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연지 기자]대한항공·아시아나 기업결합 이후 항공시장 지형이 빠르게 변하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양사 기업결합 승인 조건으로 제시한 10개 국제선 노선의 슬롯 재배분 절차가 시작되면서 저비용항공사(LCC) 간 노선 확보 경쟁이 본격화됐다. 이르면 2026년 상반기부터 새로운 항공사가 해당 노선에 취항할 것으로 전망된다. 대한항공-아시아나 합병으로 촉발된 항공업계 대재편, 그 최종 승자가 누가 될지 업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25일 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지난해 말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기업결합을 조건부 승인하면서 경쟁 제한 우려가 있는 34개 독과점 노선을 대상으로 구조적 조치를 부과했다. 핵심은 대형항공사가 보유한 슬롯과 운수권을 다른 항공사(대체 항공사)에게 이전하도록 하는 것이다.
| |
 |
|
| ▲ 대한항공 항공기./사진=대한항공 제공 |
공정위는 대체 항공사 신청 공고를 진행한 뒤 적격성 검토와 국토교통부 항공교통심의위원회의 평가를 거쳐 최종 슬롯·운수권을 배분할 예정이다. 이번 이전 개시 노선은 인천-시애틀, 인천-호놀룰루, 인천-괌, 부산-괌 등 미국 4개 노선, 인천-런던 등 영국 1개 노선, 인천-자카르타 등 인도네시아 1개 노선, 김포→제주, 광주→제주, 제주→김포, 제주→광주 등 국내 4개 노선이다.
해외 경쟁당국이 이미 인천~호놀룰루 노선의 대체항공사로 에어프레미아를, 인천~런던 노선에는 버진아틀랜틱을 지정했다. 남은 8개 노선을 두고 국내 LCC들의 각축전이 전망된다. 특히 수요가 보장된 제주 노선이 가장 큰 관심을 받고 있다.
반면 괌 노선은 수요 회복이 완만하고 계절성이 커 안정적 수익을 내기 어렵다는 지적이 상당하다. 앞서 인천~괌 노선을 운항하다가 이를 잠정 중단한 항공사는 환율 및 현지 물가로 인해 줄어든 여행 수요를 극복하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실제로 제주항공은 오는 26일부터 내년 3월 28일까지 인천~괌 노선 운항을 중단하기로 했다. 티웨이항공도 이달 20일부터 11월 16일까지 한시적으로 해당 노선 운항을 하지 않는다. 대한항공 계열인 진에어와 에어서울이 괌 노선을 증편하면서 비계열 LCC들의 수익성이 악화된 것으로 분석된다.
이번 노선 배분에서는 특히 에어프레미아와 티웨이항공의 추가 수혜 가능성이 거론된다. 에어프레미아는 장거리 운항에 강점을 보유하고 있으며, 티웨이항공은 아시아·유럽 등 중장거리 노선 확대를 추진 중이다. 티웨이항공은 이미 지난해 대한항공으로부터 파리·로마·바르셀로나·프랑크푸르트 등 유럽 4개 노선을 인수받아 운영하며 장거리 노선 경험을 쌓았다. 대한항공 계열 LCC에는 배분 기회가 제한적인 만큼 제주항공이나 이스타항공이 단거리와 관광 수요 중심 노선 확보를 통해 점유율 확대를 노릴 가능성도 있다.
항공업계는 이번 조치가 단순한 노선 재배분이 아니라 시장 판도를 바꾸는 신호탄으로 보고 있다. 기존 대형항공사가 독점적 지위를 누리던 장거리 및 전략 노선에 저비용항공사들이 진입할 기회를 갖게 됐기 때문이다.
진에어·제주항공·티웨이항공 등 주요 LCC들은 이미 노선 확보를 위한 내부 역량 강화에 나선 상태다. 특히 이들은 취항 노선 확대뿐 아니라 비용 경쟁력 확보를 위한 기단 효율화, 해외법인 설립, 화물사업 강화 등 다각화 전략을 병행하고 있다.
남은 과제는 배분 완료 시점, 실제 취항 항공사의 운영역량, 노선별 실적 및 소비자 혜택 변화 등이다. 특히 운수권·슬롯 이전 절차가 언제 마무리되는지, 그리고 이후 경쟁이 실제로 운임 인하 또는 서비스 개선으로 이어질지 주목된다.
항공업계 한 관계자는 "이번 노선 재배분은 단순히 운수권 이동에 그치지 않고 국내 항공업계 생태계를 재편하는 분수령이 될 것"이라며 "각 항공사가 확보한 노선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운항하고 안정적인 수익 구조로 연결하느냐에 따라 향후 시장 점유율이 크게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인천-로스앤젤레스(LA), 인천-샌프란시스코, 인천-바르셀로나, 인천-프랑크푸르트, 인천-파리, 인천-로마 등 6개 노선은 미국과 유럽연합(EU) 경쟁당국의 조치에 따라 에어프레미아·유나이티드항공·티웨이항공에 배분이 완료됐다. 나머지 18개 노선도 내년 상반기부터 순차적으로 이전 절차가 진행될 예정이다.
[미디어펜=김연지 기자]
▶다른기사보기