진지하고 심오했다고 강병융 교수는 전했다. 

   
▲ 이날 강연에서 학생들은 한국 문학에 대한 특별한 관심과 함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갖는 계기가 됐다. /사진=류블랴나 대학교 한국학과 제공

강병융 교수는 “아주 진지한 분위기의 강연이었다”며 “단 1초도 지루해하는 학생은 없었다. 흔히 대학 강의 때처럼 스마트폰을 보거나 잡담을 하는 학생도 전혀 없었다. 강연 내용에 따라 가끔 웃기도 했고, 차 작가 질문에도 적극적으로 대답하는 등 호응이 각별한 강연이었다”고 현장 분위기를 전했다. 

한편 이날 강연에는 오스트리아 빈에서 활동 중인 윤선영 박사도 참석했다. 윤 박사는 2019년 대산문학상(번역부문)을 받은 번역가로, 오스트리아 빈에서 번역을 통해 한국을 독일어권에, 또 독일어권 문화를 한국에 소개하는 일을 하고 있다. 현재 차인표 작가의 소설 ‘언젠가 우리가 같은 별을 바라본다면’을 독일어로 번역 중인데, 조만간 현지에서 정식 출간 예정이다. 

570년 역사의 이스탄불 대학교서 인간 욕망과 환경 파괴 강조

슬로베니아의 류블랴나 대학교에서 강연을 마친 차인표 작가는 이번에는 튀르키예 이스탄불 대학교로 이동해 또 다른 소설 ‘인어사냥’으로 두 번째 강연을 진행했다. 

차인표 작가는 23일(목) 오전 10시(현지 시간) 이스탄불 대학교 본관 2층 블루홀에서 이스탄불 대학교 한국어문학과 교수진 및 재학생, 이우성 주이스탄불 대한민국 총영사 및 공관원, 이스탄불 세종학당 강사 및 수강생, 이스탄불 주재 재외국민과 한국문학에 관심 있는 튀르키예 현지인 등 120여 명을 대상으로 ‘차인표 작가와의 만남'을 가졌다. 

이스탄불 대학교는 그 역사가 무려 570년을 넘는 명문대학교다. 학부생과 대학원생을 합쳐 6만 8000명이 넘는 학생들이 공부하고 있다. 튀르키예 최대 국립대학이며, 2명의 튀르키예 대통령과 1명의 총리를 배출했고, 2006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오르한 파무크를 비롯해 2명의 노벨상 수상자도 배출했다. 튀르키예 화폐에 도안되기도 한 대학교다. 

   
▲ 23일 튀르키예 최고 국립대학이자 570년의 역사를 지닌 이스탄불 대학교에서 강연하는 차인표. /사진=이스탄불 대학교 한국어문학과 제공

이스탄불 대학교의 한국어문학과는 지난 2016년 설치돼 튀르키예의 한국 문화 알리기의 선봉장 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차인표 작가의 이번 강연은, 한국문학번역원에서 지원하는 ‘한국문학번역 워크숍’ 의 일환으로 열렸다. 전설 속의 인어를 통해 인간의 욕망과 환경 파괴에 대한 문제 의식을 담은 소설 ‘인어사냥’을 대상으로 이스탄불 대학교 한국어문학과 학생들이 ‘한국문학 번역 세미나’를 가진 것이다. 

이미 튀르키예에서는 K-팝과 K-드라마가 여러 해 전부터 뜨거운 호응을 얻고 있고, 그런 탓에 많은 사람들이 배우 차인표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이날 강연에 참석한 대학생과 일반인들도 차인표 작가의 ‘사랑을 그대 품안에’나 ‘왕초’, ‘불꽃’, 등의 드라마를 좋아했다. 

그런데 영상 속에서 보던 ‘차인표’가 아닌 소설의 저자로 만난 ‘차인표’에 대해 참석자들은 또 다른 강렬한 관심을 보였다. 특히 인상 깊게 읽은 소설의 저자를 직접 대면하고 그의 열정적인 강연을 들으면서 강연장이 뜨겁게 달아올랐다고 참석자들은 전했다. 

차인표 작가의 강연을 들은 이스탄불 대학교 한국어문학과 학생들은 진지하면서도 평소 좋아하는 한국의 스타이자 저자를 만난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한국어문학과 4학년인 메르베는 “소설 ‘인어사냥’에서는 인간의 욕망을 드러내는 기제로 ‘어유’가 등장한다. 저는 SNS가 현대 사회에서 ‘어유’의 역할을 하는 것 같다”며 작가의 생각을 물어 작가는 물론 다른 참석자들을 놀라게 했다. 

   
▲ 이스탄불 대학교 강연 중 한 학생이 차인표에게 질문을 하고 있다. /사진=이스탄불 대학교 한국어문학과 제공

이 외에도 강연을 들은 참석자들은 “세상을 이해하는데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거나 “‘살아가기 위해 어디까지 허용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 마음에 파고 들었다”, “인간의 탐욕에 대한 메시지가 강렬하다”는 등의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이번 차인표 작가의 이스탄불 대학교 강연을 주선한 정은경 이스탄불 대학교 한국어문학과 교수는 2016년 가을학기 이스탄불대학 한국어문학과 개설부터 학과에서 한국 문화와 한국 역사 등을 가르치고 있다. 

정 교수는 “한국어문학과 학생들은 물론 튀르키예는 한국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 유럽 국가보다 높다. 그래서 대중 연예인으로도 유명하지만 최근 성공적인 소설가로 자리잡은 차인표 작가의 소설은 이미 이곳에서는 관심이 높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이번 강연을 통해 이스탄불 대학교 한국어학과 학생들의 한국 문학에 대한 관심은 더 높아졌을 것이고, 그들에게서 시작한 한국 문학의 번역 작업도 더 활성화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정 교수는 차인표 작가의 소설 ‘언젠가 우리가 같은 별을 바라본다면’ 튀르키예어 번역을 마쳤고, 오는 11월에 현지 에베레스트 출판사를 통해 출판될 예정이기도 하다.  

류블랴나와 이스탄불 두 대학교에서의 강연을 마친 차인표 작가는 "두 학교 모두 학생들의 표정과 태도가 대단히 진지했다"며 "아직은 낯선 한국 문학에 대한 강의임에도 끝까지 집중하는 열기와 정성이 느껴졌다"고 소감을 밝혔다. 

그러면서 "비단 나의 소설에 보내는 관심이 아니라, 전 세계에 퍼진 한류의 힘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덧붙였다. 

또 "류블랴나, 이스탄불 두 대학교 모두 강연 후 여러 학생들이 메시지, SNS DM 등을 통해 추가 질문을 해오고 있다"며 "류블랴나 대학은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언젠가 우리가 같은 별을 바라본다면'을 슬로베니아어로 번역하겠다는 의사를 표현했고, 이스탄불 대학은 올해 '인어사냥'을 번역한 데 이어 내년에 '언젠가 우리가 같은 별을 바라본다면'을 번역하고 싶다, 그때 또 특강을 와달라는 요청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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